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명장면】나루터는 어디인가
問津
문진
나루터는 어디인가? -‘미자’편 6장①
1. 갈림길에서
서기전 489년경, 부함을 떠난 공자 일행은 남방의 평원을 가로질러 서북 쪽으로 회수(淮水)가 바라다보이는 언덕배기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강변으로 내려가 나루터에서 배를 타면 채나라 도읍 신채(新蔡)로 가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런데 전란 때문에 군대와 유민들이 어지럽게 오가서인지 나루터로 이어지는 원래 길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강 상류 쪽으로 난 길도 있고 하류 쪽을 향해 난 길도 있었다.
이쯤에서 나루터 가는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방향이 혼란스럽자 일행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먼 길을 온 피로를 풀면서 다른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듯 했다.
나는 내려놓은 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생각할수록 실의의 여정이었다.
공자께서 노나라를 떠난 지 7년 여, 이미 이순(耳順)을 훌쩍 넘기셨건만 역정(歷程)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모처럼 기대를 가지고 찾았던 부함에서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자로’편 16장)의 순리를 설파했으나, 섭공(葉公) 심제량은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의 덕목으로 삼기보다는 교양과 치술(治術)의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부함은 공자 일행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자로는 섭공을 생각할 때마다 화가 치미는지 옆구리에 찬 칼자루를 쓰다듬었다.
일행은 하루빨리 채나라로 돌아가 잠시라도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었다. 제자들은 스승 앞에서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저마다 애를 썼다. 숲속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도 그런 자신들을 조롱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과연 선생님은 불가능한 일에 덤벼드는 무모한 사람인가?
혹시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안연 곁으로 가 앉았다. 왠지 안연은 해답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안연님. 나루터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나루터? 비유인가?…음, 그렇군….”
“오늘따라 이 강을 건너는 것이 예사롭게만 여겨지지 않는군요.”
“자네도 그런가? 나도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기분일세 그려.”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 중에서
2. 나루터를 찾는 사람들
‘다른 세계로 가는 배’라는 안연의 말에 나는 문득 도연명(陶淵明. 365~427. 중국 동진시대의 시인)을 떠올렸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고사(故事)를 남긴 일사(逸士). 공자 사거 800여 년 뒤의 사람으로 자신을 종종 안연과 비교하며 공자의 이 유랑길을 흠모했던 은둔자. 내가 살아서 그 시인이 그리워 했던 안연을 마주하고 있을 줄이야…. 나는 잠시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찾은 어부같은 기분에 휩싸여 안연에게 바싹 다가앉았다.
“안연님, 제가 조선에서 이상한 나루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무릉(武陵)이란 지방에 한 어부가 살았습니다.
어느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물길을 잃고 복숭아꽃이 만발한 이상한 숲속을 헤매다 숲 끝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산이 하나 있고 작은 동굴이 나 있었습니다.
배를 대고 걸어서 동굴을 통과해 가니 넓은 들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모습이 여느 세상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부를 보자 놀라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며 술과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저마다 바깥 세상 소식을 물었다지요.
그들은 중국의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온 뒤 다시 나간 적이 없어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조차 모르고 있더랍니다.
그 곳은 사람들이 철따라 곡식을 거두고 누에 실을 뽑아도 세금이 없고,
사계절이 순행하여 꾀를 부리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며 한평생 즐겁고 화목하게 산다 합니다.
어부가 며칠을 더 묵은 뒤 돌아가려 하자,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부는 동굴을 나와 배를 찾아 온 길을 되짚어 가면서 곳곳에 물길을 표시해 두었답니다.
자기가 살던 마을로 돌아온 어부는 군수에게 그동안 겪은 일을 고했습니다.
군수는 곧 사람을 시켜 어부의 표시를 따라 가보도록 했으나 끝내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후 어느 고상한 선비가 이 이야기를 듣고 그 곳이야말로 진실된 선비가 살아갈 이상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평생 그 복사꽃 피는 숲을 찾아 헤매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그 후론 아무도 그리로 가는 나루터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병시>②)
안연이 멀리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으로 신비로운 이야기일세. 나루터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니 왠지 나도 아쉽군.”
“어부가 갔다는 그 마을은 인의(仁義)조차 필요없는 무위무욕의 세계이겠지요? 그런데 과연 그런 세상이 있을까요?”
“그 피안(彼岸)의 마을이란 데도 사실 선생님이 이루고자 하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걸세. 다만 그런 삶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도달할 수 있고, 보통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희망이라면 그것은 선생님이 바라는 바가 아닐걸세. 선생님을 비웃는 은자들이야 노상 입에 달고 다니는 세상이겠지만…. 은자들은 이 혼탁한 세상에서 진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세상을 피해 자연과 벗하며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면, 이 땅의 눈물겨운 백성들은 누가 돌볼까? 그냥 내버려두는 게 과연 현자의 지혜라는 것일까?”
3. 은사(隱士)와 일민(逸民)
생각해 보면 공자의 여정에서 우리의 마음을 진짜로 아프게 한 것은 어리석은 군주도, 노회한 권신도 아니었다. 같은 이상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려는 공자를 비웃고 비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반짝이고 있다가 공자가 이상의 실천을 말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수같은 조롱으로 공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들은 ‘현세에서 구원을 찾는 일이 부질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공자가 허명과 권세라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대중들을 속이고 있다’고 매도했다.
자로가 제나라 석문에서 읍재의 자문역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자로가 관청으로 가기 위해 성문을 통과하는데 문지기가 제지하며 물었다.
“누구요?”
“자문역 자로입니다.”
그때 문지기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공씨에게서 왔다는 사람이요?”
“그렇소만.”
문지기가 옳다구나 싶은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흥, 그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겠다고 나대는 그 자 말이지?”(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헌문’편 41장③)
이런 일도 있었다. 위나라에 있을 때 선생님이 심란하여 경(磬)을 연주하고 있는데 삼태기를 진 사람이 지나가다 말하였다.
“음악 속에 욕심이 담겨 있군.”
한참을 더 듣더니 또 말했다.
“비루하구나, 저 소리!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물이 깊으면 바지를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너면 그만인데”
하고는 가버렸다. (‘헌문’편 42장④)
이 또한 공자를 속으로는 권세를 탐하고 벼슬에 집착하는 소인으로 치부하고 비난한 말이었다.
은자로 존경받는 미생무가 하루는 공자를 찾아왔다. 그가 공자와 대작하다가 취기를 빌어 공자에게 말했다.
“이보시게, 구.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어떤가? 그만큼 수모를 당했으면 됐지, 왜 여전히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고 다니는 건 말재주만 믿고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닌가?”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미생무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선배님, 아직도 저를 모르십니까? 저는 다만 세상의 변화를 나 몰라라 하는 고루한 선비가 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孔子曰 非敢爲영(아첨할 영)也 疾固也. ‘헌문’편 34장⑤)
그러고나서 공자는 미생무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선배, 내가 사람들의 조롱과 배척 속에서도 열국을 돌아다니며 군자의 치도(治道)를 말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일념 때문입니다. 인류의 진보를 믿지 않은 채 사람들을 무지와 핍박의 압제 속에 가둬놓고 있는 이 화석같은 세상을 말입니다.
*중화TV <공자> 중에서
4.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지 않으시니
“하지만 선생님도 좌절하고 절망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닙니까? 언젠가 당신의 한계를 한탄하시며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차라리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다’(‘공야장’편 6장⑥)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때 자공과 함께 나타난 염유가 말했다.
“도가 행해진다면 그곳이 다 이상향이 아니겠는가?”
“선생님이 그 기담(奇談) 속의 고상한 선비였다면 아마도 커다란 배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하하. 그 배에 가득 사람들을 싣고 함께 이상 세계를 건설하려 하셨을 것만 같네.”
“선생님은 동쪽의 주나라(東周), 즉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싶으셨다.”(子曰 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양화’편 5장서 차용⑦)
자공이 제자들과 짐꾼들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한다.
“우리가 선생님을 모시고 북방의 황하도, 남방의 평원도 건너지 못하고 이렇게 온 길을 되돌아가게 되니 끈 떨어진 연마냥 자못 처량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이미 나루터가 어디인지 알고 계시네.”
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선생님의 나루터는 어디인가요?”
“나, 자공이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셨다.
‘사람은 쉼없이 자기를 수양하여 인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군자가 된다. 인을 추구하는 군자는 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고(忠), 남을 위해 진실로 애쓰는 마음을 닦는다(恕). 이처럼 인을 추구하는 군자들이 세상에 많아져서 그들이 예(禮)로서 협동(協同)하고, 의(義)로서 협덕(協德)하고, 인(仁)으로 협치(協治)한다면, 우리가 사는 바로 이 땅에서 대동(大同) 세상을 실현할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러한 생각에 더 이상 의혹이 없게 되자, 당신과 제자들이 먼저 협력하여 군주와 대부들을 설득해 당신이 세운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셨다. 선생님께서 분연히 일어나 현실정치로 나아가신 뜻이 여기에 계시다. 선생님께서 분연히 일어나 천하열국을 주유하시는 뜻이 여기에 계시다. 한 사람의 선비로서 쉼없이 자신을 닦고, 군자로서 인의의 도를 추구하는 것, 선생님은 이 사명을 당신의 천명(天命)으로 세우셨다.”
안연이 화답하듯 말한다.
“사람들은 선생님의 높은 이상을 오해하여 비웃고 심지어는 해치려 하지만, 어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저 높은 뜻을 어떤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을 위해 세상을 호도하는 위장이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혼탁한 세상을 한탄하고 저주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 자기만의 구도(求道)에 안주합니다. 이들은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며 무위무욕한 삶을 지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선생님은 그들과 다릅니다. 구도의 길을 가되 그것을 위해 세상을 피하지 않습니다. 탁류 속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이입니다. 정치는 탁류를 정화하는 유력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도의 수단이 되는 순간 도로부터 멀어집니다. 바로 여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무릇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고뇌, 위선과 위악, 영광과 비극, 나아가 죽음까지도 이 딜레마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과연 이런 이치를 모르고 길을 떠나셨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기에 그것을 경계하고 삼가는 은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비판을 존중하며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당신의 길을 당당히 가십니다. 가함도, 불가함도 없이(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미자편 8장⑧) 일월사계(日月四季)의 운행처럼 나아가는 자,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자 하는 사람(不可而爲之者), 그것이 선생님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문도들에게 읍하며 가르침을 주신 데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한 뒤 큰 소리로 선생님의 말씀을 흉내냈다.
하늘이 이 문명을 없애지 않으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 선생님을 해치겠는가!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자한’편 5장⑨서 차용)
어디서 나타났는지, 팔짱을 낀 채 우리들 뒤에 서 있던 자로가 수염을 쓸며 의(儀)땅에서 있었던 일화를 전해준다.
위나라와 진나라 사이 국경도시에서 그곳 지방관이 선생님 뵙기를 청했지.
지금 저 수레에 계신 분이 공구이십니까?
그렇소이다만.
아, 저 분이 그 유명한 공자이시군요. 공자와 같은 분이 저희 마을을 찾아주시니 너무나 영광입니다.
그 관리가 자기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선생님을 배웅한 뒤 뒤따르는 우리들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지.
제가 살펴보니 공자께서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제자들이 낙담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제가 공자를 뵙고 그 말씀을 들어보니 아닙니다.
천하에 도가 사라진 지 오래이니, 머지않아 하늘이 선생님을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팔일’편 24장⑩)
*중화TV <공자> 중에서
4. 용과 이무기
공자께서 돌아가신 후 나는 세상에 떠도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공자가 주나라 낙양에 갔을 때 노자를 만났다는 전설이다. 그 이야기만으로는 노자가 이담(李聃)인지, 초나라 현인 노래자(老萊子)인지, 혹은 제3의 은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후대에 그렇게 전해진 것인데, 이야기는 이러했다.
공자께서 노자에게 예를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말하려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군자는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아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며 떠도는 다북쑥같은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오.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공자가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가 잘 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물고기가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잘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떨어뜨린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비로소 용과 같은 존재를 보았다. (<사기> ‘노자·한비열전’⑪)
나는 이 이야기가 공자가 직접 한 말이라고 믿지 않는다. 만약 이러한 말이 공자 생전에 알려졌다면, 회수가의 그 언덕에서 내가 문도들에게 꼭 물어보았을 것이다. 노장의 무리들이 그들의 종주를 높이기 위해 선생님의 명성을 빌린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 속 공자의 말만큼은 선생님의 진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자께서 어찌 노자의 힐문의 본의를 헤아리지 못했겠는가. 그런 허무의 처세를 초월했기에 선생님은 불가능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전설의 이면에 숨어 있는 공자의 고뇌를 꿰뚫어 본 후대의 어떤 이가 “공구의 겸양한 독백”이라며 남긴 우화가 있다. 나, 이생은 그 우화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외람되지만 여기에 다시 기록한다.
용은 맑은 물에서 먹으며 맑은 물에서 놀고
이무기는 맑은 물에서 먹고 흐린 물에서 놀고
물고기는 흐린 물에서 먹고 흐린 물에서 논다
지금 나 구(丘)는 위로는 용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물고기와 같지 않으니
아무래도 나는 이무기인가 보다. (<여씨춘추> 제19권 팔일편⑫)
汲汲魯中수(늙은이 수) 彌縫使其淳
鳳鳥雖不至 禮樂暫得新
洙泗輟微響 漂流逮狂秦
終日馳車走 不見所問津
노나라 노인 바쁘게 애써
세상을 바로잡아 순박하게 만들려 했네
봉황새 비록 오지 않았으나
예악은 잠시 새로워졌다네
수사 땅에서 심오한 말씀 끊어지고
세월은 흘러 미친 시대에 이르렀건만
하루종일 수레를 몰고 돌아다녀도
나루터를 묻는 사람 보이질 않네
(도연명, <술을 마시다 20> 중에서⑬)
*공자
<원문 보기>
*<논어명장면>은 소설 형식을 취하다 보니 글쓴 이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논어를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글쓴 이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돕기 위해 원문을 글 말미에 소개한다. 소설 이상의 깊이 있는 논어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