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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의 인면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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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평화·인권운동가 이치노헤 쇼코 운쇼사 주지
최대종파 ‘조동종’ 첨병 노릇 다룬
‘조선 침략 참회기’ 책 펴내고 방한
“한국 불교도 정부 논리 경계해야”

“일본 불교는 침략전쟁에 대해 참회할 자신감마저 잃어버렸다.”

일본의 평화운동가이자 아오모리현 운쇼사 주지인 이치노헤 쇼코(64·사진) 스님의 말이다. 22일 서울 장충동 장충단공원 내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장충단공원은 을미사변으로 희생된 충신을 기리는 공원이자 안중근의 총탄에 죽은 조선 침략의 선봉장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조동종의 사찰 박문사가 있던 신라호텔 앞이다. 1939년 안중근 의사의 차남 안준생이 박문사를 찾아 아버지의 죄를 눈물로 사죄했다는 바로 그곳이다.

이치노헤 스님은 안중근과 안준생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최근 <조선 침략참회기>(동국대출판부 펴냄)를 냈다. 일본 불교의 최대종파인 조동종이 일제 때 조선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밝혀낸 적나라한 고발서다.

이 책엔 1895년 명성황후 살해사건에 조동종 승려 다케다 한시가 깊이 관련된 사실과 조선 침략을 위한 청일전쟁·러일전쟁 때 조동종 승려들이 제국주의 일본의 첨병 구실을 하고, 한일 강제병합에 발맞춰 전 사원에서 병합 축하 법요를 봉행하는 등 조선인의 황민화 정책에 앞장선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가 일본 우익의 협박 속에서 이처럼 치부를 파헤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일제강점기 조동종의 절이었던 전북 군산의 동국사에 ‘일본 조동종의 참회문’을 담은 ‘참사문비’를 세우는 일을 주도했다.

인권·평화·환경운동에 앞장서는 단체 ‘촉광’의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92년 조동종이 당시의 잘못을 반성하는 참회문을 발표하고도 실제적인 참회 행보가 뒤따르지 못한 것을 보고, 일본의 양심을 깨우기 위한 좀더 과감한 활동들에 나서고 있다. “조동종에서 ‘좌선의 신’이라고까지 불린 사와키 고도는 러일전쟁 때 병사로서 참전한 뒤 ‘사람을 많이 죽인 것’을 자랑했다. 고승들은 국가의 깃발 아래서는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죄가 없다는 논리를 이끌어냈다.”

일본 불교의 국가 예속성을 꼬집은 이치노헤 스님은 “한국 불교도 남북의 분단이나 긴장 상황에서 정부의 말만을 되풀이하지 않고, 불교관에 따라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 조동종에는 사찰의 불상 아래 인쇄기를 놓고 전쟁반대 문건을 인쇄해 배포하다가 발각돼 처형당한 우치야마 구도 스님 같은 분들도 있었다”며 자신의 책을 통해 ‘진짜 불교인’으로 깨어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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