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진짜 있나
<당당뉴스> 지성수 목사 sydneytax1@hanmail.net
미국에서는 심령술 서비스산업이 연간 미화 20억불 규모에 이른다. 2009년 닐슨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초감각적 인식 같은 모종의 초능력을 믿는다고 답했다.
영의 존재 여부는 인류가 생겨난 이래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사실상 근대 합리주의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유령이 당연히 있는 걸로 여겨졌다. 인간이 죽으면 다른 동물들처럼 그저 내버려두지 않고 다른 인간들이 땅에 묻기 시작하면서 고대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죽으면 끝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고, 저승은 물론 이승조차 신과 유령, 정령, 인간 등이 부대끼며 사는 곳이라 여겼다.
물론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점은 서양과는 종교적 전통이 다른 동양 쪽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실은 무신론에 가까운 불교나 괴력난신을 경계하는 유교 철학의 본령과는 무관하게 온갖 형태의 초자연적 영의 존재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영화 <귀신이 산다> 중에서
귀신이나 영의 존재를 두려워하면서도 한 편으로 기정사실화한 것은 죽음이 ‘영원한 소멸’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가 지속되는 것이 좋다는 일종의 보험성 심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 등등 도무지 영의 활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경험 사례들도 많았을 것이다. 아! 물론 진짜로 영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그러다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현상의 대부분이 규명되고 종교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본격적으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간을 뇌, 심장, 폐, 위, 간 등 장기들이 일종의 기계 부품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유기체적 기계로 보는 관점이 생겨나면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영혼 없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힘을 얻게 된 거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싹 튼 거는 길게 봐야 한 200년 정도 밖에 안 된다. 하여간에 유령의 실존 여부를 떠나 확실한 것은, UFO 나 마찬가지로 유령 ‘현상’이란 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종교계에서는 종교 체험과 연동되어서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론과 주장이 난무한다.
나도 한 때 비상한 종교적 체험에 몰두할 때가 있었다. 일반적인 보수 신앙의 풍토에서 자랐기 때문에 은사를 추구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거의 40년 전 신학대학 1년 선배인 김국도 목사가 잠실에 천막을 치고 강남제일교회를 개척할 때 전도사로 돕고 있을 때였다. 여름 방학에 교인들과 학생들을 데리고 한얼산 기도원을 갔다. 한얼산 기도원이 전성기였던 당시 보통 한 주간에 2 만 명씩 몰려 올 때였다. 깊은 산 속에서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밤낮으로 계속하는 열광적인 예배 분위기는 그야말로 용광로 같은 열기가 가득했다.
아내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특수한 경험이 있었다. 처녀 때 돌아가신 장모가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어서 집에서 굿을 많이 했는데 무당이 귀신을 내쫓을 때 아내는 혹시 ‘저 귀신이 나에게 들어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무서웠다고 한다. 굿을 할 때마다 남자 형제들은 전부 밖으로 나가버렸지만 아내는 맏딸이기 때문에 굿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그 후로도 무당이 굿하는 것이나 북소리만 들어도 그 때가 연상되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나를 만나서야 비로소 교회를 다니게 되었기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산 속에서 북을 치고 열광적으로 찬송과 기도를 하는 집회가 며칠 계속되는 동안 의식 속에서 그동안 잠재해 있었던 굿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잠잘 곳도 먹을 곳도, 심지어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조차 불편한 산골짜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민처럼 와글와글 대는 특수한 분위기는 기도원에 생전 처음 와본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안정을 찾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백일 밖에 안된 아이를 안고서 어디 한 군데 편히 앉아 있을 곳도 없지, 집사람은 그야말로 전전긍긍 하느라고 심리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고 ‘이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뒤섞여 점점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마침내 극도의 긴장에 못 이겨 급기야 예배 시간에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실신을 하고 만 것이다. 열광적인 찬송 소리와 북소리가 무당의 굿소리와 박수무당의 굿소리와 함께 동일시되면서 급기야는 감정이 억압되고 마비 현상이 왔던 것이다. 이런 것을 '귀신 들렸다'고 생각해서 귀신을 내쫒기 위해서 몇 달을 생사람 잡고 생고생을 했다.
그 후 충청북도 진천으로 첫 단독목회를 나갔는데 태초 이래 교회가 없던 농촌이라서 미신과 무지가 심한 곳이었다. 분위기가 그런 곳에서 나도 뭘 잘 몰라서 모든 것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귀신들과 싸움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대하여 기초적 상식만 있어도 이해가 될 수 있었던 것을 몰라서 그저 무식이 죄였던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원흉인 칼 융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 인격들이 정말 악마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 상황을 치료에 이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원인이 귀신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환자를 지배하는 논리와 힘을 무력화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즉 ‘귀신 들렸다'는 것을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즉, 보편타당한 진실이라 보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 범위 내에서 '유용성'을 인정한다는 것에 가깝다. 최면 치료사가 치료를 하는 동안 ’빙의‘ 모델에 입각하여 최면이 걸린 사람에게 영적 존재를 인정하지만, 세션이 끝남과 동시에 철저히 물질적인 세계관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최면가의 중심잡기라 한다.
마치 아파트를 분양 할 때 모델 하우스를 짓지만 그 안에 사람이 살 수는 없고 공사가 끝난 다음에 부셔버리는 것과 같다. 모델 하우스 안에서 그 집이 진짜 집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는 있지만 생활이 불완전 할 것이다. 그러나 모델 하우스 밖에 현실 세계가 있듯이 영적 세계 밖에 현실 세계가 있는 것이다. 즉 어떤 귀신도 밥 먹고 똥 싸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신학교를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목회 초년병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아직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즉 대부분의 목회자들처럼 교회가 잘 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때였다. 교회가 잘 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여기저기 어디든 잘 쏘다니는 친구가 찾아 와서 '귀신을 잘 쫒아내는 능력이 있는 목사가 있는데 가보자'고 유혹을 해서 신림동 성낙교회까지 가서 적지 않은 돈을 내고 6 개월 과정의 '베뢰아 아카데미'에 등록을 하고 김기동 목사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다. 결론은 "나도 저 사람처럼 단순 무식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나?"였다.
저명한 최면 연구가 데이브 엘먼이 한 말이란다.
“최면이란 비판적 사고를 우회하여, 받아들일만한 선택적 사고에 몰두하도록 하는 것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인과관계를 따지고 계산하고 추측하는 이성적 사고작용인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고 관심을 갖기로 선택한 대상에 대해서만 사고하는 것을 말 한다. 예를 들어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는 지나가는 차만 보이고 취직하려는 사람에게는 구인 광고만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하나의 대상에 마음이 집중되는 것을 선택적 사고라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상대방이 반론하거나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도록 어떤 생각이나 제안을 입력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실행하도록 한다면, 그것이 바로 최면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은 비판적 사고의 '부정'이 아니라 '우회'라는 점이다. '우회'는 비켜감을 말한다. 대중 종교는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만 최면은 잠시 '우회'를 하도록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중 종교 보다는 최면이 더 건전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초월적, 신비적, 비과학적,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온갖 현상들을 사실이냐 아니냐 하고 따지고 캐는 것 보다는 우회하는 방법이라고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