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국기도회. 사진 김경호 기자
전국사제단 부정선거 순교 각오 저항 천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이 4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며, 이를 위해 순교자의 자세로 저항할 각오를 천명했다.
지난 22일 전주교구 사제단이 시국미사를 열어 박 대통령 사퇴를 촉구한 지 12일만에 전국 사제단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사제단은 이 입장문에서 “개신교, 불교, 원불교에 이어 천도교까지 관권 부정선거를 고백하고 대통령의 책임있는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는데도 불통과 독선,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일관하는 공포정치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이 모든 것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남이 명예로운 일이다”고 주장했다.
사제단은“대통령은 원칙에 충실했던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몰아내며 수사를 방해했고, 국정원이 작성 유포한 수백만 건의 대선개입 댓글이 드러났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오히려 부정선거를 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종북몰이’의 먹잇감으로 삼았다”며 “전주교구 사제단 시국미사에 대해 이념의 굴레까지 뒤집어씌워 한국천주교회를 심히 모독하고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양심의 명령에 따른 사제들의 목소리를 빨갱이의 선동으로 몰고가는 작태는 뒤가 구린 권력마다 지겹도록 반복해온 위기대응 방식이었다.”고 비판했다.
사제단은 특히 “여기엔 신문과 방송의 악의적 부회뇌동도 한 몫 했는데, 분명 한국 언론사에 치욕스럽게 기록될 사건이다”고 지적했다.
사제단은 또 “권력에 저항할 때마다 역사는 교회에 무거운 대가를 요구해왔다. 피로 얼룩진 순교역사가 이를 단적으로 입증해준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저항은 우리 믿음의 맥박과 같은 것이다. 시련은 교회의 영혼을 정화하고 내적으로 단련시켜준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나라를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사제들에게는 그것이 기쁨이며 당위다”고 고백했다.
사제단은 “선거부정의 책임을 묻는 일이 설령 고난을 초래하더라도 우리는 이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사대의 불의를 목격하고도 침묵한다면 이는 사제의 직무유기요 자기부정이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문 ‘복음의 기쁨’이 누누히 강조하듯 교회의 사목은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일이다. 사제는 바로 그 일의 제물이다”고 밝혔다.
사제단은 끝으로 “유신독재의 비참한 결말은 모든 집권자에게 뼈아픈 교훈”이라고 대통령, 정부, 여당의 전면적인 회심을 촉구하며, “불의에 맞서는 일에서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교우들에게 오늘의 어두움을 이겨낼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사제단은 앞으로 교구별 릴레이 시국미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사제단의 한 사제는 “첫 시국미사는 크리스마스 직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