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서안 자은사에 있는 현장법사 동상
여행자들의 수호성인 현장법사 이야기
장안을 떠난 현장은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꿈에 그리던 나란타 대학에 도착했다. 나란타 대학은 불교역사이래 최대의 승가대학이었다.배우는 비구들만 1만명이 넘었으며 불교철학은 물론 싼스크리트 문법.약학과 의학.논리학.천문학.수학.주술.불교예술.베다의 학문등 오명학(五明學)을 두루 수학하는 불교종합대학이었다. 중국에서 젊은 비구가 수만리 고행길을 지나 나란타에 도착하자 100여명의 승려와 신도들이 영접하고 찬탄하였다.
나란타 대학의 학장이신 계현법사(정법장.실라바드라)를 찾아 뵙게 되었다.현장은 예물을 바치고 무릎을 대고 기어가 스승의 발에 입을 맞춘후에 몸을 일으켜 정중한 자세로 큰절 3배를 올렸다. 106세의 계현법사는 물었다.그대는 어디서 오는가? 저는 당나라에서 왔으며 스승님께 유가사지론을 배우고 싶어 사막을 건너고 물을 건너 3년을 걸려 왔습니다. 계현법사는 현장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3년전에 병세가 심해지고 고통이 커서 육신을 떠날려고 하였다.그날밤 꿈에 세분의 보살이 나타나 말하였다. 계현법사는 전생에 백성들을 많이 괴롭힌 왕이었기 때문에 그 업보로 임종의 고통을 받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유가사지론을 배우러 비구가 출발하였다. 법사는 때를 기다려 그에게 불법의 요체를 전수해야 할것이다. 106세의 계현법사는 현장을 보는 순간 병세는 씻은 듯이 좋아지고 유가사지론을 전수할 인연이 온것을 기뻐하였다.
계현법사의 스승은 다르마팔라(호법)이다.호법은 디그나가에게 유식철학과 인명논리학을 전수받았으며 디그나가의 스승은 무착과 세친형제로 유명한 바수반두와 아상가이다. 무착은 매일밤 꿈속에 도솔천에 올라가서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들었다.꿈에서 깨어나면 그는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기록하였다.이렇게 백일간 꿈속에서 전수받은 미륵보살의 가르침이 유가사지론 100권이다. 유가사지론은 미륵보살이 설법하고 무착이 꿈속에서 받아적은 희귀한 논서이다. 계현법사는 현장을 위하여 15개월에 걸쳐 유가사지론을 세번 강설하셨다. 현장은 스승을 찬탄하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정법장 스승께서는 삼승의 가르침은 물론 외도의 단.상에 대한 내용을 숨기지 않고 모두 설법해 주셨습니다.품으신 고결한 뜻과 덕행은 널리 알려져 내외가 모두 귀의했고 인도의 위대한 스승이 되셨던 것입니다.
현장은 대승불교철학은 물론 소승의 18개부파 철학까지 모두 섭렵하여 나란타 대학의 10대법사로 손꼽히게 되었다.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현장을 나란타의 도반들은 놓치지 않으려고 두손을 꼭 쥐었다. 중국은 변두리 나라이고 불법을 홀대하니 부처님 태어나고 훌륭한 스승이 많은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고 떠나지 말것을 애원하였다. 현장도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였다. 인도에 와서 위대한 스승님을 뵙고 불법의 진수를 배울수 있는 행운을 감사하고 이 깊은 가르침을 중국에 소개하고 전하는 것이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하였다. 귀국후 10년후에 계현법사의 열반소식을 듣고 현장은 울부짖으며 외쳤다.
제 마음이 쪼개지는 것을 억누르려 해도 멈출수가 없습니다. 중생들이 탄배는 고해에 침몰했고 천인들과 사람들은 이제 두눈을 잃었습니다. 어찌 입적의 고통이 이처럼 빨리 왔단 말입니까? 스승님께서는 아리야 데바의 덕을 물려 받으셨고 나가르주나의 지혜를 이어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불법의 깃발을 높이 들어 외도의 본거지를 때려 눕히고 이단들의 홍수같은 물줄기를 돌려 놓았습니다. 아,탕탕하시도다.오,외외하시도다.정법장께서는 실로 불법의 당간이시고 큰지혜의 바다였습니다.정법장께서 주신 연꽃줄기와도 같은 가르침은 아직도 은근히 제 귀에 들리고 있습니다. 아,어찌합니까.어찌하겠습니까? 연모의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습니다. 스승의 입적소식을 듣고 연모하는 마음을 표현한 현장의 절절한 구도심이 전해진다. 현장은 보드가야 대탑을 참배하며 이렇게 외친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시는 순간 이 몸은 대체 어느 악도에서 헤메고 있었단 말인가? 부처님께서 살아계시던 정법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장의 눈에서는 성불대탑을 참배하는 감동과 자신의 입장을 슬퍼하는 비탄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