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가 필요한 세상
텃밭상자 몇 개를 가꾸고 있다. 봄에는 상추를 심었는데 장마 후 상추에 벌레가 많이 생기고 꽃도 피어서 다 뽑아낸 후 쪽파를 심었다. 쪽파는 신경 안 써도 쑥쑥 잘 자란다며 이웃 아주머니께서 권해주신 거였다.
동네 재래시장에 가서 쪽파 알을 4000원어치 사와서 텃밭상자에 심었다. 쪽파의 푸른 잎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 쪽파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오히려 시들기 시작하자 쪽파를 뽑았다.
쪽파를 수확해 뿌듯하긴 했는데 흙 묻은 뿌리와 시든 잎을 일일이 골라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수확한 쪽파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쪽파 한 단 양의 3분의 2정도 됐는데, 반을 정리하는데 40분이나 걸렸다.
*텃밭상자
일단 다듬은 쪽파로 부침개를 부쳐 먹었다. 매생이와 굴을 넣고 쪽파를 나란히 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사먹는 쪽파와 다르게 연하고 부드럽고 맵고 달고 다양한 맛이 느껴졌다. 나머지 남은 쪽파도 다음날 다듬어서 쪽파김치를 담갔다.
당시 마트에서 팔던 쪽파 한 단의 값은 1500원 정도였다. 내가 수확한 쪽파의 양이 후하게 쳐서 한단이라고 하더라도 돈으로 계산한다면 엄청 손해 보는 일이었다. 쪽파 알이 4000원, 벌레와 병충해 방지를 위해 사서 뿌린 친환경 살충제에 한 8000원 정도 들었다. 이 값만 해도 1만2000원이니까, 사 먹는 것보다 10배는 비싼 가격이다. 게다가 몇 달 동안 물주고 신경 쓴 인건비까지 합치면, 비용으로 따졌을 때 직접 텃밭에서 쪽파를 재배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가꾸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쪽파는 1500원이면 살 수 있지만 내가 직접 재배한 쪽파와는 다르다. 직접 재배한 쪽파는 인위적인 생장 촉진 방법을 쓰지 않고, 농약도 뿌리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연하고 맛있다. 그리고 직접 재배했기 때문에 쪽파 한 뿌리 한 뿌리가 소중하다. 가격에 상관없이 쉽게 버릴 수 없다. 만약 시장에서 쪽파를 샀다면 뿌리 다듬기가 귀찮아 남는 것은 쉽게 버렸을 지도 모른다. 쪽파김치를 만들어 놓고도 먹다 남기고 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직접 재배한 쪽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비싼 것은 좋은 것이고, 싼 것은 덜 좋은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쪽파 하나에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정성, 뛰어난 맛, 정 같은 것이 담겨있는 것을 직접 느끼고는, 흔한 말이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으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 내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면 시중에서 파는 물건들에 왜 몸에 안 좋은 화학물질이 들어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시중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판매되는 물품에 사람 몸에는 좋을 수 없는 성분이 들어가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내 몸과 환경에 해롭지 않은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막걸리를 예를 들어보자. 나는 여름에 종종 막걸리를 담가 먹는다. (발효온도를 35도 정도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담그는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총 4~5리터의 막걸리는 만드는데 쌀이 1.5킬로그램 정도 들어간다. 나는 국산 유기농 백미로 담그기 때문에 일단 기본 재료비가 비싼 편이다. 설탕은 쓰지 않는다. 좋은 쌀을 쓰기 때문에 쌀 자체에서 나는 단맛을 있는 그대로 즐기자는 취지도 있고, 건강에 좋지 않은 설탕을 굳이 쓰지 않기 위해서다.
시중에 파는 막걸리는 아직도 수입산 백미를 쓰는 제품이 많다. 막걸리에는 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원재료 값을 낮추기 위해서 수입산 백미를 쓰는 것이다. 수입하는 곡물이므로 농약이나 방부제 등이 많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시중 막걸리에는 대부분 아스파탐이라는 합성감미료가 들어간다. 단맛을 내기 위한 것인데, 설탕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이를 쓴다. 아스파탐은 내분비계의 이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물질이다.
*메주로 직접 장을 담그는 모습
결국 이익을 가능한 많이 내기 위해 저렴한 재료(수입산 쌀과 합성감미료)를 쓰게 된다. 이익을 얻기 위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과, 나와 내 가족이 먹기 위해 직접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과의 차이는 여기서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익(돈)’이라는 관점이 들어가지 않으면, 좋은 재료를 쓰고 나쁜 재료는 넣지 않으며 정성들여 만들게 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건강에 좋은지 여부보다 싸고 잘 부패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 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이 우리 몸에 좋기 어려운 이유다.
필요한 것들을 직접 손으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할 일이 많은 바쁜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더 음식이나 필요한 물품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돈이 전부가 아닌, 돈으로 대체돼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쓰는 핸드메이드의 세계에 입문해서 ‘필요한 것은 돈을 주고 산다’는 고정관념과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면, 돈의 노예가 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핸드메이드는 ‘돈’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해줄 수 있는 혁명적인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