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생노병사는 인간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 고통이라고 했던가요? 실감하고 절감합니다. 생과 사는 인간 내면의 철학적인 문제이지만, 늙음과 질병은 현실의 당면 과제입니다.
코로나19로 모든 모임이 끊기면서 시간이 넘치니 책을 읽고 틈틈 농사일을 돕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습니다. 둘레길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전염병의 재난은 국경과 지역의 경계도 없음을 알겠습니다. 피해갈 수 없는 재난, 혼자만의 일이 아닌 재난, 함께 극복해야 하는 재난, 이렇듯 우리의 삶은 그물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책을 꺼내 읽습니다. 며칠 전에 십대 시절에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읽었습니다. 뭘 의도하고 읽은 바는 아닌데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상황과 많이 닯아 있습니다. 물론 카뮈의 <페스트>는 질병만을 말하지 않고 늘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는 ‘부조리’를 말하고 있지만, 그 시사점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1940년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지역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가 의사 리유에 의해 발견되면서 시작합니다. 페스트가 발병한 것입니다. 리유는 즉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다고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합니다. 즉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오랑의 공무원들은 반대합니다. 그러나 페스트가 만연하자 허둥지둥하며 봉쇄 조치를 단행합니다. 오늘날 중국이나 미국을 보면서 기시감이 드는 대목입니다.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은 혼란에 빠집니다. 소설은 그런 혼란 속에서 리유와 함께 다른 인물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파늘루 신부입니다. 그는 페스트 창궐 초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페스트는 신의 재앙이지만, 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악과 타협하였기 때문에 회개를 촉구하기 위함이다"이 대목 또한 오늘날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그러나 낯설지 않은 발언입니다. 그러자 의사 리유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페스트가 신이 원하지 않는 불행이었다면, 이 어린아이는 무슨 죄가 있어서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이후 파늘루는 생각을 바꾸고 전염병 치유에 헌신합니다.
또 한 사람, 랑베르가 있습니다. 그는 오랑과 관계 없는 이방인입니다. 연인을 두고 프랑스에서 취재 온 그는 페스트가 퍼져나가자 온갖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런 그를 주변의 사람들은 원망하지 않고 존중합니다. 그러나 랑베르는 의사 리유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하여 오랑을 떠나지 않고 전염병의 치유와 확산 방지에 전념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19에 맞서 민주적이고 헌신적인 관료와 시민들의 합심을 보는 듯 합니다.
코로나19의 재난 앞에서 우리는 지금 ‘민주’와 ‘시민’이라는 의미를 새삼 공감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극찬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을 읽고 이런 생각에 머뭅니다.
“모든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혼자만 살고자 하면 혼자도 살 수 없다.”
“재난은 우리 곁에 늘 숨어 있다.”
“인간이 마음을 모으면 희망의 빛을 부를 수 있다.”
다음은 제가 페스트에서 크게 감명 받은 글의 한 대목입니다.
“의사 선생님” 랑베르가 말을 꺼냈다.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남아있고 싶어요.”
타루는 잠자코 운전을 하고 있었다. 리유는 피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녀는요?” 리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랑베르는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옳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만일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떠난다면 자신이 남겨두고 온 그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바로 세우면서 단호한 어조로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며 행복을 택하는 것에 부끄러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타루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만약 랑베르가 남들과 함께 불행을 나눌 생각이라면 행복을 위한 시간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게 아닙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저는 이곳에서 제가 늘 이방인이고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겪을만큼 겪고 보니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가 여기 사람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 이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참여사회>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