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의 바다 건널 희망의 징검다리 ‘하섬’서 쉬어 가소
부안 변산 하섬을 지키고 있는 원불교 수도원원장 김정륜 교무.(왼쪽)
변산을 넘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수도자들.(위) 사진 조현
변산에서 하섬까지 ‘모세의 기적’처럼 열린 길. 사진 하섬해상훈련원 제공
변산 하섬 원불교수도원 김정륜 교무
‘3대 종법사’ 대산이 기도한 곳
교단 지원없이 수도도량 가꿔
“지식과 재산·권력 차별 없이
모든 마음에 부처가 있습니다”
28일은 원불교 대각개교절이다.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우주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날로, 원불교인들이 봉축하는 날이다.원불교 최대 경축일을 앞두고, 15일 섬 자체가 원불교수도원인 하섬을 찾았다. 전북 부안 변산 성천포구에서 불과 1km 떨어진 작은 섬이다. 연꽃 모양의 연꽃 하(遐)자를 쓰기도 하고, 새우가 업드린 모습이어서 새우 하(鰕)자를 쓰기도 하는 하섬은 1958년 소태산의 제자 이공주 종사가 사들여 원불교에 기부한 곳이다.변산은 교조 박중빈이 전남 영광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뒤 건너와 5년간 지내며 주요 교리를 정하고 ‘익산 총부 시대’를 준비한 땅이다. 그래서 변산은 원불교에서 영광, 익산 등과 함께 5대 성지 중 하나다.변산반도 앞에 있는 하섬은 소태산-정산 송규(1900~62)의 교맥을 이어받아 33년간 최고지도자로서 원불교를 4대 종단으로 자리잡게 한, 3대 종법사 대산 김대거(1914~98)가 머물러 기도한 곳이자, 원불교 경전을 편찬한 곳이다.하섬 선착장에 도착해 10여미터를 올라가자 거친 바다와는 완연히 다른 화평한 땅이다. 법당과 한옥집과 종과 탑이 마음의 파도를 쉬게 한다.변산 해안쪽과 달리 살아있는 생명체를 거의 해치지않는 이 섬 해안쪽으로 조개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이런 소문이 허언으로 느껴지지않는 평화의 기운이 섬에는 감돈다.객들을 맞는 하섬해상훈련원 원장 김정륜(55) 교무는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바윗돌마냥 투박하다. 강원도 양양에서 한옥교당을 지으며 교화하던 중 5년 전 이곳으로 온 그의 몸에서 손수 땅을 파고 집을 짓고 나무를 심으며 가꾼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방안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동쪽 해안의 숙소도, 정갈한 연못이 배치된 남쪽 정원도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이 섬 전체 면적은 3만5천여평. 10~20분이면 한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해안 절벽과 변산의 경치까지 어우러진 절경이다. 더구나 음력 1일과 15일을 전후한 간조 때가 되면 2~3일 동안 너비 약 20미터의 바닷길 2km가 드러나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되풀이 된다.김 원장은 섬 서쪽 해안에, 죽음에 이르러 서방정토를 그리며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이들의 기도실을 짓고, 대산이 기도했던 북쪽 해안에도 수도도량을 짓겠다는 꿈을 하나씩 실행해 가고 있다. 하섬을 고해바다를 건너는 징검다리로 만든다는 것이다.내년은 하섬을 원불교의 성지로 만든 대산이 탄생한 지 100년 되는 해여서 그의 마음이 더욱 바쁘다. 대산은 대해처럼 품이 넓은 스승이었다.“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가족, 세상은 한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김 원장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채 몸을 던진 것도 스승이 염원한 이런 세계를 열기 위함이다.연꽃을 심어놓은 하섬의 연못 앞엔 샘터가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좁디좁은 샘은 족히 4~5미터는 될성 싶게 깊다. 제자들이 섬의 물 부족을 호소하자 대산이 잡아준 샘터였다. 제자들이 한여름에 비지땀을 흘리며 아무리 파도 물이 나오지않자 “이런 조그만 섬에 무슨 물이 나오겠느냐”는 불만의 소리가 높아갔다. 그런데도 일부 제자들이 굴하지 않고 파들어가자 끝내 샘물이 콸콸 쏟아져나왔다는 곳이다. ‘은혜로 나온 물’이란 뜻의 ‘은생수’(恩生水)란 이름이 붙여진 샘이다.교단의 지원 없이 김 원장을 비롯한 4명의 교무와 봉사자들이 하섬을 수도도량으로 가꾸는 것도 사람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생수를 솟게 하기 위함이다. 김 원장은 하섬을 정비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원불교인이 진리의 상징으로 모시는 ‘법신불(法身佛:진리부처)인 일원상을 손수 만드는 대장장이 일도 하고 있다.‘우주의 진리를 나타내는 상징조형을 만들면서 더욱 깊은 진리를 체험하지않았느냐’는 질문은 우직한 그에게서 우문이 되고 말았다.“날마다 법신불을 만든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지식이 많아지고 재산이 늘어나고 권력이 커진다고 달라지겠습니까. 남보다 가진 게 없고 못 배우고 사업에 실패했다고 달라지겠습니까. 모두가 부처님이죠. 털끝만큼의 차별이 없이 모두의 마음에 부처가 있다는 것이 부처님, 대종사님, 대산종사님의 한결 같은 말씀이지요.”이 얼마나 ‘모세의 기적’보다 놀라운 기적이자 은혜인가. 거친 파고가 이는 ‘고해’(苦海: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도 길이 열리고, 팍팍한 땅 속에도 생수가 흐르고 있다는 소식이.하섬(전북 부안)/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