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는 하느님의 것이다!
배고픈 무리를 먹이신 빵의 기적(요한 6,1~15)
만물에는 존재하고 운용되는 법칙과 생성 변화 소멸의 질서가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과 질서를 원리로 삼는 궁리 행위를 ‘자연과학’이라 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자연의 법칙과 같은 관계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궁리 활용하는 것을 ‘사회과학’이라 하겠지요.
만약에 자연의 법칙을 벗어난 현상이 나타난다면 참 기묘한 일이고 혼란스럽겠지요. 가령 누군가 명령하니 물이 위로 흐른다. 사람이 날아다닌다. 맹물이 술이 된다. 맹인이 눈을 뜬다. 죽었던 것이 살아난다. 성모님이 나타난다... 그런 기이한 현상이 ‘기적’이지요. 기이할 奇(기), 자취 蹟(적)!
기적은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행위하는 신의 영역입니다. 신께서 자신의 의지를 인간에게 드러내거나 뜻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언어나 행위가 기적이라고 해석해야 하겠지요. 사람을 속일 목적으로 꾀부리는 현상은 마술, 요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모두 하느님의 법인 창조 질서에 대한 설명이고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언어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며 의지인 창조 질서는 피조물이 제 꼴을 갖추는 것인데 그런 상태가 '건강'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법칙으로 주어져 있다는 거죠. 정신이건 육신이건 사회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창조 법칙에 어긋난 상태라는 것이고 질병이건 사고건 결핍이건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이겠지요. 인과법칙이 과학이기 때문에 그것의 해결도 법칙에 따라 추구하겠지요. 치료제를 먹었다든가... 그런데 말 한마디로 고쳤다면 인과법칙이 아니니까 기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치유와 구마(악령추방), 그리고 질서의 초월현상(물 위를 걷는다. 맹물로 포도주 만든다. 빵의 먹인다)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세 유형의 기적 모두 육신과 건강, 사회적 결함으로 인한 고통을 창조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복구시키는 겁니다. 누구나 아프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건강하게 살고, 배고프지 않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하느님 창조의 뜻이라는 것을 믿으면 치유를 얻고 하느님의 법칙과 질서를 따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빵의 기적'이야기는 사회적 결핍의 문제도 개인의 육신과 정신의 건강 상태와 마찮가지로 법칙과 질서를 따를 때 빵 문제 경제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건데 왜 배고픈 사람이 생겼을까? 양식이 없죠. 왜? 소유 농토가 없단 말이지요. 왜? 부자들이 많은 땅을 차지해 버렸고 많은 소출을 내는 사람들이 곡식을 나누어 주지 않으니까요.
하느님은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단 한 평의 땅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여긴 내 땅이다’ 라는 소유권이 생겼을까요? 참 이상하지요? 국가가 법으로 보호해 주기 때문이지요. 그게 등기권리입니다. 소유권이란 국가라는 폭력으로 생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선물인 땅을 어떻게 사고팔자는 것입니까? 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다는 말인가요?"
-18세기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의 편지-
하느님이 만드신 땅 위에서 인간이 노동하여 일용할 양식을 생산합니다. 그러니까 땅의 소유주는 하느님이시지만 노동으로 땅을 활용하여 얻은 소출은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 소유인 것입니다.
*고흐 '감자캐는 두 여자 농부'
공동소유 중 인간의 몫은 일한 농부의 가족이 가져가고 나머지 일정량의 하느님 몫은 땅이 척박하여 소출을 못낸 사람, 노동할 수 없는 장애자, 몸이 아픈 사람,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전해져야 하는 겁니다. 이건 성경에 누누이 강조하는 하느님의 요구사항 이십니다.
*고흐 '땅을 파는 여자 농부'
그러니까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나 낮에 와서 일한 사람, 저녁때야 조금 일한 사람이 모두 한 데나리온을 받아가는 이유입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 손해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일한 몫을 제대로 받아갔으니까요. 이것이 하느님의 경제 법칙이고 질서로서 아주 공평한 겁니다.
“굶주린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의 몫을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더 데레사-”
땅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인간이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이 이러한 것이기에, 오늘 우리가 토지소유의 문제, 경제 정의와 분배의 문제에 침묵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거나 사이비 종교일 것입니다.
“빵을 한 덩어리도 버리지 말고 모두 모으라! 아직도 굶주리고 있는 다른 이들도 있다!”
어제 저녁. 단기입촌자들과 '기품있는 죽음'에 대해 나눴더니, 죽는 꿈을 꾸었다. 꿈이건 생시건 어쩔 수 없지. 하느님의 법이니까. (2013. 4.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