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항암(橋杭岩)-갈등으로 인하여 서로 기운만 소진한 채 결실없는 일을 하다
컴퓨터에 입력한 자료들을 안전하게 모아 둔 외장하드에 문제가 생겼다. 초조함이 손끝으로 모였고 몇 번의 클릭 끝에 자료확인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머릿 속이 하얘졌다. 서랍 안에 고이 두었고 실수로 충격을 가한 일도 없었다. 자료가 사라질만한 별다른 이유가 없었기에 간단한 고장이라 여기고 급한 마음으로 종로구청 인근의 컴퓨터 가게로 갔다. 점장은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그냥 두고 가라고 한다. 얼마 후 종로의 솜씨로는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동의한다면 용산구의 전자상가단지에 수리의뢰를 대행해 주겠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에 노트 북이 오염되어 간 곳도 용산이었다. 그 때 기존의 저장된 원고가 몽땅 사라지면서 하늘이 노랗게 바뀌는 경험을 했다. 섬세한 성정의 동료는 바닷물에 빠졌던 자료도 복원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곳을 알고 있다면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컴퓨터 맹인을 안심시켰다. 며칠 뒤에 노트 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한 상태로 주인의 품에 안겼다. 그 바람에 용산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생겼다. 그 기억 때문에 흔쾌히 용산으로 보내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외장하드 속의 사진자료는 기대와 달랐다. 1/3은 날아갔고 2/3 정도만 겨우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가장 최근 사진은 작년(2018) 가을에 일본 고베(神戶)에서 열린 한국 중국 일본 불교관계자들이 모인 행사였다. 본 행사 후에는 늘 덤으로 관광이 뒤따른다. 절집속담에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했다. 틀에 짜인 규격화된 본행사도 의미가 적지 않았지만 느슨하고 자유로운 관광이 더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그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살폈다. 공식행사 사진 뒤로 이어지는 관광사진을 확인하면서 몇 달 전의 일을 어제처럼 떠올렸다. 이것이 문자기록과는 또다른 사진기록의 힘이다.
그 목록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화면은 혼슈(本州)의 가장 남단인 구시모토(串本)에 있는 교항암(橋杭岩하시구이-이와)이다. 육지에서 섬을 향해 이어진 40여개의 크고 작은 바위가 약 850m 가량 이어진 곳이다. 그 모양이 마치 자연이 만든 교각처럼 보인다고 하여 ‘다리기둥바위’라고 불렀다. 그 옛날 화산이 폭팔할 때 육지에서 분리되며 바다로 떨어진 병풍처럼 긴 바위가 오랜 세월동안 물과 바람에 씻기고 깎인 탓에 지금같은 모양으로 남았다고 한다. 멀리서 찍고 가까이서 찍고 심지어 떠나는 버스 안에서도 그 앞을 지나가며 소형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눌릴만큼 강렬한 영감을 준 명승지였다. 동시에 일본열도에서 한반도의 원효스님만큼 유명한 공해(空海구카이774~835)대사의 일화가 남아있는 성소(聖所)이기도 하다. 성소에는 반드시 스토리텔링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가이드의 설명과 관광안내판이 전하는 내용은 단순하리만치 소박하다.
어느 날 대사와 요괴가 다리놓기 시합을 했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은 하룻밤이다. 초저녁에 시작했다. 한동안 진도가 비슷하게 나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자정이 지날 무렵에는 요괴의 패색이 짙어졌다. 지는 것보다는 무승부가 낫겠다고 판단한 요괴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재주를 발휘하여 진짜 닭처럼 새벽 닭소리를 목청껏 길게 뽑았다. 정해진 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한 대사도 약속대로 미완성의 상태에서 작업을 중단했다.
섬은 늘 육지로 향한다. 반대로 땅끝에 서면 또 끝을 찾아 섬으로 가고자 한다. 그것이 인간의 심리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섬과 육지가 연결된다면 이익을 얻기도 하겠지만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작은 손해 때문에 다리가 이어지길 원하지 않는, 감추어진 내심을 요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만약 닭소리가 없었다면 쌍다리가 만들어졌고 함께 힘을 모았다면 왕복도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의 다리조차 완성하지 못한 채 철썩이는 파도에 부딪히는 바위교각 수십개만 볼거리로 남겼다.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경쟁심과 승부욕은 전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 전설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남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심술까지 보태지면서 극적 긴장감까지 더했다. 결국 갈등으로 인하여 서로 기운만 소진한 채 결실없는 일을 한 셈이다. 대사의 선의까지 빛이 바랬다. 바다 위의 돌기둥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을 경계하는 자연이 만든 교실인 것이다. 어쨋거나 미완성이라는 아쉬움과 불완전함이라는 미학이 주는 아름다움 위에 종교적 신화까지 합쳐진 신비로운 관광성지를 찾아간 기억이 다시금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