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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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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ᄒᆞᆫ돌ᄐᆞ래이야기]

홀로아리랑

 

 

113-.jpg» 한반도 동쪽끝 경북 울릉군 독도 전경


 

새를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가 있었다. 하루는 어느 섬에 들어갔다가 멸종 위기 새를 보게 되었는데 새가 금방 날아가는 바람에 찍지 못했다. 사진작가는 새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배 떠날 시간이 되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섬은 아무 때나 드나드는 섬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온 사진작가는 이제나저제나 그 섬에 들어갈 날만 기다렸다

 

198810월 어느 날, 별빛 쏟아지는 독도에서 나는 아리랑을 보았다. 너무 반가워 손을 내밀었으나 아리랑은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이튿날 새벽부터 그 노래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배 떠날 시간이 되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게 될는지,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나저제나 독도에 들어갈 날만 기다렸다.


이듬해 2월 어느 날, 후포에서 고기잡이배 한 척이 독도로 들어간다는 연락이 왔다. 만사 제치고 후포로 달려갔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출항을 만류했지만 선장은 괜찮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나를 보더니 타지 말라고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갈등이 생겼지만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라 여기며 배를 탔다.


사람들 말은 틀리지 않았다. 후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배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이 상태로 독도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에는 이미 두려움이 번지고 있었다. , 이대로 배가 가라앉으면 내 인생도 끝나겠구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 독도에 이르니 후포 앞바다와는 견줄 수 없는 높은 파도가 일었다. 배 앞쪽 끝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물속에 잠기기를 여러 번 되풀이 하였다.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속에 있는 걸 다 토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파도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바다에 잠길 것 같았던 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출렁거리고 있었고 마중 나온 덕진호(조 선장의 통통배 이름)가 물결을 타고 아래위로 춤을 추었다. 노련한 조 선장의 도움으로 나는 무사히 덕진호에 옮겨 탈 수 있었다. 섬에 오르니 울렁거렸던 속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


han1.jpg» 글쓴이인, 독도 노래 <홀로 아리랑>의 작사가 한돌


이틀 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방 안에 갇혀있었다. 마치 감옥살이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감옥소로 달려온 사람 같았다. 평소부터 나는 독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독도에 갇히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사흘 만에 날씨가 좋아졌지만 조 선장이 울릉도로 나가야하는 관계로 더 이상 독도에 머물 수가 없었다. 힘들게 들어왔다가 아무 일도 못하고 돌아가려니 발걸음만 무거워졌다. 파도의 흰 물거품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노래가 보이지 않은 것은 내가 방 안에 갇혀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 욕심이 가득 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다림을 무시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독도의 바람을 맛보고 간다는 것이었다

 

두 달 뒤, 다시 독도에 갈 기회가 생겼다. 울릉도에는 독도를 푸르게 가꾸자는 청년들의 모임이 있는데, 그들은 해마다 두 번씩 독도에 가서 나무를 심는다. 연락을 받은 나는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독도로 향했다. 독도에 도착하자 그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무모, 흙 포대를 등에 지고 계단을 올라가 여기저기에 어린나무를 심었다. 나는 한 그루, 한 그루 심을 때마다 부디 잘 자라게 해 달라고 용왕님께 빌었다. 배 사정으로 인해 작업을 끝낸 회원들은 곧바로 울릉도로 돌아갔고 섬에는 조 선장과 나만 남았다. 원래는 조 선장도 그 배를 타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내가 하루만 머물렀다가 가자고 하는 바람에 그리된 것이었다.


이튿날 새벽, 멀리 빛이 움트고 있었다. 나는 언덕에 올라가 백두산과 한라산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고향에 오고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온 백성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새벽 기운을 깊게 들이마셨다. 바람에서 바다 냄새가 묻어났다. 바다 저 멀리 해 돋는 모습이 거룩하게 보였다. 도시에서는 높은 건물과 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온갖 공해로 하여금 숨이 막히는데 여기는 넓은 바다와 하늘뿐, 하늘도 사랑이고 바다도 사랑이니 마치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옛날 옛적에는 높은 건물도 없고 산과 강이 아프지도 않았으니까 정말로 사랑이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은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조 선장이 덕진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울릉도에 가려면 덕진호를 끌어내려야 하는데 날씨 때문에 망설이는 것 같았다.

조 선장, 몇 시에 가는 거야?”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안 되겠네요. 내일 가지요.”


괜히 나 때문에 그리된 것 같아서 조 선장한테 미안했다. 아침을 해 먹고 다시 언덕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새 바람이 꽤 거칠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중간쯤 올라가다가 다시 숙소로 내려왔다. 바람이 점점 거칠어졌다. 될 수 있으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조 선장이 말했다. 노래를 만나려고 하룻밤 보내자는 거였는데 노래는커녕 방에 갇히게 생겼다.



111.jpg


다음 날 아침, 바람 소리에 잠을 깼다. 창문을 내다보니 파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파도한테 심하게 얻어맞고 있었다. 바위는 그렇게 얻어맞으면서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런 바위가 얄미웠는지 파도는 더 세게 바위를 후려쳤다. 저렇게 되면 바위보다 파도가 먼저 지칠 텐데독도의 바람은 산에서 부는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아마도 나무들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람 소리가 무슨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처럼 날카롭게 들렸다. 조 선장이 무거운 아령을 양손에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조 선장, 아령을 들고 어디 가는 거야?”

조 선장이 뭐라고 말을 했는데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꼼짝없이 방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지난번에도 독도에 왔다가 방에 갇혔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불안하기만 했다. 고요한 방안에 퀴퀴한 냄새가 느릿느릿 날아다녔다. 문을 열어놓을 수 없으니 냄새들도 나처럼 방에 갇혀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냄새들이 하나로 뭉쳐서 방안에 떠다니는 외로움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어느 틈에 내 몸에서도 외로운 냄새가 났다. 얼마 뒤 조 선장이 냄비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휴대용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켰다.


어디 갔다 왔어, 조 선장?”

알 주우러 갔다 왔지요.”

그런데 아령은 왜 들고 나간 거야?”

안 들고 나가면 날아가요.”


나는 조 선장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뒤 조 선장은 냄비에서 삶은 갈매기 알을 꺼냈다.

오늘 아침은 갈매기 알이래요.”

모양이 메추리알처럼 생긴 것이 크기는 달걀만 하였다. 세 알 먹으니 허기진 것이 좀 가셨다.

이렇게 알 훔쳐다 먹으면 갈매기들한테 혼나는 거 아니야?”

혼나지요.”


창문을 내다보니 아직도 파도는 성이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파도는 저리도 심하게 바위를 때리는 걸까? 그런데 밤새도록 얻어맞은 바위는 어제보다 더 싱싱한 모습이었다. 나도 바위처럼 날마다 얻어맞으면 싱싱해질 수 있을까?

사실은 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아침밥을 내지 못하는 조 선장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같았으면 바닷가에 나가서 먹을 것을 챙겨올 수도 있지만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서 아예 접근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조그만 배낭을 메고 아령을 양손에 들었다.

형님은 더 무거운 걸 들어야 될 텐데


문을 나서자마자 바람이 들이닥쳤다. 아령을 들었는데도 몸이 휘청거렸다. 그제야 아령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아령이 없으면 아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단에 올라서니 여기저기에 갈매기알들이 놓여있었다. 어떤 알은 금방 나왔는지 따끈따끈 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했다. 자그마한 알들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알을 줍고 있는데 갈매기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얼른 작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니, 어디 가서 페인트 칠 하다 와요?”

모자와 옷에 하얀 갈매기 똥이 잔뜩 묻어있는 걸 보고 조 선장이 히죽거렸다.

! 정말 바람이 대단하네.”

이 정도는 보통이래요. 태풍 철에는 아예 문에 못질하고 울릉도로 나갑니다. 그나저나 바람 때문에 맛있는 거 대접도 못하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갈매기 알로 끼니를 때웠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안 하고 방에만 갇혀있다 보니 머릿속이 허해지는 것 같았다.

조 선장,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해. 그날 배 타고 나갔더라면 지금쯤 가족들과 함께 쉬고 있을 텐데 말이야.”

아니래요, 노래나 잘 찾아 보이소.”

노래 걱정을 해주는 조 선장이 마냥 고마웠다.

꼭 감옥에 갇힌 것 같네.”

좋은 감옥은 창살이 보이지 않고, 나쁜 감옥은 창살이 보이지요.”

그럼 독도는 좋은 감옥이야 나쁜 감옥이야?”

혼자서 간수, 죄수 다하고 사니까 좋은 감옥이지요.”

그래 맞아. 환경이 나빠도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으면 좋은 감옥이고,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하고 싶은 일 못하면 나쁜 감옥이지.”

문득 조 선장이 교도관으로 보였다.

그런데 말이야 조 선장, 지금 나를 감시하는 거 아니야?”

감시라니요?”

내가 밖에 나갈까봐 그러는 거잖아?”

드디어 정신이 오락가락해지기 시작합니다 ㅋㅋ


사실은 속이 답답하고 조금 어지러웠다. 그래서 밖에 나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었으면 했다. 방안은 우중충하고, 속은 메스껍고 아무래도 체한 것 같았다.

조 선장,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어쩐지, 낯빛이 안 좋다 했더니만.”

조 선장은 느닷없이 구석에 쌓아놓은 신문지 몇 장을 가져왔다.

아니, 웬 신문이 저렇게 많아?”

밖에는 못 나가니까 여기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독도에서는 독도법을 따르시지요.”

조 선장은 신문을 깔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먼저 오줌을 먼저 해결한 다음, 이렇게 신문지를 깔고 일을 봅니다.”

여기서?”

그럼요, 그리고 일 마치면 신문지를 잘 싸서 창문 밖으로 던지는 겁니다. , 그리고 던지고 나서 얼른 창문을 닫아야 합니다.”


조 선장은 창문을 열었다 얼른 닫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 나서 불을 켜야겠다며 발전기를 돌리러 나갔다. 창문이 새삼 작아보였다. 나는 페트병에 오줌을 해결하고 신문지에 일을 보았다. 그리고 조 선장이 가르쳐준 대로 신문지를 잘 싼 다음 창문 쪽으로 갔다. 바람에 창문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물건을 언제 던져야 할지를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창문을 열자마자 얼른 던지고 얼른 닫았다. 그런데일이 잘못되어 신문지만 날아가고 똥은 다시 내 얼굴로 날아왔다. 하필 그때 조 선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쿠, 이런! ㅋㅋ


조 선장은 마치 자기가 의도한 대로 되었다는 듯이 킥킥대며 나를 놀려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씻을 물도 없어서 나는 수건으로 대충 닦은 다음, 바깥문을 살짝 열고 지나가는 바람에 얼굴을 내밀고 바람세수를 했다. 하지만 그 세찬 바람도 얼굴에 묻은 것을 제대로 씻어내지는 못했다. 먹는 물이 있긴 있었지만 그건 또 조 선장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조 선장은 계속 킥킥대며 이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텅 빈 방에 홀로 남은 나는, 지난해 시월 별빛 쏟아지는 독도에서 잉태되었던 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산모가 충격을 받으면 애가 떨어진다는데, 내가 품고 있는 노래는 괜찮을까? 아닌 게 아니라, 배가 계속 아프니까 정말로 노래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노래가 지워진 거 아닐까?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흐리멍덩하니까 정신을 차리라고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 마음을 달랬다. 하긴 독도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폼만 잡고 있었으니 똥 맞아도 싼 일이었다. 배가 자꾸만 아파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조 선장 방으로 올라갔다. 조 선장은 내가 나타나자 또 킥킥댔다.

조 선장, 혹시 실하고 바늘 있어?”

아이쿠 냄새야.”

조 선장은 대답은 안 하고 계속 웃기만 하였다.

조 선장, 내 얼굴 이거 조 선장 작품이지?”

아니래요. , 여기 바늘과 실 ㅋㅋ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똥 맞아보라고 그런 거잖아?”



112.jpg


나는 팔을 쓸어내린 다음 엄지손가락을 밀어 피를 모았다. 조 선장이 실을 감았다. 나는 조심스레 바늘을 찔렀다. 엄지손톱 밑에서 검은 피가 솟아올랐다. 어찌 생각해보면 조 선장이 참 고마운 사람이다. 똥 맞게 해주고, 정신 차리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내려와 똥냄새와 사이좋게 지내려고 애썼다.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가 생각났다.

 

하얀 들판, 야트막한 산자락에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한적한 그곳에 할머니와 다섯 살 먹은 사내아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겨울밤,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할머니가 남포에 불을 붙이고 아이를 살펴보았는데, 요와 이불에 토사물이 가득했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그날 저녁에 먹은 찐 고구마를 떠올렸다. 그제야 할머니는 아이가 체했다고 생각하고는 아이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할머니의 손길도 소용이 없는지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할머니는 잠시 아이를 눕혀놓고는 실과 바늘을 갖고 왔다. 그리고는 계속 울어대는 아이의 엄지손가락에 실을 감았다. 바늘을 본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몸부림치는 아이의 손을 움켜잡고 바늘을 찌르려 하자 버티다 못한 아이가 말을 했다.

거기가 아니고 여기.”

아이는 조그만 손으로 자기 명치를 가리켰다.

알았어, 알았어. 할머니가 안 아프게 해줄게.”


기어이 할머니는 바늘을 찌르는데 성공을 했다. 아이의 엄지손톱 밑에서 검은 피가 이슬방울처럼 솟아올랐다.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을 쥐어짜면서 검은 피를 밀어냈다. 피를 본 아이는 큰일을 해낸 것처럼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할머니 팔을 베고 누운 아이는, 울음 그친 딸꾹질을 해대면서 할머니를 요술쟁이라고 생각했다. 엄지손에 바늘을 찔렀는데 어떻게 아픈 배가 나았는지, 아이는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기억이 거기까지 이르자 배가 좀 편해진 것 같기도 했다.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무심결에 벽에 붙어있는 지도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솟고 온몸에 전기가 흘렀다. 바로 저것이다. 내 나라의 허리를 낫게 해주는 혈 자리는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독도다. 독도에다 침을 놓자!


나는 어려운 숙제를 푼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다. 때맞춰 바람도 수그러들었다. 바람이 잠잠해지니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기쁨 때문인지 어느새 체한 것도 다 나아버렸다. 나는 나의 기쁨이 맥주 거품처럼 흘러내릴까봐 그 기쁨을 훌쩍훌쩍 들이키고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보았다. 아령을 들고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씨였다. 미치도록 요란했던 바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숙소 건물에 달려있는 백열등 불빛이 물가에 어른거렸다. 나는 바닷물로 얼굴을 씻었다. 똥을 씻어내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똥냄새의 여운은 아직도 코끝을 맴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만약에 내가 던진 것이 제대로 날아갔다면 숙제는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바람이 신문지만 날려 보내고 똥을 내 얼굴로 보내줬기 때문에 숙제가 풀린 것이다. 그때 보드라운 바람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마치 축하라도 해주는 것처럼.


숙제를 잘 풀었군.”

바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문득, 지난해 물골에서 잠깐 보았던 아리랑이 떠올랐다.

우리 몸속에는 아리랑이라는 유전자가 있지. 지금은 비록 갈라져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이 땅에 막혔던 피가 흐르게 되면 작은 모세혈관까지 피가 흘러온 나라에 아리랑꽃이 피어날 거야. 그렇게 하려면 독도에다 침을 놔야 해. 엄지손가락에 침을 놓았는데 아픈 배가 낫지 않았던가.

오래전에 어떤 운동 경기에서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함께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북받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하늘, 또다시 갈라선 지 오래, 아직도 우리는 바보처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야해.”

바람이 또 내게 말을 건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보고 천천히 생각하라는 뜻 같았다. 아홉 시도 안 되었는데 조 선장은 발전기를 껐다. 먹을 것도 없고 술도 없으니, 기름이나 아낄 겸 일찍 자자는 것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오늘밤은 잠을 이룰 수 없을 테니까. 촛불을 켰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똥냄새의 여운도 나풀거렸다. 똥냄새가 뇌를 자극한 탓이었을까, 다른 때와 달리 생각들이 용솟음쳤다. 똥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의 뇌가 싱싱해진 것 같기도 했다. 마치 파도에 얻어맞은 바위처럼 말이다.


114-.jpg

 

지난해 여름, 어떤 대학생들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자기네들은 외국어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고 독도탐사대원들이라며 인사를 했다. 그래서 어인 일로 찾아왔느냐고 물으니, 노래를 부탁하려고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저희들이 이번에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뗏목탐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독도에 관한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나는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아직 독도를 보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독도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그들이 너무 반가웠다. 나 또한 오래전부터 독도 노래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 일로 독도에 갈 예정이었다.

한 달 뒤, 그들은 내가 독도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 독도에 들어가면 좋은 노래 건져 오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지난번 뗏목탐사가 궁금했다.

, 날씨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다음엔 제주도에서 독도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혈기왕성한 동무들이었다. 그들이 제주에서 뗏목을 띄운다면, 두만강에서도 누군가가 뗏목을 띄울 것 같았다.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타고 간다

 

드디어 진통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오늘밤 안으로 노래가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노래가 아리랑의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랐다. 그런데 아리랑을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그게 좀 안타까울 뿐이었다. 언젠가 대청봉에서 금강산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금강산

저 산에서도 누군가가

이산을 바라보고 있겠지

언제쯤 이 길을 오고가려나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나의 진통은 즐겁고 기뻤다. 마음이 근질거렸다. 노래가 태어나면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독도아리랑을 떠올렸으나 대번에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독도 이름을 들먹이면 나중에 독도한테 야단을 맞을 것 같았다. 아리랑도 마찬가지였다. 함부로 아리랑을 들먹였다가는 나중에 아리랑한테도 야단을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과 북이 아리랑을 방치하고 있는 마당에, 독도 혼자서라도 아리랑을 부르면 남과 북이 모른척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그리된다면 결국 혼자 부르는 아리랑이 아닌, 함께 부르는 아리랑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이름은 홀로아리랑이다.


새벽 어스름이 창문에 어른거렸다. 어둠이 빠져나가면서 내 마음은 아이를 낳은 산모처럼 평화로웠다. 머리카락이 솟고 온몸에 좁쌀 같은 것이 쏴 돋았다. 이 기쁨이 또 다른 노래를 잉태할 것만 같았다. 나는 옷을 모두 벗고 밖으로 나갔다. 두 팔을 벌리고 멀리서 날아오는 새벽빛을 맞이했다. 바람은 애기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새벽 기운을 받은 홀로아리랑이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엿새 만에, 거친 바람과 파도가 수그러들었다. 조 선장은 배를 끌어내리고 싱글벙글 떠날 준비에 바빴다. 그런데 갈매기들이 심상치 않았다. 조 선장과 내가 떠나려고 하자 갈매기들이 서서히 모여드는 것이었다. 갈매기들의 합창 소리가 바람 소리, 파도 소리를 밀어내고 아우성이었다. 위를 쳐다보니 어느새 꽤 많은 갈매기들이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독도에 사는 갈매들이 모두 다 모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배웅을 나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갑자기 어떤 갈매기가 쏜살같이 날아와 내 등에 똥을 갈기고 솟구쳐 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웃어대던 조 선장도 갈매기 똥을 뒤집어썼다. 아무래도 자기 알을 훔쳐갔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한꺼번에 공격할 태세였다. 나는 갈매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또다시 쏜살같이 날아와서는 흰 폭탄을 뿌리는 것이었다. 조 선장 모자가 갈매기 똥으로 하얗게 되었다.


노래는 어찌 돼 가요?”

조 선장 덕분에 잘되었지.”


조 선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사실 조 선장 덕분에 똥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그 바람에 뇌가 움직여서 노랫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때 갑자기 갈매기들이 언덕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이제 갈매기들이 물러가려나 싶었다. 그런데 배가 떠나자 잠잠하던 갈매기들이 다시 배를 따라왔다. 끝까지 따라와 우리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동안 따라오던 갈매기들이 어느 순간 되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를 용서해준 것일까? 아니, 어쩌면 진심으로 우리를 배웅해주고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 선장의 배는 아주 작은 통통배였다. 울릉도까지 여덟 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데,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동안 방구석에서 보낸 며칠 밤이 한 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귀한 고기를 잡고 귀항하는 어부처럼 나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비록 1절은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3절과 2절 그리고 후렴 부분이 완성되었기에 나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독도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배가 좀 흔들렸지만 독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멀어지는 독도를 바라보며 비로소 독도의 위대함을 느꼈다. 머지않아 온 백성은 알게 될 것이다. 독도가 왜 저기에 있는지를. 언젠가 저 섬에서 큰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 백두산 배하고 한라산 배가 독도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하는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조 선장의 통통배가 울릉도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나는 정들포에서 보고 싶은 얼굴들과 다시 만났다. 약소 키우는 영식이, 술 좋아하시는 대철 아저씨 그리고 이 두령. 그들은 나를 위해 조그만 술잔치를 베풀어주었다. 더덕 술은 아침부터 나를 황홀지경에 빠뜨리고 말았다. 이 두령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고생이 많았소.”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 두령은 내가 무슨 노래를 만들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아직 완성이 되질 않았다고 말했더니, 그건 조 선장이 술을 내놓지 않은 탓이라며 껄껄 웃었다. 이 두령이 웃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혹시, 독도를 위해서 기금 공연을 해줄 수 없겠소?”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말했지만 기금공연을 해서라도 독도에 심을 나무 값과 운영비 정도는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이 두령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를 보시오. 내 손가락 끝을 보시오.”

이 두령이 가리키는 손끝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이 두령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자세히 보시오.”


얼핏 삼각형 모양의 검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렸다. 나는 더덕 술을 한잔 들이켜 마시고 다시 바라보았다. 독도였다. 저 손바닥만한 것이 독도라니 괜히 눈물이 고였다. 그 순간 독도의 거친 파도와 바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더니 막혔던 수도관이 뚫린 것처럼 노랫말이 터져 나왔다. 나는 얼른 수첩에 옮겨 적었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그렇게 안 풀리던 1절이 한꺼번에 해결이 되었다. 정말 누군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읊어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떠오르지 않던 것이 어떻게 한꺼번에 떠오른 걸까? 그것도 쉬운 말로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바람의 조화인지도 모르겠다. 바람 때문에 갇혀 지냈고 똥도 뒤집어쓰고 그러지 않았는가. 이 두령이 술잔을 받으라며 내 어깨를 쳤지만, 나는 계속 독도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이 두령의 술을 받아 마시다가 나는 -’ 하고 등을 들썩였다.

아니, 지금 우는 거요?”

……


나는 내가 울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천궁 밭에 쓰러지고 말았다. 가늘게 눈을 떠보니 천궁 향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영식이가 나를 업고 자기 집으로 달렸다. 난 너무 기뻤다. 슈퍼맨처럼 날아서 백두산, 한라산을 휘휘 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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