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 무렵을 미국 켄터키주 겟세마니 수도원에서 기도하며 보냈다. 현대의 위대한 영성가요 작가인 토머스 머튼이 트라피스트회 수도자로 살았던 곳이다. 미국에서도 탈종교화 현상이 급격히 전개되면서 겟세마니의 수도자 수는 크게 줄었지만, 머튼을 만나기 위해 지금도 찾아 오는 이들이 한 해 오천 여 명이다. 나도 머튼에 이끌려 겟세마니를 찾아 갔지만, 오래 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또 한 명의 겟세마니 수도자가 있었다. 머튼이 ‘성인(聖人)’으로 부르며 존경하고 사랑했던 노수도자 스테픈 신부다.
스테픈은 수도원 밖은 물론이고 안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평범한 수도자였다. 게다가 어느 공동체나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인 ‘웃기는 친구’로 취급받던 이였다. 그가 수도자의 본분인 기도보다 정원의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를 ‘오직 하느님만’ 바라야 할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집착으로 여긴 수도원장은 스테픈에게 정원 가꾸는 일을 금지했다. 스테픈은 원장에게 순명했지만, 그래도 수도원 여기저기에 몰래 화초를 심곤 했다.
» 미국 켄터키주 트라피스트수도회 소속으로 살았던 토마스 머튼 신부
엄격했던 수도원장이 세상을 떠난 후 수도원 책임을 맡은 새 원장은 스테픈이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그를 수도원 정원사로 임명했다. 그 후 스테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원에서 지냈고, 수도자가 준수해야 할 매일의 기도에는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다른 수도자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그가 아름답게 가꾼 정원은 수도자들의 작은 기쁨이었다. 어쩌다 수도자들의 가족이 겟세마니를 방문하면 스테픈은 그들에게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선사했다.
성 프란치스코 축일 오후, 스테픈은 수도원 입구의 작은 정원으로 가서 성모상 가까이에 있던 나무 아래 누웠다. 마침 정원을 지나던 한 수도자가 그런 스테픈을 의아해하며 바라보았고, 스테픈은 그에게 인사하듯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숨을 거뒀다. 그날 스테픈 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머튼은 그의 죽음을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했다.
머튼이 아니었다면 스테픈은 겟세마니 공동체에서도 금세 잊혔을 것이다. 그는 스테픈을 추모하는 조시를 썼고, 자신이 죽기 몇달 전 했던 한 강연에서 스테픈의 삶과 죽음을 인격적 성숙과 완성의 표지인 ‘최종적 통합’의 본보기로 소개했다. 스테픈은 다른 누군가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즉 ‘정원사’로서 신과 인간과 자연을 온전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머튼의 믿음과도 일치한다.
스테픈과 머튼은 수도원 뜰에 친구처럼 나란히 묻혀 있다. 젊은 시절 두 사람과 함께 생활했던 한 노수도자에게 스테픈이 죽은 정원을 물었더니, 내가 머물고 있는 독방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역설적이게도 ‘오직 하느님만(God Alone)’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정원이다. 봄이 살포시 발을 들여놓고 있는 정원을내려다보며, 그곳에서 다정히 함께 거니는 스테픈과 머튼을 상상하는데, 두 ‘성인’이 나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묻는다. ‘친구여, 그대는 무엇이 되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