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천 밝은누리에서 아이들(서있는 아이는 자기 아들, 앉은 아이는 공동체의 아이)과 놀고 있는 한 아빠
“남자가 육아와 살림을 함께하지 않으면 구원받기 어렵다” <밝은누리>에서 독박육아와 가부장질서를 극복하는 마을문화를 만들어 갈 때, 자주 서로 독려했던 말이다. 이런 노력 덕에 지금은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살림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부모뿐 아니라 마을 청년들이 이모 삼촌 되어 함께 하기에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함께 한다’는 말을 늘 실감하며 산다.
‘알아서 긴 다’는 말이 있다. ‘지배의 내면화!’ 지배받는 이들이 자기가 지배받는 걸 모를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질서를 지탱하는 생각을 하고, 지배를 재생산하는 욕망과 정서를 갖는 거다. 옛 것이 생명력을 다하고 새 질서와 법으로 대체되어도, 옛 관습과 문화가 여전히 힘을 갖고 작동하게 하는 힘이다.
<밝은누리> 인수마을을 만들어 가던 초기,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신청했을 때, 법으로 보장된 거지만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할 문제였다. 인사 불이익에 대한 걱정,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회사에서 나름 능력을 인정받던 이는 다른 사유로 휴직처리 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았다. 인사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배려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육아휴직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는 거였다. 실효 없는 법 보다 ‘서로 눈치 보며 알아서 기는 관습’이 깨지는 게 더 위험했던 거다. “못 들은 걸로 할게!” “그런 거 다 포기하고 일하는 동료들 안 보이냐?” “다른 회사 갈 거냐?”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 후에는, ‘잔머리 굴리는 놈’, ‘다른 회사 갈 놈’이 되어 버린다. 이런 대화가 오가고, 회사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면, 계속 요구하기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제 풀에 지친다. 자기도 겨우 설득된 거라 오래 가기 어렵다. 아이 돌보고 살림하는 것 보다 오히려 회사 일이 편하니 못이기는 척 체념하기도 한다. 혹 간절함이 있어도 여러 걱정과 불안, 질질 끄는 대응에 지쳐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우리는 그 관습과 정서를 함께 넘어 섰다. 재미있는 일은 육아휴직 후 누구도 걱정했던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거다. 부딪혀 보기도 전에 과도하게 걱정하고 두려워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아서 기게 하던 관습의 힘’은 우리에게서 그렇게 사라져갔다.
공부하러 오던 한 학생과 상담을 했다. 친구들이 무서운 영화 보는 걸 즐기는 데, 자기는 너무 힘들다는 거였다. 따돌림 당할까 두려워 말도 못하겠단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걸 배려해 주지 못할 친구라면 미련을 갖지 말고 얘기하라고 했다. 다음 주에 밝은 얼굴로 찾아왔다. 친구들이 잘 들어 준 거다. 같은 고민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대신 얘기해 줘서 고맙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이래저래 우리 삶에는 부딪혀 보지도 않고 미리 체념하고 포기하는 게 참 많다. 혹 어려움을 겪더라도 가야할 길은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삶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