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프랑스를 택한 뒤, 떠나기 전에 몇몇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닐 무렵이었다. 누군가 파리생활 7년차인 유학생이 잠시 한국에 와 있으니 한번 만나 조언을 듣고 가라고 말해줬다. 그 7년차 유학생은 제일 먼저 파리에 있는 한인교회에 다니라고 조언했다. 거기 가면 오빠들이 많이 도와줄 거라나. 여자니까 집은 꼭 중앙난방이 되는지 확인하고 파리 남쪽에 얻으라고 했다. ... 유학의 성패는 애초에 가진 돈이 좀 있느냐가 좌우한다고도 했다. 그 남자가 입을 연 순간부터 그가 한 얘기를 잘 새겨들었다가 정반대로 실행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실천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지금 누군가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난 경쟁을 딛고 더 높은 곳에 올라서려는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에게 긴 소풍을 베푼다는 마음으로, 여정 자체를 즐기는 먼 길을 떠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투자할 시간, 투자할 돈, 그렇게 해서 딴 학위가 나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더 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매순간 계산해야 한다면, 한 순간도 인생은 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
한국에서 자신의 발 앞에 놓인 좁은 선택의 틀에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볼 때마다, 난 그녀들에게 다른 나라로 떠나라고 충동질했다. 프랑스에서 정해진 안온한 삶에 몸이 근질거려 하면서도 모험심 없이 눈만 뻐끔거리며 그럭저럭 지내는 프랑스 남자들을 보면서, 한국이나 일본으로 가라고 충동질했던 것처럼. 그렇게 해서 잠시 다른 질서 속에 방황하는 것, 자유 속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들을 고르는 경험을 하는 것, 다른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치전복의 신선함을 누려보는 것, 적어도 오늘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요구가 내가 살아내야 하고 견뎌내야 할 유일한 조건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 살면서 꼭 해보아야 할 경험들이 아닐까.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글 목수성, 사진 희완 트호뫼흐,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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