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종파들 모여 지구적 연대를 위해 기도
[종교의 창] WCC 부산총회 뭘 남겼나
‘그리스도교인들의 유엔’인 세계교회협의회(WCC·협의회) 부산총회가 지난 8일 10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개신교 외에도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등 다양한 그리스도인 목회자와 신학자 등 8천명이 모여 앞으로 세계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토의한 부산총회 10일의 안팎 풍경을 살펴본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구촌 대부분의 교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치와 연대를 도모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의 지난달 30일 개막기도회 모습.
그럼에도 소통하고 일치한다
총회 이틀째 전체회의 일치성명서 채택을 위한 회의 때였다. 러시아정교회 대외협력위원장 힐라리온 대주교가 특별발언을 요청했다. 세속주의 세태를 한탄한 그는 “동성애, 동거, 동성 커플의 아이 입양 등이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가치를 파괴하고, 부모의 개념에 혼동을 주고 있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많은 ‘총대’(의원)들이 ‘반대’를 의미하는 파란색 카드를 흔들었고, 찬성하는 총대들은 ‘동의’를 의미하는 오렌지색 카드를 흔들었다.
일부 총대는 “많은 이들이 성 정체성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고, 차별을 당하는 현실에서 교회가 약자들을 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론을박이 계속되자 알트만 협의회 의장은 “협의회는 다른 생각에 대해 안전하게 담화할 수 있는 곳이고, 방금 우리는 그러한 것을 경험했다”며 마무리지었다.
협의회에선 공개적인 거수투표나 ‘가하면 예 하시오, 아니라면 아니라고 하시오’ 하는 형태의 일방적 소통 방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일방적 주장이 채택되긴 불가능하다.
세계 각국, 다양한 종파들의 의견 차이가 많음에도 경청하고 토의하면서, 지구적 위기 극복을 위해 함께 힘을 모을 연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고 회개하는 현장
총회에선 각 종파가 이끄는 기도회가 이어졌다. 한국의 새벽기도를 체험한 영국 존버니언 침례교회 켄 워커 목사는 “런던에서 한인 교회와 건물을 같이 쓰는데 새벽마다 시끄럽게 부르짖는 한국인들의 통성기도가 사실 불편했는데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런던에 돌아가면 새벽에 한국인들과 함께 기도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총회 참가자들은 대회 기간 중 주말인 지난 2~3일엔 임진각 비무장지대, 광주 민주화운동, 경주역사문화 등 주말프로그램별로 나누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했다. 이 가운데 40여명은 부산 수영동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방문했다.
부산 해운대 벡스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장 앞에서
‘WCC가 교회를 죽인다’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총회 반대자
총회장 주변 시위대 소란에도
반대자들을 위한 기도회 열어
차별과 빈곤의 현실 개선 위해
자기중심성 벗어나 일치 강조
임진각 비무장지대 체험하고
위안부 할머니 전시관도 방문
이 전시관의 허복희 간사는 “1937년부터 일본군이 조선인 10대 소녀 20여만명을 ‘공부시켜 주고 돈 벌게 해 주겠다’며 꾀어내거나 납치해 끌고 갔다. 일본인 장교에게 성병을 옮긴 위안부를 불로 달군 막대기로 지져 자궁을 드러내고 임신할 경우 배를 갈랐다”고 말했다. 그러자 참가자들은 “오우!”, “오 마이 갓”, “우후!” 등의 탄식을 쏟아냈다. 일본 웨슬리재단 총무 히카리 코카이(52) 여성목사는 “그동안 한국 여성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고통스럽고 부끄럽다”고 사과했다.
교회를 위한 교회냐 세상을 위한 교회냐
총회 현장 인근에선 연일 “협의회 악마들아 물러가라”,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등의 푯말을 든 시위대들이 총회장 주변을 맴돌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이런 시위대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또 총회장에서 반대자들을 위한 기도가 열리기도 했다.
총회 반대자들은 1인 시위자가 든 ‘WCC kills church’(WCC가 교회를 죽인다) 팻말이 말해주듯 기독교 내 다른 종파들까지도 개종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배타적 선교전략이 협의회의 포용성과 일치 때문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우려를 표했다. 반대자들이 자기 교회나 교파 이기주의적 생존 논리를 내세우며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도 총회장 참석자들은 교회의 보폭을 지구촌의 아픔을 보듬는 쪽으로 넓혔다.
네빌 칼람 세계침례교연맹 총무는 “전세계 교회가 다양한 표현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너무 똑같은 모습만 찾으려다 보니 교회 안에서조차 인종차별이라는 용이 머리를 들고 있다. 빈곤과 착취, 질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일치의 부르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총회 전 이번 대회 개최를 반대했던 대전 예수생명교회 박승학 목사는 직접 총회에 참석한 뒤 “아픔을 겪고 있는 세계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밝혔다.
총회가 30여년 만에 채택한 새로운 선교정책도 생명과 정의, 평화라는 주제에 맞췄다.
“전도는 하나님 통치의 가치와 모순되는 억압과 비인간화의 구조와 문화에 맞서는 것을 포함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