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맞이하는 것…죽음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에서 100세 이상 노인이 7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한국도 비슷한 추세로 장수노인이 늘고 있다. 예전엔 장수를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통계청 추계를 보면 2047년엔 1인 가구가 전체의 37.3%에 이르고, 이 가운데 절반은 노인 혼자 살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고독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홀로 외롭게 죽어가는 것도 비극이지만, 가족들의 돌봄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원치 않게 기계적 장치 등으로 생명이 연장돼 폐를 끼치게 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여론조사기관 조사에서 80%가 안락사 허용이 필요하다고 답한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숙고가 깊어지면서 자신이 죽음을 준비하고, 존엄하고 품위 있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바람이 커진 것이다. 일반인들도 자신의 삶과 유산을 정리하고, 가족·지인들과 제대로 이별하며 웰다잉을 할 수 있도록 임종 교육의 보편화와 법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 인도의 초대 수상 네루러보터 경배를 받고 있는 비노바 바베(왼쪽)
» 생의 마지막 단식을 하며 웃음 짓고 있는 벽제 동광원 박공순 원장. 사진 김원
사진 왼쪽부터 원불교의 용타원 서대인, 융산 김법종, 은산 김장원 교무
#예로부터 자기 죽음을 관리하고 선택하는 것은 수행·수도자들의 꿈이었다. 불교에서는 견성 해탈하면 생사를 넘어선다고 했다. 그러나 그토록 생사자재와 무집착을 역설해온 명승이 정작 자신이 암에 걸렸을 때는 몇번이고 수술을 하며 끝까지 생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기도 하고, 이름 없는 보살(여신도)이 생사자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의 환경·평화운동가 스콧 니어링은 백세가 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간디의 제자 비노바 바베도 생의 마지막에 80일간 단식으로 삶을 마무리 지었다. 2년 전엔 개신교수도원 동광원의 설립자인 ‘맨발의 성자’ 이현필의 제자인 벽제 동광원의 박공순 원장이 한달 반 동안 곡기를 끊고 주위 사람들과 작별하며 청빈 단순의 삶 그대로 갔다. 최근 원불교에서는 융산 김법종 교무와 은산 김장원 교무가 그렇게 곡기를 끊고 맑은 모습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삶을 정리했다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지난 2004년 그렇게 열반한 용타원 서대인 교무를 비롯해 많은 수도자가 병이 들거나 더는 기동이 어렵게 되면 스스로 미음을 들다 나중엔 물만 먹으며 명상과 기도로 삶을 정리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다. 누구도 타인에게는 이런 죽음을 권장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이 그토록 초연하고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이들은 적지 않다.
#한국죽음학회 회장인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가 최근 펴낸 <삶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죽음 가이드북>(서울셀렉션 펴냄)을 보면 죽음의 연습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훈련임을 알게 해준다. 누구라도 언제든 맞이해야만 하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 책엔 동서양의 죽음학 고수들 35명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통상 지식과 실천은 별개라고 한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근사체험자들을 많이 지켜보고 죽음에 대한 이해가 깊어갈수록 ‘잘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후생>과 <인생수업>이란 책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스위스 태생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5단계로 나누었다. 그는 임종을 앞둔 어린 환자들에게 애벌레 인형을 보여주었다. 뒤집으면 나비로 변하는 인형이었다. 죽음이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더 높고 멋진 세계에 새롭게 태어나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도 나비로 뒤덮게 했다. 조문객들이 미리 받은 봉투를 그의 관 앞에서 열 때 파란 나비가 공중으로 날아가게 한 것이다. 이제 나비처럼 자유롭게 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죽음의 고비도 우리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