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도시로 들어가는 사람들
*영화 <감기>
정유정의 소설 <28>과 김성수 감독의 영화 <감기>는 둘 다 전염병이 창궐해 폐쇄된 도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28>의 '화양'이란 가상도시에 사는 29만명, <감기>의 분당시민 40만명은 갑자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도시에 바이러스가 퍼진 순간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포위한 채 시민들이 밖으로 한 발짝도 걸어나오지 못하도록 총과 대포를 겨눕니다. 이들 도시인들은 한순간에 국민으로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외부 세계를 오염시킬 수 있는 '병균'취급을 받게 됩니다.
봉쇄구역 안에 있는 사람은 우리만 죽을 수는 없다며 바리케이드를 향합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너희만 살겠다고 우리를 가둬둘 수 있느냐며 바깥사람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립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왕 죽을 사람들은 죽더라도 바깥 사람들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철저한 폐쇄에 찬성합니다.
*영화 <감기>
지금도 우리 곁엔 갖가지 이유로 버려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해고자와 노숙인과 장애인들이 자기만의 폐쇄구역에 갇혀 있습니다. 행여 자신들이 오염될까 두려워 폐쇄구역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바깥 사람들의 대열에서 이탈해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숙인들에게, 장기수들이 있는 형무소로…. 그런 서영남 대표와 가족(부인 베로니카, 딸 모니카)을 따라 많은 봉사자도 함께 폐쇄구역으로 들어갑니다.
털끝만한 상처도 떨쳐버리겠다며 온갖 명상과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섭렵하는 이들이 '나'란 폐쇄구역 속에서 좀체 해방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스스로 약자들의 폐쇄구역 속으로 들어간 이들이 나로부터, 상처로부터, 이기심으로부터 해방되어 밝아지고 행복해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요.
조현 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