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시가 3개월마다 한번씩 여는 전직원 조례시간에 서울시청 8층 대강당에서 박원순 시장님을 비롯한 간부들과 전직원 800명을 대상으로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제 책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전직원 조례 시간이 1시간20분으로 제한돼 있어서 강연시간이 적어 아쉬움이 있었지만, 박시장님을 비롯한 전직원들이 깊게 경청하고 공감해주고, 박시장님이 이렇게 시간 쫓겨가며 해야되느냐, 한나절은 이걸로 모두 한번 듣고 얘기해보면 어떠냐고까지 말씀해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먼저 탐사한 마을공동체 모습을 PPT를 보여주며 설명했고, 이어 ‘진짜 한국병의 원인’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합니다.
한국 청년들의 5포, 7포, 저출산, 높은 자살율과 OECD 3~4의 존속살해율 한국병의 진짜 원인은 드러난 것만 아닙니다. 1970~9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아기 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무의식에 안전기지를 상실한데 큰 원인이 있습니다. 여기선 아기의 입장에 서서 얘기해보겠습니다.
196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의 아기 원숭이 격리 실험이 말해주듯이 아기 때 어미와 격리돼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그 아기는 정상적인 사회성을 갖기 어렵게 됩니다. 한국은 서구 국가들이 200~300년간 변화시켜온 것을 50년만에 급격히 변화시켰습니다. 1960년 250만명이 채 되지않았던 서울시는 이제 천만명이 넘었고, 도시 인구는 40프로 미만에서 90프로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촌마을 사람들은 기회를 찾아 도시로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그 사이 대가족도 사라지고, 마을도 사라져갔습니다. 불과 40~50년 전만에도 어느 골목에서 아이들이 있었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선 어느 골목에서도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고도성장기에 어른들은 살기 위해 고생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신이 났습니다. 그 전에는 뭘 해볼래야 해보기도 어려웠지만, 1962년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공장이 돌아가고, 도시가 만들어지고, 건축붐이 일고, 일자리가 생기고, 기회가 생겼습니다. 과거엔 논밭을 파도 세끼 밥도 해결하기 어려웠지만, 아메리칸 드림 이상의 드림을 가지고 기회를 잡기 위해 애썼습니다. 힘도 들었지만 어른들은 신이 나기도 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무력한 아기들의 입장에선 온전히 어미들로부터 돌봄을 받던 포유류로서 300만년만에 최초의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부모는 대가족과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핵가족으로 고립된데다, 그 부모마저 많은 이들이 일터로 떠나거나 일을 해야했지요. 아이에 대한 집중도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떨어졌습니다.
어려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하면 분리 불안이 생기고, 안전기지가 형성이 되지 못합니다. 안전기지가 형성된 아이가 넓은 바다에서 7함대를 타고 있다면, 안전기지가 없는 아이는 조그만 돛단배를 타고 있는 격입니다. 태풍 제비는 일시적으로 핥퀴고 지나가지만, 안전기지가 내면에 구축되지 못하면 평생 내면의 지진을 겪게 됩니다. 불안하고 두렵고, 인간을 믿을 수 없어서 인간관계를 회피하고 싶고, 숨고만 싶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10~20년 전부터 복지가 생겨나서 아이들의 충격을 조금 완화할 수 있는 시스템들이 조금씩 갖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들은 그보다 더 빨리 증가했습니다. 일에 지친 부모들은 퇴근 뒤나, 주말에도 자신들의 스트레스도 해소해야 했고, 취미 생활도 해야했습니다. 텔레비전도 봐야하고, 홈쇼핑도 검색해야 하고, 취미생활도 해야하고, 게임도 해야하고, 인터넷 에스엔에스도 해야하고,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부모들은 어미새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늘 새끼들을 돌보거나, 새끼들을 먹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지요. 과거에 우리의 부모들도 그랬기 때문에, 조금만 크면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부모를 이해하고, 가엽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현대문명은 어른들이 포유류로서 자식에게만 집중하는 본능보다 자신의 재미와 욕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의 차원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아기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구와 달리 한국과 같은 압축적인 성장을 이룬 중국에서도 벌써 저출산이 문제되기 시작했듯이 그런 압축성장 과정에서 그 시기를 지나왔다면 그런 트라우마를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분리불안으로 안전기지가 형성되지 못하면 내면이 불안하고 두려움의 정서가 지배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청년들 상당수가 모험에 나서기보다는 공무원이 되고싶어하는 것도 그 무엇보다 가장 안전한 곳, 더 흔들리지 않을 곳이 필요한 때문입니다.
오늘날 다시 마을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땅에서 넘어진 자들은 땅을 집고 일어서야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상처 받은 이들은 인간을 통해 치유해야 합니다. 숨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마당과 마을공동체를 잃어버려 포유류로서 엄청난 상실을 경험한 그들에게 최고의 치유책이 마을공동체이기 때문에 그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숨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힐링 프로그램이나 정신 상담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도 인간 사이에서 웃고 울면서 자기도 모르게 트라우마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마을공동체가 최선의 치유의 장입니다.
마을공동체가 가부장적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냐는 염려도 있지만, 실제 공동체나 공유주택을 가보면, 그곳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여성들이고, 아이들입니다. 약자들이 가장 혜택을 받고, 그들이 다른 세상을 경험합니다.
자기의 고향, 자기의 바다로 돌아가야 할 이는 고래 제돌이만이 아닙니다. 인간도 포유류로서 행복한 기억, 그 삶으로 돌려보내야합니다. 욕망을 쫓는 소수, 혼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살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의외로 허약하고, 다수는 서로 돕고 의지하고 함께하지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암자나 오두막에서 홀로 보냈던 법정스님조차도 고독할 수는 있지만 인간은 고립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시정은 그런 다수를 향해야합니다. 에스에이치 공사 같은 곳에서는 적어도 한층 정도는 공동체층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대가족들이 식당이나 거실이나 서재만 공유하는 2~3인집도 만들고, 서로 어울려 살고 싶은 사람들이 밥 먹을 때만 함께할 수 있게 4~5인 집도 만들고, 그런 식으로 모델을 만들어주어 우리 가까이에서 인간다운 어우러짐의 모습이 실제하도록 하는게 좋습니다.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정을 나눌 수 있는 '케미'를 더하게 해야합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맛 나게 해주는 주거가 되게 해주세요.
또한 파주 문발동이나 성남 논골처럼 보통의 마을, 그것도 남들이 선호했던 마을이 아닌 달동네들조차 공동체적인 어우러짐으로 살고싶은 마을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서울시민들이 가장 살고싶지않은 마을 100곳을 선정해 여러가지로 자발성을 살려내서 제가 가서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그린벨트를 훼손해 아파트를 지어서는 안되지만, 그런 공동체 마을로 서울을 둘러싼다면 나무와 숲이 둘러싼 것 이상으로 향기가 될 것입니다. 민속촌처럼 가짜 말고, 진짜 인간들이 어울려 행복을 만들어가는 마을, 그런 마을을 만든다면, 그린벨트를 그런 행복벨트로 만든다면 저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히키코모리가 되어가고, 스마트폰에만 빠져 단절되지않고, 인간들 속에서 어우러지도록 만나게 하고, 어울리게 하고, 즐기게 하고, 서로 돕게 하고, 그런 자발성을 부추겨주고, 지원해주고,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복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바로 서울시민과 세상을 구하는 천사이고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라이브서울의 강연 녹화 방송입니다. 3분기직원조례 시작 20분뒤쯤부터 강연, 박원순 시장과 대담이 이어집니다.
http://tv.seoul.go.kr/new/src/onair/vod_about.asp?cid=122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