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껍데기요 그림자일뿐
백거이, '기도광선사'
<불교포커스> 관풍재 | moyangsung@naver.com
寄韜光禪師기도광선사
도광 선사께 보내다
白居易
백거이
一山門作兩山門 일산문작양산문
兩寺原從一寺分 양사원종일사분
東澗水流西澗水 동간수류서간수
南山雲起北山雲 남산운기북산운
前台花發後台見 전대화발후대견
上界鐘聲下界聞 상계종성하계문
遙想吾師行道處 요상오사행도처
天香桂子落紛紛 천향계자낙분분
절집의 큰 문 하나 두 개가 되니
두 절집 원래는 하나에서 나뉘었네
동쪽에 있는 시내 서쪽 시내로 흘러가고
남산의 구름은 북산의 구름 일으키네
전대에서 꽃이 피면 후대에서 볼 수 있고
위쪽에서 종 울리면 아래쪽에서 들을 수 있네
오래 전 우리 스승 도 닦던 곳 생각하는데
향기 좋은 계수나무 꽃 어지러이 지네
천축사天竺寺와 중천축사中天竺寺의 관계를 읊은 작품이라고 전한다.
오대五代 오월吳越 때 창건된 절은 지금 남아있지 않고
하천축사와 중천축사의 옛 터가 항주杭州에 있다.
도광韜光은 촉蜀 출신으로 시를 잘 지었고,
백거이가 항주자사杭州刺史로 있을 때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교유하였다.
함련頷聯과 경련頸聯 네 구절은 모두 선사의 수행에 관해 읊은 것인데
동·서·남·북·전·후·상·하의 대비를 통해
상대적 틀에 갇힌 개념의 파괴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개념이고 우리의 앎은 개념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물이 동쪽 시내와 서쪽 시내로 나뉘고
구름이 남산의 구름과 북산이 구름으로 갈라지며
앞산에 피는 꽃과 뒷산에서 보는 눈이 달라지고
위쪽과 아래쪽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차이가 생겨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물은 물이고 구름은 구름이고 꽃은 꽃이며 종소리는 종소리일 뿐이다.
자연은 스스로를 나누지도 가르지도 않는다.
나누고 가르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하는 짓이고
사람만이 스스로 만든 개념의 틀에 갇혀버린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矣;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세상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해서 아름다운 줄 안다면 그것은 추한 것이고,
모두가 선하다고 해서 선한 줄 안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 아니다.
유有와 무無는 서로를 낳고,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은 서로 이루며,
길고 짧은 것은 서로 견주어지고, 높고 낮은 것은 기울어 보이게 하며,
말소리와 악기소리는 서로 어우러지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그래서 성인들은 지어내지 않는 일에 머무르며 말 없는 교화를 행하는 것이다.
- 《도덕경》제2장 첫머리에서(필자 졸역)
아름다운 것도 기호 따라 갈리게 되고
선하다는 것 역시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더 아름답다거나 훨씬 선하다는 평가도 마찬가지다.
단일한 개념이 실체를 나타내지 못한다고 해서
개념을 수식하는 또 다른 개념들을 덧붙여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1’보다 작은 숫자를 서로 곱한 결과가 ‘1’보다 큰 수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실체가 아닌 개념의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실체를 실체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실체라는 것조차 연기緣起의 소산으로 보는 불교적 관점에서라면
말이야말로 재론할 필요도 없는 껍데기요 그림자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