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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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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음 깃털처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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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걸음걸음 깃털처럼 가볍게
다람살라의 보살행자 청전 스님께


<불교포커스> 들돌  |  philipol@hanmail.net

 

두 해 만에 스님을 뵈었습니다.
무심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
책 소식을 듣고서야 스님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부랴부랴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를 구입해서 읽었는데요.


해발 2천 미터에서 5천 미터 사이의 라다크 오지에 있는 사찰과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수행자들과 주민들을 찾아가는 스님 일행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 제 무릎과 발바닥이 아팠습니다.
고산증세로 쓰러지는 젊은 수행자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숨쉬기가 어려웠고,
난간도 없는 절벽 길을 자동차로 가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절로 오금이 저렸습니다.

그러다가도 의약품 몇 십 알을 받아 들고 온갖 걱정을 떨쳐내는 사람들과
알이 깨진 안경을 실로 묶어 쓰다가 새 돋보기를 받고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연필과 노트를 받기 위해 모여드는 눈빛 맑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무겁던 가슴이 활짝 열리고 아프던 발바닥과 무릎도 시원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착하게 살라’는 어린 날 배움으로부터 시작되는 스님의 이야기는
머릿속 계산과 글쓰기 기교로 이루어진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발이 기억하는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고난의 길과
가슴이 기억하는 눈물과 웃음 속 사건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이야기였습니다.

문장의 아름다움에 취해 감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아름다운 만남들 때문에 마음의 물결이 일렁거렸습니다.

책 읽은 소감을 글로 적기 전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늦었지만 제게는 이른 만남이 이뤄졌는데요.
스님을 만났을 때 두 해의 격조가 느껴지지 않아 먼저 마음을 놓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천국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어.”
자리에 앉자마자 하신 첫 말씀이 얼마나 뜨끔했던지요.
함께 살면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을 내지 못했고
나를 바쳐 남을 이루게 하는 희생의 마음 또한 내지 못했으며
어울려 잘 살아가는 길을 놔두고
혼자서 잘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친 모습을 들켜버린 것 같았습니다.

 

청전불교포커스.jpg   
▲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 존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26년째 수행중인 청전淸典 스님.

맑은 영혼의 땅, 히말라야에서 만난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와 함께 두 해 만에 찾아온 고국에서 법향을 전하고 있다.

 

 

스님의 말씀 담긴 책을 읽으면서도 스스로에게 몇 번씩 물어보았는데요.
알약 한 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제게 남아있는지
돋보기 한 개에 그리도 큰 고마워하는 마음을 낼 수 있는지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으로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것 들을 작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 저 자신조차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글을 쓴다는 핑계로 좋은 말은 남들보다 더 많이 입에 달고 살면서
말이 곧 행이 되게 살아오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스님은 또 넘치면 타락하기 마련이라 하셨고,
자발적 가난은 가난이 아니라 축복이라 하셨고,
행복의 비밀은 착하게 사는 데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저마다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모자라서 불편해지기보다 타락하더라도 넘쳐나는 것을 좋다고 여기고,
착하게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말하고,
공생과 공존보다 독주와 독점의 이점과 장점을 과장되게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가르침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종교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종교와 종교인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조롱 섞인 말들이 회자되는 세상에서
스님께서는 ‘나의 종교는 민중’이라고 말씀하시고
‘민중이 나의 스승’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니 종교인 민중에게 헌신하지 않을 수 없고
스승인 민중의 아픔에 무심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면서도 스님께서는 다른 길을 가는 이웃종교와 높은 담을 쌓아두지 않았고
내 식구라 하여 잘못 가는 것을 눈감아주지도 않으셨습니다.
법보시法布施라 하여 행 없는 말로만 사람들을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았고,
몸으로 하는 행으로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좋은 마음을 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과도한 엄숙주의가 만연된 이 땅의 수행풍토와 무관하지 않게
스님의 잦은 눈물과 웃음을 헤프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파자소암婆子燒庵’에 얽힌 이야기 속 식은 마음의 수행자에게서 보는 것처럼
수행자의 청정행과 보살행이 어떻게 목석처럼 차갑고 단단한 마음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책을 읽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희망은 없다’라고도 하셨는데요.
말씀하실 때의 표정 속에 담긴 큰 걱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이 한 달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알아서 바른 길 찾아가는 이들이 많지 않은 데도 다 까닭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혜를 숙성시키기보다 손 빠른 지식을 수확하기 바빴고
속을 채우기보다 그럴듯한 외양을 만들어내는 데 정신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을 해주어야 하는 이들까지도 더러는 휩쓸려 사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의 정체를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채우는 바르고 빠른 길이 나누고 비우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스님의 온기와 향기 넘치는 법문에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그들의 생각과 말과 삶이 바뀌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에 들렀던 곰빠(불교사원)를 올해는 가지 못했고
올해 돌아본 마을을 다음해에는 갈 수 없게 될지라도
스님의 보살행에 참여하는 보살의 수 점차 늘어나고
해 가고 나이 들어도 설산을 가는 스님의 걸음걸음 깃털처럼 가볍기를 축원합니다.

바른 삶이 수행자들의 노후대책이라는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고국에 머무시는 추운 겨울 동안 날마다 청안하시고
스님의 법향이 온 나라에 가득하기 기원합니다.

바람 찬 날 거실을 채운 햇살 같은 스님을 생각하며
들돌 올립니다.

 

 

*이 글은 불교포커스(bulgyofocus.net)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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