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아이히만, 단하 선사, 권은희
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2002년, 우리 사회는 온통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로 열광했다. 붉은 티셔츠와 ‘대~한민국’의 응원 소리가 4000만 국민을 한몸으로 만들던 그때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월드컵이 끝나고 며칠 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대강의 내용인즉 자신이 학교에서 애국심이 없는 이상한 별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입하자 그 학교의 교장과 선생님들은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모든 학생들이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등교하자고 제안했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 제안에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교장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왜 학생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붉은 티셔츠로 ‘하나 됨’을 강요하느냐고 항변했다는 것이다. 그 일로 그 선생님은 애국심이 없는 사람, 조직의 결집과 이익에 장애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붉은악마. 한겨레 자료사진
2013년, 최근 권은희라는 이름이 기억에 강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국정원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사실’을 밝힌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그는 정직하고 용기 있게 조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실을 밝혔고, 그것은 ‘진실’이 되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정직한 자세로 거짓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기에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모두 감동했던 것이다.
*권은희 수사과장(현 서울 송파경찰서)/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학살의 주범 중 한 사람이었던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아렌트가 조사하고 추적한 바로 보면 아이히만은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고, 별다른 성격장애도 없었고, 근면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 끔찍하고 엄청난 학살의 주범이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성실한 태도로 ‘조직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치명적 결점은 세 가지다. 생각하지 않는 것, 주체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그리고 소신 있게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돌프 아이히만
중국 당나라 때 단하천연이라는 선사가 있었다. 선사는 행각 중에 낙양의 동림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날은 몹시 추웠고 객실은 냉방이었다. 선사는 법당의 목불을 가져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따뜻하게 잠을 잤다. 다음날 스님들이 예불을 모시고자 법당에 들어갔는데 부처님이 없지 않은가. 당황한 그 절의 스님은 마침내 객승의 짓임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며 따져 물었다. “불제자가 부처님을 태워 방을 데울 수 있느냐”고. 선사는 답했다. “그래요? 내가 부처님을 태웠다고요, 그러면 아궁이에 부처님의 사리가 있는지 찾아봅시다.” 당연히 아궁이에서 사리를 찾을 수는 없는 일. 선사는 허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정신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 무엇으로부터 개인의 목소리를 보장하는 것, 그리하여 주체적으로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는 조직과 대중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획일적인 사고와 몸짓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은 전체주의를 닮았다. 조직의 안위와 이익이라는 것도 기실 몇몇 상위 권력자들의 이익일 뿐 다수는 그저 자리보전과 약간의 떡고물 정도를 얻을 뿐인데도 말이다.
착하고 겸손하고 친절한 것은 좋은 성품이다. 근면하고 성실한 것도 더없이 좋다. 그러나 사심 없이 바로 보고, 분명하게 판단하고,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면 당신은 자칫 ‘조직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시인 폴 발레리가 말하지 않았던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