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이사람]
서울 서초동 정토회 정토법당에서 기도중인 정토회 간사 및 행자들. 사진 <한겨레> 자료
계절이 바뀌면 아침 예불에 입을 법복을 새로 꺼내어 다려둔다. 하도 입었던지라 이젠 얇아져서 힘껏 눌러 다리니 얇은 종이 같다. 무릎도 깁고 엉덩이도 깁고 허벅지도 기워 이제는 덧댄 천 무게에 옷이 미어질 지경이다.
2008년도엔가 부산 해운대정토회 법륜 스님의 법문을 준비하러 갔을 때 어머니가 와서 마련해준 법복이다. 법문 들으러 오신 어머니는 녹음 준비하고 있던 내게 살짝 손짓해 “이따가 시간 되면 잠깐 갈 데가 있다”고 했다. 법회를 마치자마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10분쯤 가서 내린 곳이 한복 가게였다.
“얘 입을 건데요, 법복 좀 맞춥시다.” 얼떨결에 치수를 재고 나왔다. 웬 법복이냐며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어머니는 말했다. “아부지 옷 하는데 니도 하나 해라”고 했다. 날이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한 번씩 전화를 하는 어머니였다. 결혼도 안 하고 남들처럼 살지 않는 딸이 늘 걸리는 어머니는 그럼에도 딸이 일하는 데 방해될까봐 얼른 가라며 곧장 버스정류장으로 나를 밀었다.
다음주 법복이 다 되었다고 해서 가보니 아뿔싸! 개량한복이었다. 절에서 살며 예불하고 기도하는 이들은 스님들이 입는 법복을 입는데, 어깨와 허리에 라인이 잡혀 예쁜 수가 놓인 하늘하늘한 외출용 개량한복이었다. 어머니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주인에게 말했다.
“어짜노. 내가 말을 안 했네. 죄송합니다. 얘가 절에 살거든예. 절에서 입는 걸로 해야 하는데, 아이구, 어짜꼬.”
가게를 나와서는 엄마는 말이 없었다. ‘절에 사는 스님들이 입는 법복’이란 말을 남에게 해야 하는 게 몹시 힘드셨을 것이다.
종이처럼 얇아진 그 법복을 빨고 다릴 때면 꼭 그때 생각이 난다. 두 번 지은 법복. 절에 사는 스님들이 입는 법복이다.
남들 같지 않은 삶을 사는 딸을 둔 어머니의 아픈 마음이 밴 법복이 늘 내게 묻는 것 같다. 잘 살고 있는가. 이 법복 입고
내일 아침에도 법당 내려가 기도할 생각 하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임혜진 정토회 출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