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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더위, 도시에서 생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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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의 도시에서 생존하려면?


2013.8.19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시사비평 - 박병상]  editor@catholicnews.co.kr

 

에어컨이 혼수품으로 등극한지 오래되었지만 아무리 더워도 선뜻 켜기 어렵다. 아이가 더위에 지쳐도 차가운 물과 선풍기로 모면하려는 엄마의 행동은 국가적 전력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희생이 아니다. 생산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전기를 마구 낭비해도 누진세가 부과되지 않는 산업체와 달리 가장 비싼 전기요금을 감당하면서 누진까지 감내해야 하므로 꾹 참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시원한 그늘로 피신하기도 어렵다. 회색도시는 돈 쓰지 않는 자에게 조용하고 시원한 여름을 보장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암이 많아졌을까?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이 여름날, 무서운 햇볕을 가로지르는 일은 위험하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 차가운 과일을 깎아 먹거나 시원한 물로 몸을 씻는 편이 나은데, 요즘은 그도 조심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재배해 유통시킨 과일인지, 믿을 만한 물인지 신경 쓰게 된다. 수확 후 오래 운송하면서 많은 농약을 뿌리는 수입과일이라면 피하는 게 좋다. 지구온난화 여파로 위도와 고도를 높이는 국내산 과일이라도 농약 성분은 남아 있지 않은지 따지게 된다. 녹조가 끈적끈적한 낙동강에서 받는 지역이라면 수돗물은 끓이고 정수해도 흔쾌하지 않을 듯싶은데, 한강은 아니 그럴까.

엡스타인이라는 미국의 환경의학 교수가 ‘사람이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이 50퍼센트에 이른다’고 주장했다는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사실 암은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이다. 젊은이가 암 수술한 뒤 회복중이거나 악화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만, 노인의 암을 주목하는 이는 드문데, 암이 전에 없이 늘어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암의 원인인 발암물질의 양이 점점 늘어나고 독성이 강해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발암물질은 대부분 자연물질이 아니다. 물론 발암물질에 노출된다고 모두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면역력이 높으면 잘 견뎌내는데, 면역력마저 요즘 약해진 걸까.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백 년 전에 폐렴, 독감, 결핵, 세균성 질환, 심장 질환이 많았고, 암은 8번째였다고 한다. 사망자의 4퍼센트에 불과했다는데, 자동차 사고가 빈발하는 요즘, 암이 압도적 사망원인 1위로 등극했다. 아무래도 자연에 없는 물질, 예를 들어 석유화학제품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석유화학물질은 생태계 순환에 동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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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칫 몸을 망칠 수 있는 이 여름에 충분히 쉬지 못한다면 음식이라도 잘 먹어야 한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농촌의 유기농 생산자에게 고맙고 미안해해야 한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식구의 건강을 도모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은가.” ⓒ문양효숙 기자


더운 날 차가운 물과 음식을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갑자기 낮아지는 체온을 정상으로 맞추려 몸이 뜨거워지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하긴 더운 날 그늘에 앉아 삼계탕 같이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몸이 시원해지는 걸 느낀다. ‘이열치열’이라지만, 더운 날 선뜻 뜨거운 음식을 찾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몸을 강제로 식히는 차가운 음식에 석유화학제품으로 만든 첨가물이 많다.

담뱃잎은 자연물질이지만 대량생산되는 요즘 담배는 다르다. 수많은 자연, 또는 화학물질이 잔뜩 들어가 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나도 전혀 썩지 않는 햄버거와 피자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제품인 과자나 음료, 화학물질인 랩으로 덮어 배달되는 음식은 아니 그럴까. 우리는 한평생 일인당 320킬로그램의 화학물질을 섭취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썩지 않게 만드는 농약이나 신선한 듯 보이게 하는 색소만이 아니다. 음식을 부드럽거나 쫀득쫀득하게 하거나 눈과 코를 자극하는 화학물질들도 문제를 일으키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성장호르몬도 빼놓을 수 없다. 소와 돼지, 닭과 오리와 같은 공장식 축산만이 아니다. 양식 물고기도 마찬가지인데, 앞으로 합법화된다면 개고기는 아니 그럴 것인가.

옷을 자주 갈아입는 요즘, 옷 한 벌당 1500개에 달하는 초미세 플라스틱이 세탁기를 빠져나간다고 한 연구자는 밝혔다. 요즘 우리가 입는 많은 옷은 석유화학물질이다. 도시마다 배출하는 생활하수 속의 초미세플라스틱은 강을 타고 바다로 흘러들면서 어패류의 몸에 들어가고, 그 플라스틱은 결국 사람의 몸으로 스며들 것이다.

 

한데 초미세플라스틱에서 멈추지 않는다. 2011년 3월 11일 이후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은 방사성물질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먹이사슬을 지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농축되는 방사성물질은 몸속으로 들어가 머물 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방사능을 몸에 직접 쏘이기 때문인데, 대표적 방사성물질인 세슘과 스트론튬은 반감기가 30년이다. 먹성 좋은 방어나 참치에 농축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플루토늄은 자그마치 2만4천 년이다.

최근 국무총리가 포함된 정부 고위관리들이 물회 시식 장면을 연출했다. 감동한 자 누구일까. 일본산 해산물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은 일본 수상이 흐뭇해할 그 희생적 시식 장면을 보고 어리둥절해야 했다. 우리 소비자를 걱정해야 할 이 땅의 고위관료가 아니었나. 그 모습을 본 시민들은 후쿠시마 해역에서 잡은 물고기였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며 역겨워했는데, 이 여름에 우리는 어떤 물회를 먹어야 하나. 양식 물고기를 택할까? 양식 물고기도 공장식 축산인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처럼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주요 사료로 먹인다. 앞으로 개 사육과 도축을 법으로 견인할 경우, 다시 말해 법으로 한국은 개 식용 국가라는 걸 국제사회에 선포하게 된다면, 사육과 도축업자들은 경쟁적으로 개마저 공장식으로 키울 게 틀림없다.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송곳니 뽑아 밀집해 사육하며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이겠지.

 

일하고 공부하기에 너무 무더운 시간에는 쉬는 게 정답

밥맛 잃기 쉬운 이 여름, 무얼 먹어야 하나. 둘러봐도 당기는 게 없다. 턱턱 숨이 막히니 일도 버겁다. 집 말고 돈 들이지 않고 쉴 공간이 이 도시에 없으니 눅눅한 선풍기 바람 받으며 오수를 즐길 수밖에 없다. 일은 잠 안 오는 밤으로 미뤄야겠다. 여름이 특히 뜨거운 스페인의 오랜 문화, ‘시에스타’가 부러워진다.

맞다. 움직이기 어렵게 무더우면 쉬는 게 순리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여름철이면 축 늘어진다. 수업시간을 줄여서라도 여름방학을 지금보다 대폭 늘려야 한다. 학생은 물론 교사도 더운 날은 더욱 지친다. 움직이면 몸이 뜨거워지니 학생들은 허겁지겁 차가운 음식을 찾을 것이다.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은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나이 들어 고생할 수 있다.

자칫 몸을 망칠 수 있는 이 여름에 충분히 쉬지 못한다면 음식이라도 잘 먹어야 한다. 조상이 살아온 이 땅에 먹을 게 없을 리 없다. 차가운 음식은 멀리하고 화학물질 첨가물이 많은 패스트푸드를 외면하며 일본 해역을 지나간 해산물과 유전자조작 사료를 먹인 공장식 축산물을 피할 음식은 많다. 조상처럼 자연스런 음식을 찾는 거다. 더울수록 농약 뿌리면 간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땀 흘리며 김을 매 재배한 유기농산물로 식구 또는 친지와 음식을 직접 차려 나누는 일이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농촌의 유기농 생산자에게 고맙고 미안해해야 한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식구의 건강을 도모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은가.

 

여름을 건강하게 견디려면 근원적으로 녹지와 농토와 습지를 많이 조성해 이웃과 땀을 흘린 뒤 쾌적한 그늘에서 맘 편히 쉴 수 있는 도시를 가꾸는 일이 중요할 텐데,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에어컨에 기대기보다 적당한 운동으로 면역력을 높이자. 그편이 자연스럽다. 운동을 하며 마음 나눌 이웃이 곁에 있다면 몸과 맘뿐 아니라 사회의 면역력도 높아진다.

여름은 더워야 정상이다. 여름이 더우면 가을이 풍성하다. 입추가 지났으니 머지않아 귀뚜라미가 바통을 이을 터. 어느새 새벽바람이 시원해졌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속출하지만 계절이 아직 멀쩡하게 흐르니 고맙지 아니한가. 자연스러움으로 도시의 여름을 배웅하자.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 환경연구소 소장)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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