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늘 외로움에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 내 꿈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생각에 마음은 늘 공허하고, 외롭고, 불안했습니다. 큰집 장남인지라 대우는 받았지만,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하루 종일 공상을 했습니다. 마음 안에 나만의 성을 쌓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한 아이 정도로만 인식되었지요.
그러다가 사제가 되었고, 대중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복을 입고 미사를 집전하는 제 자신이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웃고 노는 내가 낯설게 느껴지고, 마치 내 옷이 아닌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매일매일이 당혹스러웠습니다. 멍한 기분으로, 꿈을 꾸는 느낌으로 허공을 걷는 듯한 삶을 살았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죽박죽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물음이 솟아올랐습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나를 잊고 살기 위해 매일 폭음을 하며 주정꾼처럼 살았습니다. 당연히 신자들의 눈길은 점점 더 차가워져갔고, 마음 안에는 무기력증이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옷을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하게 갈등하고 있을 때, 우연히 상담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제는 정의롭고 도덕군자의 표상으로 여겨지곤한다. 그러나 욕 먹기를 자처한 사제가 있다. 속풀이 심리상담가로 알려진 가톨릭영성심리상담연구소장 홍성남(65) 신부다. 그가 이번에 낸 책 이름이 <착한사람 그만두기>(아니무스 펴냄)다. 남 들에게 ‘욕 좀 먹고 살아도 괜찮다’고 권유하면서, 자신만 욕을 먹지않는 얌체짓을 하지않는 신부임이 머리말에서부터 드러난다. 위 머리말의 제목이 ‘하지마! 시벌노마施罰勞馬’. 시벌노마가 ‘일하는 말에 채찍질 하지 마세요’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의성어로 발음할 때가 훨씬 그답다.
그의 글은 머리말이 말해주듯 자기고백적이다. 그도 애초부터 지금과같은 ‘열혈사제’는 아니었다고 한다. 겸손하고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 나름 애쓰다가 상담을 통해 자신이 아닌 껍질을 벗어버리고, 나서기 좋아하고, 오지랖 넓게 휘젖고 다니는 자신을 재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기 발견을 통해 그는 독자들에게도 ‘착하게 살아라’는 등 사회적 통념 속에서 갇힌 자신을 해방시키도록 이끈다. 즉 ‘착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려고 자신의 욕구를 등한시하는 것부터 바꾸라’는 것이다.
그는 “상담가로 활동을 하다 보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지나치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며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면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난다”고 경고한다. 제발 너무 착하게 살려고 자신을 죽이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문제에만 집착하지않도록 이끈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의 문제는 다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상의 기준을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증을 가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그 어떤 사람도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인의 욕구를 무조건 억누르도록만 하는 이들을 불량종교인들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않는다. 그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은 자신이니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어도 된다”며 “내 마음이 편해야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있으니, ‘어린아이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로 유쾌하고 활기 찬 삶을 살라”고 한다. 그는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통해 무엇보다도 종교의 치유적 측면을 이렇게 강조한다.
“종교가 현대사회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한 종교는 절대로 없어져서도, 없애서도 안 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돈벌이의 대상이 되어가기에, 이런 때일수록 영혼이 암울한 지경 속에 빠지지 않도록 도우을 주는 종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관념도 관념을 떠나 실사구시적이다. 그는 “돈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돈돈돈 하지 말라’면서 자신은 돈을 밝히는 ’불량 종교인’들과는 다른 뉘앙스가 틀림 없다.
“가난한 삶을 살라고, 돈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이미 배부른 자들입니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적 생존 수단입니다. 문제는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쓸 것인가’입니다. 그러려면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그러나 가난과 궁핍함에 쪼들릴 때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그의 글이 오직 ‘속풀이’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거친 의식의 격랑을 지나 좀 더 고요한 세계로 다가가게 된다. 속풀이는 이 과정을 거부감 없이 ‘부드럽게’ 들어가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전작업인 셈이다.
“달리는 차의 방향을 서서히 바꾸어야 하듯이 마음의 방향도 서서히 바꾸어야합니다. 안 그러면 심리적 젖산이 생겨서 통증이 생기거나, 전복사고가 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