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심정] 나를 울린 이 사람/여섯 살 준이를 화장하던 날
아주 오래전 전방부대의 군목으로 일하던 나는 국가와 신앙의 갈등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많은 군목들이 병사들을 대상으로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물론 별다른 갈등 없이 자기 신념에 따라 그 지시를 수행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통받는 이들의 자리에 서라는 복음의 요청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응답했던 이들을 용공 혹은 빨갱이로 차마 매도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일부 간부들은 나에게 수상쩍은 눈길을 보냈다. 우울하고 외로웠다. 그때 부대 정문 앞 장교 숙소엔 꼬마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주는 군목 아저씨를 좋아해 주었다. 내가 눈에 띄면 아이들은 어디선가 달려와 나를 에워쌌다. 싹싹하고 명랑한 여섯 살배기 준이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쪼르르 달려와 “목사님~” 하고 안길 때마다 외로움을 떨치고, 기쁨과 위안을 느꼈다.
그런데 준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늘 숨이 차 헐떡거렸고, 푸르스름한 손끝은 뭉툭했고, 입술도 파랬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준이는 자기 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아휴, 내가 빨리 죽어야지” 하고 말해 가슴을 찢어놓곤 했다. 아이를 고칠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고, 어느 의료기관의 도움으로 미국까지 가서 수술을 받고 돌아왔다. 준이는 이제 제 숨을 쉬며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준이 아빠가 전화를 걸어왔다. 준이가 떠났다는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준이를 화장하던 날 보슬보슬 눈이 내렸다. 한 줌의 재로 변한 아이를 강물에 띄워 보내면서 준이 엄마는 “준아, 이제 좋은 세상에 가서 편히 쉬어”라고 말하며 울었다. 성탄절 전날 오후였다.
마음이 스산해질 때면 달려와 내게 안기던, 아니 나를 안아주던 준이 생각이 난다. 그 작은 손의 위안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고한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신학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