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모자를 뺏어쓰고 장난을 걸어오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법인 스님
붓다에게 질문한 사람들 - 첫째
1.간혹 이웃하여 사는 사람들이, 장가도 안 가신 스님이 어떻게 세상일을 속속들이 아느냐고 묻는다. 저자에서 절집은 한참 먼 거리 산중에 있다. 또한 ‘출가’와 ‘수행’의 단어는 단절과 은둔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세상일에 먹통인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도 안 된다. 부처님은 번뇌와 욕망에 무심하라고 했지 세상사에 무관심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일들에 대한 바른 통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건의 발생 원인과 결과를 잘 하는 지혜를(세속지,世俗智)를 강조했다. 또한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 중에 ‘세간해(世間解’는 세상일을 잘 이해하고 해결해 준다는 뜻이 있다.
2. 여튼 종교인들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숱한 사연을 들어주다 보니 다양하게 세상일을 알고 있다. 산중에 사는 나도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마냥 한가한 대화만을 나누는 게 아니다. 때로는 가슴 아프고 억울한 사연들을 듣는다. 부담 없는 잡담을 나누는 경우도 있다. 진지한 주제로 학술토론회의 경지까지 가는 대화도 있다. 어느 분야의 전문 소양을 갖춘 사람이 오면 함께 차담에 참여한 사람들과 즉석에서 강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서로 노래와 시가 오고가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문과 풍류가 꽃피우기 좋은 곳이 절집이다.
산중 절집은 바다와 같다. 산과 강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백천지류의 물들이 바다에 모이듯, 여러 사람과 여러 사연이 모여드는 곳이 절집이다. 그래서 절집은 늘 고요하면서도 말들이 넘쳐난다. 절집은 대방광불화엄경이다. ‘대방광’은 무한으로 넓고 다양한 시공간을 말한다. ‘화엄’은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는, 어느 누구도 주눅들지 않고 참여하는 꽃들의 어울림으로 꾸며진 꽃밭을 말한다. 그래서 화엄경을 ‘잡화엄식(雜華嚴飾)’이라고 한다.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우리들은 유치원에 모여 살아요”라는 노래가 바로 잡화엄식, 화엄경의 세계다. 여러 사연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절집은 늘 잡설의 꽃이 핀다. 잡설이 모이면 경전이 된다. 온갖 잡설이 모여 ‘대방광’한 ‘불’의 ‘화엄세계’를 이루었다. 나무 잡설 보살 마하살!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3. 경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부처님이 제자들은 모아 놓고 강의한 내용이 경이 된다. 철학적 주제가 강의 내용을 이루기도 하고 일상의 일들을 주제로 도덕과 윤리 강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어느 누구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하면 그 내용이 전승되어 작은 경전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즉문즉답’이 모아져 편찬된 경전이 의외로 많다. 또는 인생상담이 그대로 경전이 된다. 다음은 묻고 답하는 상담으로 만든 작은 경을 보자.
부처님이 라자가하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흉악’이라는 별명을 가진 촌장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흉악’이라고 부르는 것에 무척 속이 상해 있었다.
“부처님, 사람들은 저를 가리켜 자꾸 ‘흉악’이라고 부릅니다. ‘선량’이리고 불려도 뒤에서 욕하는 사람이 많을 터에 ‘흉악’이라고 불리고 있으니 그 다음은 듣지 않아도 뻔할 것입니다. 도대체 저는 어떤 행동을 했기에 이렇게 나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지요?”
부처님은 촌장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촌장이여, 그대는 무엇보다도 바른 견해를 갖지 못하여 남에게 화를 자주 내고, 화를 내기 때문에 나쁜 말을 하며, 남들은 그 때문에 그대에게 나쁜 이름을 붙이느니라. 또 바른 견해, 바른 말, 바른 업,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생각, 바른 선정을 닦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화를 내는 것이니라. 스스로 화를 내면 남을 화나게 만들고, 남이 화를 내면 자신은 더욱 화를 내게 된다. 그리하여 그대는 흉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느니라.”
“부처님,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바른 소견을 닦지 않아서 남에게 화를 잘 내고, 화를 잘 내기 때문에 나쁜 별명이 붙었나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화를 내는 일과 거친 말을 삼가겠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간단하면서도 마음에 와닿았던지 그는 그 자리에서 삼보에 귀이하고 재가 신자가 되기를 다짐했다. _ 잡아함 32권 910경 『흉악경』, 홍사성 번역.
4. 세상의 길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싯다르타는 진지하게 온몸으로 물었다. 생노병사의 근원적 불안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그리고 모든 생명이 싸우지 않고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질문이 있는 자는 스승을 찾고 세상의 작은 일에도 예민한 촉수로 이치를 살피고 탐구한다. 그리고 전신으로 그 길을 깨닫는다. 청년 싯다르타가 자신과 세상을 향해 질문하고 마침내 그 답을 찾았다. 이어 제자들이 부처님께 질문했다. 금강경도 질문으로 시작한다. 구도심을 발한 보살은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유지해야 하느냐고. 부처님이 이에 답한다. 그 무엇에 갇히거나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마음을 쓰라고 간명하게 핵심을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그 시절, 마을 촌장이 답답한 가슴을 부처님께 열어 보였듯이 오늘도 내 이웃의 많은 사람들이 아픈 속내를 털어놓고 위로 받고 싶어한다.
사람이 묻고 사람이 답하면 바로 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