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을 보면 속은 안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는 겉볼안이 쉽지않은 게 종교인이다. 권위를 중시하면 허장성세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세속의 명리와 권력을 쫓는 종교인일수록 그렇다. 그러나 일반인이 종교인의 실제 속살림을 들여다보는 건 쉽지않다. 그런데 본인이 의도치않게 속살림이 드러난 이가 있다. 최근 <수좌 적명>(불광출판사 펴냄)이 나왔다. 적명 스님의 유고집이다. 사실상 일기장이다. 본인이 지난해말 갑자기 등산도중 실족사를 하지않았다면 아마도 세상에 드러날 일이 없었을 글이다. 80평생 책 한권을 낸 적이 없는 그였으니, 자신의 일기를 책으로 만들었을리 없다. 그런데도 봉암사쪽에서 출간을 결정했다. 적명 스님의 일기의 대부분은 1980년대에 쓰여진 것들이다. 그가 40대 때다. 공자는 40대를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세상일에 더 이상 미혹되지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40대는 ‘흔들리는 갈대’다.
» 2019년 12월 28일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적명스님 영결식이 봉행되고 있다.
#“가슴속 부질없는 열기 식히며 헛된 상념들 잊고싶다.”(1980.10.19) “잠시라도 속제의 재물의 이에 끌리지 않게 하옵고 색의 아름다움이나 명예의 빛남에도 지나 덕의 우울에 인한 인격의 고매함에 대해서조차 부디 마음 쓰지 않게 하소서”(1980.11.1) “‘욕망의 부절제’, 그것은 속인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매우 부끄러운 상태에 있다.(1981.8.20) 애초에 해탈 같은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 것이다. 해 보기로 작정했다.”(1982.3.15) “근래 가끔 절망적인 공허감 속에 깊이 빠져들 때가 있다. 문득 돌이켜 보니 의외로 세욕이 내 안에 주류를 이루고 있고, 구도의 마음은 먼지 같고 새털 같고 가벼운 연기와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은 세욕으로 가득 찬 캄캄한 동굴이었고 번뇌로 들끓는 열탕이었다.”(1982.3.17) “어느 한여인도 사랑하지 않으나 여인에 대한 욕망은 한이 없다. 잠깐이라도 마음 창문이 열리면 욕락은 잘도 쏟아져 흐른다.”(1982.7.31) “얼마만 한 노력, 얼마만 한 고심이 들어야 탐욕의 늪을 헤어나 한적한 곳에 안주할 수 있단 말인가?”(1983.2.4) “번뇌는 진정 나이와는 무관한 것이던가? 욕정의 불꽃도 줄지 않았고 명리에 대한 끝없는 탐욕도 예전 그대로다. 몸과 마음을 수도하는 도량에서 잠깐만 떼어 놓아도 천방지축 꺼꾸러지지 않는 곳이 없다.”(1983.2.17) “ 내가 순수하게 그 처녀를 사랑하는 것은 백번 양보해서 보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한 사랑이어야 한다.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아는가?”(1983.7.7) “수도의 길을 버릴 수는 없으나 속된 욕망도 버려지지는 않는다.”(1983.11.30)
» 2019년 동안거. 90안거중 절반을 마친 반결제일을 맞아 봉암사내 모든 대중들이 산행을 하기로 하고 24일 아침 기념사진을 찍었다. 맨 가운데가 적명 스님
» 2019년 12월 24일 희양산 관음봉을 향해 산행을 가는 봉암사 대중들. 가운데(검은옷 오른쪽)가 적명스님. 적명스님의 마지막 사진이다.
#적명 스님을 아는 사람은 그가 소박 담백하고, 솔직했다고 한다. 3년전 직접 만나본 그의 모습도 소탈했다. 종정, 방장, 조실자리를 탐하고, 총무원장까지 지내고도 세욕을 그치지않은 현실에서 그는 그런 허명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수행자인 ‘수좌’로 머물렀다. 날씨와 기후처럼 천변만화하는게 살아있는자의 생각과 감정이다. 불안하고 두렵고 힘들고 아프고 걍팍하고 속좁고 기쁘고 들뜬 생각과 감정들을 들여다볼 눈이 어두워진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수좌 적명이 평생 매달린 화두선을 제시한 대혜종고(1089~1163)는 성인구심불구심(聖人求心不求佛) 우인구불불구심(愚人求佛不求心)이라 했다. ‘성인은 마음을 찾지 부처를 구하지 않는다.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만 구할 뿐 마음을 찾지 않는다.’ 밖으로 치닫지않고,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 명쾌히 보는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