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폭력흑인인권운동 마틴 루서 킹의 막내딸 버니스 킹 목사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을 100년 전 ‘3·1독립선언’이 대표한다면, 미국엔 1963년 8월28일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광장에서 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아이 해브 어 드림)이 있다.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으로 비폭력흑인인권운동을 펼쳐 1964년 역대 최연소인 35살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그 ‘전설적 인물’의 딸 버니스 킹(56) 목사가 한국을 찾았다.
2남2녀 중 막내로 신학박사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버니스 킹은 아버지가 암살 당한 뒤 어머니 코레타 스콧 킹이 설립한 킹센터의 대표로 2012년 취임해 아버지의 공식 후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부모의 비폭력인권운동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비폭력365’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킹과 함께하는 학생들’ 모임을 꾸려 비폭력 원리를 교육하고 있다. 4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를 만났다.
킹센터는 지난해 3월 마틴 루서 킹 추모 50돌 행사를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그는 추모행사에 참석했던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이영훈 목사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그게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 자신에게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을 당했을 때 버니스 킹은 한창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던 5살이었다. 그는 “그 일로 인한 분노 관리가 오랫동안 힘들었고, 지금까지도 노력하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러나 분노는 자신을 먼저 좌절시키고 파괴시키기 때문에 거기에 사로잡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머니로부터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보고 배웠다”며 “분노가 생길 때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우울해질 때마다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 1963년 8월28일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광장에서 25만여명의 군중들에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아이 해브 어 드림)란 연설을 하는 마틴 루서 킹
그는 비무장지대를 견학하기도 했지만, “한국이 미국보다 평화롭고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첫인상을 전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선 경찰들조차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언제 어디서 총기사건을 당할지 몰라 두려운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 문제와 관련해서도 “폭력과 전쟁은 어떤 상황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 “남북이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소통을 많이 해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비폭력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일 다종교인들이 한목소리로 독립을 선언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던 그는 ‘종교 간 갈등’에 대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도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버니스 킹은 “전날 청년들과 나눈 희망토크에서 ‘한국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질문이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교회 밖의 사람들과도 서로 소통함으로써 좋은 관계를 맺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청년은 문제의 제기자가 아닌 해결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소년 자신이 변화를 이루는 데 앞장 서야 하고, 자신이 해결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자신이 이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는 “아버지도 흑인들이 처한 너무도 힘든 현실적 조건과 상황을 바꾸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기에 이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버니스 킹은 미국 개신교에서도 동성애 문제 등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꼽히는 남침례교 소속 목사이다. 그는 미국감리교단 안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과의 갈등 사례를 소개하면서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차이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려움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