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코끼리'선물을 아십니까
값지면서 쓸모없는 것...부와 과소비 이면 가난한 이웃과 피조 세계 고통 기억해야
<뉴스앤조이> 양승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작년 이맘때의 일입니다. 제가 속한 캐나다 복음주의 자유교단(EFCC) 하태평양(LPD) 노회에 소속된 목사들이 크리스마스 축하 모임을 가졌습니다. 미국 국경 가까이 있는 어느 괜찮은 식당의 홀을 하나 빌려서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여느 모임들처럼 메일을 통해 시간과 장소, 그리고 찾아오는 법, 간단한 순서, 당일 회비 등을 알려 왔습니다. 다른 것은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임에 올 때 선물 교환을 위해 부부당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 선물을 하나씩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얀 코끼리가 뭘까? 코끼리와 관련된 무엇일 것 같은데 다른 목사들에게 물어봐도 똑 부러지게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적절한 것이 없으면 그냥 빈손으로 와도 되니 염려하지 말고 오라고 웃으면서 말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 사람이 선물 교환이 있는 모임에 어찌 거지처럼 빈손으로 갈 수 있으랴!! 아내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마음 편하게 모임 장소 인근에 가서 적절한 것을 하나 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모임 시간보다 약간 일찍 가서 모임 장소 인근에 있는 가게에서 20불 정도 되는 선물을 하나 샀습니다. 하지만 선물만 덩그러니 가져갈 수가 없어서 포장 용품을 샀습니다. 선물을 고를 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선물을 넣는 종이 가방과 가방 빈 곳을 채워 넣는(stuffing) 포장 재료를 합쳐 근 10불이 추가되는 것을 보니 '어, 이건 아닌데'싶었습니다. 집에 가면 쓰레기가 되는 포장 재료가 선물비의 절반이나 되다니…. 속이 쓰렸지만 그렇다고 모임 시간이 임박했는데 포장 재료 산다고 밤길에 1달러샵을 찾아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하얀 코끼리가 뭘까? 모임 장소로 달려가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우리 선물을 갖다 놓을 때까지도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마다 하얀 코끼리를 몇 마리씩 갖고 올 거라는 추측과는 달리 코끼리나 코끼리를 닮은 것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물 포장한 것을 보니 모양도 제각각이라 도무지 코끼리를 연상케 하는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트리 아래에 잔뜩 쌓인 선물 가방과 상자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하얀 코끼리나 그와 관련된 뭔가가 들어 있으리라! 드디어 사회자의 인도를 따라 캐럴을 몇 개 부르고 선물 교환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회자가 이름을 부르면서 선물을 배부하는데 웬걸, 코끼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물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쓰던 물건들, 사 놓은 지 오래 되었지만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 읽던 책, 장식품 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하얀 코끼리와는 촌수(寸數)가 전무한 물건들이었습니다. 아니 저런 것들이라면 우리 집에 쌓였는데…. 학생들이 이사하거나 귀국하면서 버리지도, 팔지도 못하는 것들을 우리 집 차고에 갖다 놓은 게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얀 코끼리가 뭔지 모르는 통에 선물과 포장비를 합쳐서 근 30불의 거금을 지출했으니….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 간 선물을 환불할 수도 없고….
위키(Wikipedia)의 설명에 의하면 하얀 코끼리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신성시되는 동물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단순한 돌연변이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이 코끼리가 군주가 나라를 정의와 능력으로 다스리는 것을 상징하고, 이로 인해 나라는 평화와 번영의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군주들이 소유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이 코끼리는 유지하는 데 돈이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이를 위한 별도의 황금 궁전과 사원을 지어야 했고, 별도의 요리사, 음악가 등을 두어야 했습니다. 마음대로 죽이거나 학대하는 것은 물론 일을 시키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오래 전 태국 왕들은 골치를 썩이는 신하들에게 하얀 코끼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왕이 준 선물이니 거절할 수도, 버릴 수도 없고, 결국 하얀 코끼리를 선물받은 신하는 이를 관리하느라 망하는 것입니다!
▲ 미얀마의 이전 수도 아마라푸라(왼쪽, Amarapura)와 아마라푸라 궁전에 있는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 (사진 출처 Wikipedia)
여기에서 유래한 하얀 코끼리는 값진 것이기는 하지만 쓸모가 별로 없는, 다시 말해 가치에 비해 비용이나 유지비가 많이 드는 물건을 말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하얀 코끼리란 집에 굴러다니면서 거추장스러운, 그러면서 버리기는 아까운 꽤 괜찮은 물건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얀 코끼리 선물 교환은 쓰지 않는 물건들을 서로 교환하는 일종의 물물교환 거라지 세일 비슷한 것입니다. 꽤 쓸 만한 물건을 교환하기 때문에 받는 사람은 기분이 좋고, 주는 사람은 집안이 깨끗해집니다. 처남 좋고 매부 좋은 격이지요.
크리스마스 축하 모임에 가져온 목회자들의 선물들을 보면서 저는 '역시 실용주의에 익숙한 서양 사람들이로구나!'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하얀 코끼리 선물 산다고 쓴 30불은 레슨비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본전을 찾기 위해 곧 바로 저희 쥬빌리채플에서 그 아이디어를 써 먹었습니다. 그로부터 3주 후, 인근 칠리왁 카리스 캠프(Charis Camp)에서 개최된 제2회 쥬빌리 가족 캠프에서 이 비싸게 배운 하얀 코끼리 선물 교환을 실천한 것입니다. 잠시 공부하러 왔다가 가는 VIEW 학생들이야 좋은 ‘코끼리’가 있을 수 없지만 몇몇 교민 가정에서는 아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많이 갖고 왔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저희 집에서도 '하얀 코끼리'를 잔뜩 들고 갔습니다. 그리고 모두 기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이 깨끗해져서, 어떤 사람은 받아서 기뻤습니다. 확실히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것입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추수감사절이고, 이어 온 세상은 울려 퍼지는 캐럴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흥청거릴 것입니다. 이때를 놓칠세라 쇼핑몰에서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한껏 자극할 것이고, 대규모 세일을 통한 재고 줄이기에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교회들마다 많은 행사를 하고, 기관이나 단체, 개인들도 선물 교환을 하면서 뻑적지근하게 성탄을 축하할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산더미처럼 쌓인 상점의 물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겠지요.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물건들의 상당수는 하얀 코끼리가 되어 일 년 내내 차고와 집안 구석구석에서 발길에 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년 크리스마스 때와 같이 금년에도 결국 하얀 코끼리가 될 물건들을 사기 위해 쏟아지는 세일 광고에 목을 매고 있어야 할까요.
지금처럼 흥청거리기 쉬운 때일수록 우리는 고통받는 이웃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과소비를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피조 세계가 있음을 생각하며, 하얀 코끼리가 될 물건들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건이라면 그 물건의 '관리 비용'이라도 줄이겠다는 소박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잠깐의 즐거움이 가난한 이웃들에게 긴 고통이 되고, 피조 세계를 거의 영구적으로 신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하얀 코끼리 선물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난과 고통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까짓 물건 몇 개 나누어 쓴다고 피조 세계의 피폐함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마음만이라도 우리의 물질적 부요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피조 세계의 피폐함에 잇대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