소강절 선생이 마지막에 아는 것이 끊어진 자리를 보았기 때문에 대접을 받는 겁니다.
그러면 그는 그 끊어진 자리를 어떻게 보았느냐? 그가 끊어진 자리를 보고서야 지은 시입니다.
신생천지후(身生天地後)하고,
이 몸뚱이는 하늘과 땅이 생긴 뒤에 나오고,
심재천지선(心在天地先)이라.
우리 마음자리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느니라.
천지(天地)도 자아출(自我出)이어니,
하늘도 땅도 다 나로부터 나왔거니,
기여(其餘)야 하족언(何足言)이랴.
그 나머지 만물(萬物)이야 말할 게 뭐 있느냐.
일물(一物)이 유래(由來)로 유일신(有一身)이니,
한 물건이 말미암아 한 몸뚱이가 생겼으니,
일신(一身)에 환유일건곤(還有一乾坤)이라,
한 몸뚱이에는 또한 한 건곤[하늘과 땅]이 있음이라.
약지만물(若知萬物)이 비어아(備於我)라면
만일 우주만물이 나에게 갖춰진 것을 안다면
긍파삼재별입근(肯把三才別立根)가.
어찌 삼재[하늘과 땅과 사람]를 잡아서 따로 뿌리를 세우랴. (즉 하늘이니, 땅이니, 사람이니, 모두 다를 게 없다 )
천향일중분조화(天向一中分造化)하고,
하늘은 하나[眞理]를 향하는 가운데 조화를 나누고,
인어심상(人於心上)에 기경륜(起經綸)이라.
사람은 마음 위에 경륜을 일으킨다.
천인(天人)이 언유양반의(焉有兩般意)랴?
하늘과 사람에 어찌 두 가지 뜻이 있겠느냐?
도불허행지재인(道不虛行只在人)이다.
도는 헛되이 행하지 않는지라, 다만 사람한테 있다.
그렇게 아는 것이 끊어진 자리를 봤기 때문에 소강절 선생을 인정하는 겁니다. ‘지’와 ‘각’의 차이가 그렇게 구별되어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