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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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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고수는 밖에 있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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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메디힐요가원을 부인 이정수 박사와 함께 운영하는 이동환 원장(왼쪽)이 부인과 함께 서있다.


남방불교수행법인 위파사나의 여러 전통 중에서도, 고엔카(1924~2013)에 의해 전세계로 퍼져 이른바 ‘고엔카 위파사나로’불리는 명상법은 석가가 수행한 원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얀마에 이주한 인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20대에 청년재벌이 된 고엔카는 심각한 편두통으로 고생하던중 스승 우바킨을 만나 위파사나를 14년간 수행하고, 1969년 인도로 건너가 ‘10일코스’를 운영해 위파사나를 전했다. 15세기 이후 사실상 종주국임에도 불교가 소멸된 인도에서 불교를 되살린 인물로 고엔카는 불가촉천민 출신 인도 초대 법무부장관 암베드카르(1891~1956)와 함께 양대산맥으로 손꼽힌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라 매일 두시간씩 한다는 명상도 바로 이것이다.


 인도에서 그 고엔카를 만나 위파사나를 수련한 이동환(50)은 한국인 최초의 ‘고엔카 위파사나’ 법사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197의39, ‘연트랄파크’로 불리는 경의선철길공원 옆 메디힐요가원에서 그를 만났다. 이 원장은 1996년 인도에서 10일코스를 처음했고, 2003년 법사가 되었다. 고엔카위파사나는 전세계 140개 고엔카위파사나센터에서 고엔카의 생전 법문에 따라 수행하는데, 한국어통역 녹음이 이원장의 목소리다. 


 인도 푸나에서 15년간 함께 머물며 요가수련과 학문을 병행했던 도반이자 부인인 이정수 박사(요가철학)와 함께 운영하는 요가원은 작지만 단아하고 고요했다. 오후 6시가 되자 수련생들이 입실했다. 몸 위주의 하타요가지만, 시종일관 깊은 호흡을 통해 근육을 이완시키는 수련이 이어졌다. 몸을 움직이는 듯하지만, 그 이완과 고요함이 명상과 둘이 아닌게 분명했다.

 이원장이 요가의 세계에 들어선것은 인도로 떠난 1994년이었다. 그는 푸나의 아헹가요가연구소에서 근현대 인도 하타요가의 전설 아헹가(1918~2014)를 만나 수련을 시작했다. 부인을 만난 곳도 그곳이었다. 그는 요가수련과 위파사나 수행, 석가 당시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공부를 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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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가 수련의 세계에 들어간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그를 처음 몸수련의 세계로 이끈 것은 태권도였다. 그는 인천 구월중학교 태권도부 창단 당시 주장이었다. 구월중은 그 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을 배출한 태권도의 명문팀으로 부상했다. 그는 신생팀을 이끌고 태권도대회 종합우승까지 시켜 태권도 명문팀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나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인문계고로 진학했다. 그러나 수련에 대한 미련은 버려지지않았다. 도서관에 앉아 눈을 감으면 대련이 실전처럼 펼쳐졌다. 화장실에 다녀온 친구가 그를 건드리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를 해내곤 했다. 그는 새벽마다 수봉공원에 가서 몸수련을 하고, ‘불교무술관’도 다녔다. 때마침 나온 <단>이란 소설 속의 호흡법을 홀로 해보기도했다. 그런 수련에 몰두하면서 다음날 일어날 일이 눈에 보이는 신비한 현상을 체험하곤 했다. 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한마디로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수행이나 깨달음을 운운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천주교 순교자까지 낸 7대째 천주교 집안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부가 되어서 수도할 작정으로 서울가톨릭대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깨달음을 포기할 수 없어 1년만에 중단했다. 그리고 숨은고수들을 찾아 수련을 하다 인도까지 간 것이다.


 “아헹가는 처음 만난날 ‘나는 명상은 안가르친다’고 하데요. ‘뚱딴지 같은 소리’로 여겨 ‘어떻게 명상 없이 요가가 된단 말이냐?’고 묻자, 자신은 ‘육체적 단련과 호흡을 명상적 단계로 승화시킨다’고 하더군요. 대단한 자부심이었지요.”

 실제로 아헹가는 귀신처럼 몸을 다뤘다. 한국에선 기마자세를 할 때도 달달달 떨면서 근육의 힘으로만 버텼는데, 그의 지적대로 동작을 하고, 호흡을 하니 근육이 아닌 다른 힘으로 설 수 있었다. 아헹가가 요가를 통해 환자들을 쉽게 치유하는 것을 보고, 그도 원리를 터득하기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가 필생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한 이는 아헹가가 아닌 고엔카였다. 고엔카는 그가 이전에 만났던 ‘이른바 고수’들과 달랐다. 그가 만난 도인들도 남다른 능력자이긴 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비전’이라며 쉽게 내놓지도 않았다. 더구나 위파사나를 수행해 일체가 산산히 부서지는 체험을 해보니, 공능을 과시하고 도력을 겨누어 더 센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우습고 부끄러워졌다.

 “고엔카는 담마(진리)를 공중에 살포하더군요. 실제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그 귀중한 담마를 아무런 조건없이 나눠주었지요. 그를 만나 투정을 해보기도 했는데, 그를 만나고 나올 때쯤엔 속이 말랑말랑해진 아기가 된 느낌이었어요. 내면에 아무 것도 남지않아 비워진 것같아, 이 분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2.JPG» 1994년 인도 푸나의 아헹가요가센터에 인텐시브코스에 입문했을 당시. 두번째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아헹가. 세번째줄 맨왼쪽 빨간셔츠를 입은 이가 이동환 원장, 두번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부인 이정수박사다.


 이원장은 20세기 대표적인 명상스승으로 꼽혔던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와 고엔카와 아헹가가 가진 인연도 소개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신지학회원들에 의해 메시야로 발탁돼 훈련받아 신지학회 수장이 되었지만 32세에 수장직을 사입하고 모든 종교적 관념과 종교적 단체와 관계를 끊고, 권위자로서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적 가정을 의심하며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관찰자로서 여생을 보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마음으로 직입하면 되지, 어떤 테크닉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했지요. 고엔카가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 일반인이 마음으로 직입하는게 쉽지않기 때문에, ‘10일간 첫째날은 이렇게, 둘째날은 이렇게 점차 매일 기법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게 한다’고 설명했지요. 그러자 크리슈나무르티도 ‘그런 테크닉을 사용하더라도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도록 이끈다면 그건 테크닉이 아니라 전법(진리를 전함)입니다. 그러니 지도하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아헹가는 브라만 집안이어서 산스크리트어와 요가수트라를 공부는 했지만 명상을 따로 하지않고, 주로 자체 체험을 통해 터득했기에 표현이 좀 거칠었지요. 아헹가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찾아 기기묘묘한 요가 동작들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크리슈나무르티가 ‘유아 프로페셔날’(당신 프로군요)라고 했는데, 이건 칭찬같지만  ‘당신 꾼이구만’이란 비난으로 들릴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자 아헹가가 ‘지금 돈과 명예가 따르긴 하지만, 한번도 돈과 명예를 보고 수행한 적이 없다’고 했다는군요. 크리슈나무르티는 ‘오해하지 말라’며 자기가 매일 40분씩 한다는 요가를 보여줬는데, 아헹가가 보고 ‘호흡이 잘못 됐다’며 몇가지를 지적해 다시 하게 하자 호흡이 아주 편안하게 잘 되는 것을 보고 크리슈나무르티도 ‘당신으로부터 요가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푸나에 머무는 3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세차례씩 아사나 동작과 호흡을 지도 받고, 또 2년 후에 방문했을 때도 3개월간 아헹가로부터 요가를 지도받았다고 해요. 요가에 있어서마는 크리슈나무르티도 아헹가를 인정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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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원장은 2009년 귀국한 뒤 10일 코스가 열릴 때면 위파사나를 지도하면서, 코스가 없을 때는 아무도 몰래 ‘막일’을 해서 생계를 잇기도 했다. 고엔카위파사나는 법사라고 해도 아무런 보수를 받지않고 일체를 봉사할 뿐이다. 그는 2년 전에야 이 요가원을 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철저히 요가만 가르치고, 명상단계는 고엔카 위파사나 10일코스에 가서 하도록 안내한다.  

 그는 불면증, 급성요통 등 스트레스성 질환들을 요가 동작과 호흡을 통해 개선시키는 내공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남다른 점은 몸과 마음을 함께 아우르는 통합에 있다. 

 “극진가라데의 고수 최배달이 몸수련만을 한 것이 아니지요. 최배달은 ‘방심하지 말고, 당신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알아차리도록 깨어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것이 바로 위파사나의 ‘알아차림’과 다름이 없지요”


 그는 몸수련도 그런 깨어있음과 자기 중심을 잃지않은 균형과 평정심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태권인 출신으로서 현대 태권도가 점수 몇점 얻기 위해 자기 중심도 잡지못한채 자신을 상대에게 던져버리는 식으로 변질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태권계 후배들에게 몸의 균형을 잃지않은 ‘요가식 태권도’를  익혀보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다. 상대를 때리기 위해 상대만 보는 무술이 아니라 자신을 보면서 평정심을 갖는 무도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몸과 마음이 결합되어서 일어나는 감각들에 대한 알아차림을 계발하라’고 했지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나 소리, 냄새 등을 쫓아 밖에 온통 의식을 빼앗기며 살아가지요. 요가가 운동은 운동이지만 자기 몸과  자기 호흡을 지켜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계발할 수 있게하지요. 몸과 호흡에 온전히 깨어있어야 쓸데 없는 긴장을 풀 수 있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이 원장은 소방관들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나 학교내 왕따와 폭력도 요가를 통해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이완과 알아차림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지켜보는 힘을 길러야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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