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상에 냅킨과 물이 없었다. 나는 직원을 불러 “냅킨하고 물 좀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네?”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는데, 그는 빨개진 얼굴로 “네?”라고 다시 물었다. 아마 중국 동포인 것 같았다. 내가 또 한번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고 나서야 그는 부끄러움 섞인 웃음과 함께 “아, 네…” 하고는 재빨리 냅킨과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었다. ‘내 발음이 정확하지 못했나? 말이 너무 빨랐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고 미안해서였다. 부끄러움은 그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었다.
그때 문득 데자뷔처럼 유학 시절 만난 미국인 친구가 생각났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늘 한 걸음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 표정과 입 모양을 살폈다. 마치 귀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내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가끔 내 말을 듣다 그의 얼굴이 빨개지곤 했는데, 그것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신호였다. 그럴 때면 나는 같은 말을 다시 하거나 다른 표현을 골라 말했다. 반면 그가 내게 말할 때는 나는 그의 말을 거의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나를 위해 쉬운 단어들을 사용해가며 천천히 정확하게 말해준 덕분이었다.
그 친구의 작은 친절이 내게 무척 특별했던 것은 모두가 그처럼 나를 대해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속사포처럼 내게 말을 쏟아붓고는, 알아듣지 못한 내가 다시 말해 달라고 하면 잠시 싸늘하고 귀찮은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툭 “네버 마인드”(아니, 됐어) 한마디를 던지고 등을 돌렸다. 또 어떤 이는 여럿이 정신없이 수다를 떨 때 대충 눈치로 따라 웃는 나를 보고는, 갑자기 정색하며 “넌 알아듣고 웃는 거니?”라고 물어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 무안한 경험 때문에 주눅 들어 지내던 내게 목소리를 낼 용기를 갖게 해준 것은 나의 서투른 영어보다 나의 생각, 나의 존재를 더 경청해 준 친구들의 친절이었다.
영적 탐구자 람 다스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뛰어난 연설가였다. 하지만 그의 나이 65살 때인 1997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표현성 실어증’을 겪으면서 말하는 능력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어쩌다 강연을 하게 될 때면 단어들을 힘겹게 고르고 연결해가며 자신의 생각을 떠듬떠듬 전달했다. 그런데 감동적이게도 람 다스의 청중은 그의 말이 어눌했기에 더 집중했고, 그가 빠뜨린 단어들을 각자 알아서 완성해가며 들었다. 심지어 람 다스의 말과 말 사이의 침묵까지도 놓치지 않고 귀 기울였다. 그런 이들의 친절 덕분에 람 다스는 그 후부터 지금까지 본질만 담은 지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참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말할 때도 들을 때도 타자 중심적이어야 한다. 특히 그 타자가 우리 안의 언어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들의 부서진 목소리, 낮은 목소리, 침묵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부끄러움은 우리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