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음식
*버터차를 마시고 있는 티벳의 스님들. 출처: 더티베트미러(www.ilovetibet.kr)
티벳 고원의 식문화는 육류가 주종을 이룬다. 매일 고기를 먹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미수가루 같은 짬빠와 차(茶)잎을 버터와 소금에 넣고 끓인 버터차(Butter Tea), 그리고 고기가 티벳 음식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 확실한 모모(Momo)라고 부르는 만두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지만, 평소에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독한 겨울바람에 마른 야크나 염소, 양 한 마리를 부위별로 잘라 들고 다니다 차고 다니는 단도(칼)로 그냥 베어 먹기도 한다. 한마디로 고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문화다. 자연환경이 논밭 농사를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보니 먹거리도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야채라는 것은 당초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1959년 인도로 망명 나온 티벳 사람들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람이 어찌 야크처럼 풀을 먹고 산단 말이냐!”
*야크. 티벳과 히말라야 주변, 티벳어를 쓰는 몽골에서 주로 사육되는 긴 털을 가진 소의 일종. 출처 : 위키피디아
달라이 라마 존자님은 주로 무얼 드실까? 티벳과 인도는 지형이 달라도 너무 다르고 또 음식 문화도 판이하게 다르니 드는 생각이다. 처음 망명 시절, 존자님도 인도 전통 음식 문화를 따르려 했다. 즉 고기를 안 먹고 채식주의자가 되어보겠다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병원 신세를 지셨다. 황달에 걸리셨다고 한다. 이후 주치의의 권고로 약간의 고기를 먹는 처방전을 따르신다.
*지난 4 월 초 이탈리아 북부 볼자노<Bolzano>지방에서 법문 마치고 질문을 듣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
한번은 남인도 타밀 지방에서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큰 행사가 열렸다. 인도에서는 행사를 마치면 부페식 음식 잔치가 따르는데, 주최 측에서는 남인도식 전통 채식 식단을 정성껏 준비했었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는 넌베지(Non Veg.) 즉 채식이 아닌 육식 코너로 가셨다. 이튿날 이 지역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큰 제목으로 사회면 톱기사로 게재되었다.
The H. H. Dalai Lama is not Vegetarian.
달라이 라마 성하(聖下)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이게 무슨 큰 내용이라고 신문 사회면 톱기사 제목으로 뽑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인도의 채식주의 전통에 어긋나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나 보다. 그러나 티벳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신은 다른 것처럼 음식에 대해서도 매우 소탈하시다. 어느 나라에 가시더라도 그 나라 음식을 맛나게 잡수신다. 한번은 한 서양 기자가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가?” 하고 물었다.
“맛있는 음식은 아무거나 전부, 그런데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무엇이나 최고로 맛있던데요.”
한때 이곳 왕궁 우편창고에 한국 라면이 줄지어 들어왔었다. 어떻게 말이 와전 되었는지 몰라도 당신께서 한국 라면을 즐겨 드신다는 소문이 퍼진 것 때문이었다.
“어떤 외부 음식도 당신에게 올릴 수 없다.”
담당 시자 스님의 귀 뜸이다. 역대 달라이 라마의 비극적인 죽음의 대부분은 중국 청나라 요리사가 만든 음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여기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를 친견 할 때 예물로 인삼 종류를 많이 올리는데 이것 또한 그대로 왕궁 부설 티벳 의료원으로 보내진다. 장의학(藏醫學)에서도 우리 인삼을 귀한 약재로 쓰이니 매우 유용한 보시인 셈이다.
여름철로 기억하는데 한국 매스컴에서 존자님 건강이 안 좋다고 한 모양이었다. 뜬금없이 한 비구니 스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님, 존자님께서 건강이 안 좋다고 하니 제가 전복죽을 좀 쑤어다 드릴까요?”
하도 어이가 없어,
“뭐라고? 전복죽! 차라리 보신탕을 가져오지 이 머저리야!”
존자님에 대한 존경이 지나치다 보니 ‘전복죽’ 운운까지 가게 되었던 모양이다. 존자님은 남방불교 비구 전통에 따라 오후불식(午後不食), 즉 오후에는 음식을 드시지 않는다. 한국 선방이나 토굴에서도 강도 높은 수행 중에는 졸음을 쫒고 의식이 늘 깨어있도록 저녁을 먹지 않는 스님들이 더러 있다.
육고기 중심인 티벳인들과 어울리다 보니 종종 웃지 못 할 일도 생긴다. 사실 이 사건이 필자가 여기 살아오면서 지금까지도 내 최고의 흉으로 책 잡혀 있으니까. 몇 년 전에 프랑스에 계신 나이 드신 할머니가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국땅에서 30여년을 살고 계신 그 분은 어렸을 때 먹어본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잘 아는 지라 특별히 뭘 먹고 싶은 게 없냐는 물으셨다.
“조구(조기)요.”
*맛있게 구어진 조기 두 마리.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각설탕 식구들(sunwly.blog.me)
그러자 한국에서 빠리로 공수된 조기를 인도까지 챙겨 오셨다. 도착하자마자 후라이팬에 두 마리를 구워 그 자리에서 죄다 한 점도 안남기고 먹어버렸다. 그런데 같이 있던 티벳 스님들이 이걸 보고 당신네들끼리 수근 대며 아래 말을 하면서 킥킥대고 많이도 웃으셨다.
“꼬리아 겔롱기 냐 첸포 니 싸쏭. 데양 땡 찍라!”
(한국 비구승이 물고기 큰 놈 두 마리나 먹어버렸다네. 그것도 한꺼번에!)
그게 뭐가 그리 우스운 일이냐고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더 가관이었다.
“어떻게 비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중생을 자비심 없이 그렇게 뜯어먹느냐?”
물고기는 죽어도 눈을 뜨고 있다고 설명해 줘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당신네 끼리 모이면 킥킥대고 웃으시는 게 바로 필자가 먹은 조기 사건 때문이다.
평균 해발 3,4천 미터인 티벳 고원에는 큰 호수가 많이 있고 이 호수에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티벳인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물고기만큼은 절대 금기 식품인 것이다. 죽어서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잡으려면 야크를 잡아라.”는 속담처럼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살업(殺業)의 과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단순 철학논리로 한 중생 잡아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는 뜻이리라.
달라이 라마는 돼지띠이니 올해로 79세다. 시자 스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오후불식 중 하루 일과가 힘들어 허기질 때는 초코렛을 드신다고 한다. 그 말에 참 인간적인 모습을 느낀다. 꾸밈없는 스승이 보여주시는 사람 몸을 가진 한 유정의 모습을 보기에. 흔히 이름 있는 고위 성직자들이 몰래 가지기 쉬운 위선을 벗어난 모습이기에 말이다.
*4 월 15 일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주최측의 행사 모자를 쓰고 법문하시는 달라이 라마
나날이 반복되는 생로병사 사고(四苦)의 바다를 떠돌다 짜증나는 일을 겪으면 언제나 생각나게 하는 당신 말씀 한 자락으로 이 글을 마친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에,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기에서 소중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소중한 삶을 낭비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말씀인데, 곁들여 이웃에게 자기희생이 따른 배려라면 최고의 인생길이라고 누누이 말씀 하신다.
여름이 시작되는 천축 땅에서, 비구 청전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