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로 초대하는 건 더 깊고 따뜻해지라는것
새해를 맞으며 차분히 앉아 지난 한 해를 돌아보았다. 한 해 동안 개인적,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고요함 가운데 물음 하나가 일어났다. ‘그 많은 사건들 중에 무엇이 내게 특별했던 것일까?’ 그런데, 그 물음의 무게 중심이 ‘무엇’보다 ‘내게’에 더 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한 사건의 특별함은 그 사건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경험하고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일상의 작은 일도 마음챙겨 깊이 경험하면 내게 특별한 일이 되고, 세상의 큰일도 무심코 지나치면 내게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보면 모든 일, 모든 사건은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특별할 수도 있고 무의미할 수도 있다.
마하 고사난다는 ‘킬링필드’의 비극을 안고 있는 캄보디아에서 ‘살아있는 붓다’로 불리며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스님이다. 고사난다 자신도 크메르 루즈의 폭력에 모든 가족을 잃었지만, 전쟁 중에는 태국-캄보디아 국경 난민촌에서 피난민들을 돌보았고, 내전 후에는 증오와 학살의 상처가 남아있는 지역을 걸어서 찾아다니며 평화의 씨앗을 심었다. 파란만장한 삶의 그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스님, 지금껏 살아오시면서 특별한 순간들이 많이 있었지요?”
고사난다가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럼, 그 중 생각나는 몇 가지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고사난다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모든 순간이요.”
자신과 세계에 늘 깨어 참여하는 수행자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가르침이었다. 실제로 고사난다는 그의 모든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체험하며 살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음 걸음이 그대로 명상입니다.” 그에게는 지금 여기에서의 걸음 하나, 호흡 하나, 미소 하나가 곧 명상이요 기도였다. 그가 매년 ‘진리의 순례’라는 이름의 평화행진을 하며 전쟁으로 찢긴 캄보디아를 치유할 수 있었던 것도 모든 순간을 특별히 여기며 마음챙겨 살았던 수행의 결과였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모든 사건은 우리의 지혜와 자비를 자라게 하는 수행의 토양이며 기회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만큼이나 ‘내게’ 특별하고 중요한 순간은 곤경에 빠진 친구를 찾아가 무력감을 함께 견디는 것이었다. 사회가 배제하고 종교가 거부한 소수자와 공감하며 차별 없는 세상을 더불어 꿈꾸는 것이었다. 길섶에 핀 가을꽃을 가만히 바라보며 윌리엄 블레이크의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는 시구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진실과 정의를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것이었다. 내게 하나하나 모두 특별하고 중요한 사건이며 순간이었다.
초대장처럼 새해가 왔다. 또 한 해, 우리를 더 깊고 더 따뜻한 존재가 되도록 초대하는, 셀 수 없이 많은 특별한 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