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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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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야할 때는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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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샘, 나의 하루

 


그대가 불행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대의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대의 존재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불면으로 잠 못 이루는 그대의 밤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불평과 원망이 마른 풀처럼 잠들었을 때
신발 끈을 매고 길 떠날 준비를 하라

 

생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을 여읜 순결한 사랑이
아침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지니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졸시,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고진하풀잎이슬.jpg

 

  여명이 동트기 시작하면 나의 하루도 동틉니다. 하루, ‘신비의 샘’인 하루. 나는 창문에 어리는 새벽빛을 응시하며 소망해봅니다. 하루가 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숱한 기억의 짐 말끔히 털고 하룻길 위로 휘파람 불며 걸어갈 수 있기를. 푸른 하늘로 가볍게 솟구치며 지저귀는 종달새처럼 해맑은 노래 앞세워 길 떠날 수 있기를.

  하지만 우리 앞에는 봄날의 오솔길처럼 호젓하고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뾰족한 돌부리가 발끝에 채이기 일쑤이고, 길은 온통 엉겅퀴와 가시덤불로 덮이고, 질퍽거리는 진흙 웅덩이가 앞길을 가로막기도 하지요. 그럴 때면 에움길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어느 길에도 장애물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행로를 높새바람과 거친 파도를 헤치며 가야 하는, 고해(苦海)라고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켈트족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시를 남기고 있습니다.

  “신이여, 나의 새로운 하루를 축복하소서. 전에는 결코 나에게 주지 않았던 하루를. 그것은 당신 자신의 존재를 축복하는 일과도 같습니다.”(존 오도나휴, <영혼의 동반자>)

  이 기도시를 깊이 음미해 보면, 그들은 아침에 눈 뜨는 것 자체를 신의 선물로 여깁니다. 하루를 신의 선물로 이해하며 시작하는 그들의 마음속에 나태와 오만함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고마움과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 푹푹 한숨 쉴 일이 있어도 그것을 기도의 심호흡으로 바꾸고, 지난날의 어리석음의 마음밭에 뿌릴 하늘 지혜의 씨앗을 갈망하겠지요. 이처럼 하루를 신성한 공간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하루는 창조가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공간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나날은, 우리 가슴이 원치 않는, 마지못해 무엇에 끌려가는 듯한 순간들로 점철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가 일하며 살아가는 공간은 새장으로 변하고 말지요. 새장에 갇힌 새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가련합니까. 자유로움과 자발성을 박탈당한 채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곧 새장에 갇힌 새의 신세에 다름 아니지요. 이 때 우리에게 신바람 나는 창조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생의 젊음과 에너지의 소진만 있을 뿐. 그리고 그렇게 흘려보내는 나날은 영혼의 탈진을 일으켜 우리 삶을 빈 쭉정이처럼 만들고 말겠지요.
  ‘아, 짜증나. 이건 아닌데. 이건 내가 바라던 생이 아닌데. 뭔가 다르게 살고 싶은데......’
  이런 불평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우리는 쉽사리 자기를 가둔 새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우리 삶의 현실은 더 팍팍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아시스 없는 사막처럼. 마음에 드는 직장을 얻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고, 기본적인 생계를 꾸려가는 일조차 힘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이런 일차원의 현실에만 묶여 있다면, 제우스에게 찍혀 여생 동안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던 그리스 신화 속의 시지프스 같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일차원적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좁은 새장에 갇힌 눈, ‘불행의 기억’에 사로잡힌 눈,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만 가득한’ 눈으로는 새로운 삶을 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창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이해하고, 무한한 가능성의 창을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과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어야겠지요. 저 빛 한 오라기 들지 않는 동굴에 사는 눈먼 생물들처럼 세상을 어둡게만 바라보는 우리의 부정적 시각을 바꿀 수 있어야겠지요. 세상이 어두운 것은 남의 탓만 하고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내 탓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아야겠지요. ‘그대의 밤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렇습니다. 내 존재가 ‘사랑의 그믐’이면 내가 몸담은 세상도 캄캄한 그믐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 속에 이런 어여쁜 자각이 동트면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도승 마이스터 엑카르트가 말한 것처럼 “안에 있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삶의 여정을 지속해 나갈 만한 에너지가 충일한지?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따스한 눈길을 나누며 사는지?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
  생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을 여읜 순결한 사랑이
  아침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고진하흑백.jpg

 

  바로 이 때, 다시 여로에 올라도 늦지 않습니다. 내면에 넉넉한 에너지가 비축되어 샘처럼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지나치게 타인과 경쟁하는 마음입니다. 경쟁, 곧 다투는 마음은 우리를 무서운 속도전으로 내몹니다. 너무 서두르거나 빨리 움직이면 우리는 삶의 안정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영적 성장은 멈추고 맙니다. 아프리카를 탐험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 남자는 정글을 지나 여정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짐꾼 서너 명이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토박이들이었지요. 그들은 사흘 동안 쉬지 않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이 토박이들은 털썩 주저앉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서둘러 줄 것을 설득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에게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말해 보라고 다그치자,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너무 빨리 달려왔습니다.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매우 자명합니다. 분주한 생활에 끄달리다 보면, 자기 영혼을 돌보는 일을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 우리는 모든 일을 잠시 내려놓고, 그 동안 무시했던 우리 자신과 다시 만나야 합니다. 생각과 몸 사이에 생긴 괴리를 무시하고 길을 나서면 실족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것은 ‘잊혀진 신비’와 다시 가까워지는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잊혀진 신비, 곧 우리 존재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만날 때, 우리는 길 나설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영혼의 스승 예수도 그렇게 하신 흔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무리와 함께 있다가도 홀연 무리를 빠져나와 홀로 산에 들어가곤 하셨지요. 그때 산은 당신이 하느님을 독대할 성소였겠지요. 그런 깊은 독대 속에서 한 방울 이슬에 새벽빛이 스미어 영롱하게 반짝이듯 자신의 숨결 속에 스미는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었겠지요. 하느님의 생생한 현존은 그분이 새로운 하루를 열어갈 생동하는 기운이었을 거구요.
  오늘 우리도 홀로 그분과 대면할 마음의 성소를 마련해야겠습니다. 마음의 성소에 고요히 똬리를 틀고 기도나 명상을 통해 생명의 원천이신 분과 만날 때, 우리는 야생의 짐승들처럼 근육에 힘을 얻어 활기찬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발걸음을 떼어 하룻길을 힘차게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을 몸에 두르고, 새처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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