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사회> 설국열차와 권은희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패신저!” 기괴한 표정으로 앞니 전체를 드러내고 승객들을 향해 소리치는 여자는 열차 내부의 질서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줄기차게 설명한다. 개그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로 영화 <설국열차>에서 유명해진 장면이다. ‘승객 여러분’이라고 번역될 ‘패신저’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다. ‘이 쓰레기 같은 하류인생들아!’라는 말처럼 들린다.
*영화 <설국열차>
“너희들은 태어날 때부터 있을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이게 설국열차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꼬리칸’에 처박혀서 다른 칸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유일한 방법은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뿐인데 그것도 처절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반면에, 상류계급은 ‘패신저’가 아니라 ‘브이아이피(VIP) 고객’이 된다. 한국의 현실도 이러한 설국열차의 구조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소수의 상류계급이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의 기본은 ‘기만’이다. 끊임없이 속이고 속은 것을 알고 문제를 제기하는 자는 내쳐버린다. 폭력이 결합하는 것이다. 이른바 조직의 생리다. 그러니 선뜻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 설국열차는 그런 의미에서 반란을 부추기는 영화다. 시스템이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 그러면 시스템 안에서 답을 찾지 말고, 시스템 자체를 깨버려! 이게 이 영화의 메시지다.
*영화 <설국열차>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 여기는 사람 역시 적다. 그건 죽을 각오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할까? 문제는 시스템 안에 있으면 그나마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더해 하나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죽음의 속도가 혹시 늦더라도 그 안에서 죽는 것은 필연이지만, 뛰어내리면 살 가능성은 적어도 절반은 된다는 점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반란자가 나타났다. 권은희. 그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조직의 생리를 잘 알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괘념치 않고 설국열차의 질서를 단도직입적으로 공격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향해 쏟은 그의 한마디, “거짓말”은 이 기만의 벽을 부수는 망치질이었다. “너희들은 입 닥치고 꼬리칸에서 그냥 있어”라는 정치적 선전술의 끈을 권은희는 용납하지 않았다.
민심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그를 향해 “광주의 경찰이야?”, “광주의 딸이라며?”라는 지역주의 비하를 담은 비아냥이 여당 의원의 입에서 터져 나오자,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는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날렸다. “권은희, ‘광주의 딸’ 맞다. 우린 그래서 더더욱 권은희가 자랑스럽다. … 우리에게 ‘광주’는 지역을 넘어선 역사의 고유명사다.”
바로 이 지점이다. 서울 경찰의 총수였던 자를 향해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이 당찬 경찰의 모습은 우리를 향해 “패신저!” 하면서 꼬리칸의 운명에서 벗어날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예감하게 한다. 대선 불복, 광주, 노동자, 종북, 민생…, 우리 사회를 마술처럼 휘두르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대선 공정하긴 했어? 광주,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잖아. 노동자? 그야말로 우리의 경제 역군이지. 종북? 그거 어디서 파는 딱진데? 민생? 민주 없는 민생이 어디 있어? 이렇게 치고 나가는 힘이 필요한 것 아닌가?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이 말들을 사고하는 순간, 우리는 꼬리칸의 노예가 되고 만다.
권은희, “광주의 딸” 맞다. 어떻게 지켜낸 민주주의인가. 결국, 박근혜가 이기게 될까, 권은희가 이기게 될까? 아니, 누가 이겨야 역사가 바로 설까? 설국열차는 반란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영화를 본 천만 관객의 백분의 일이 나서면 사태는 어찌될까?
한종호 꽃자리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