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우리 모두 주지가 되자
2014.1.10 법인 스님
새해를 맞아 한적한 산중 암자에 푸르고 맑은 생기가 감돌고 있다. 일곱 청년이 한달 동안 단기출가 과정에 입문했기 때문이다. 청년 행자들은 한층 더 의미있는 삶을 탐구하고자 암자를 찾아들었다. 이들은 암자에 들어오는 순간 스마트폰과 지갑을 내려놓고, 세속의 편리하고 익숙한 생활방식을 기꺼이 끊었다. 몸소 밥을 지어 먹고 군불을 지피고 참선으로 잡다한 번뇌를 녹여 내고, 고전을 강독하면서 현대 문명을 읽고 인간의 길을 찾고 있다. 그 길은 지금과는 크게 ‘다른 길’이다.
이 암자를 세상의 벗들과 함께하고자 마음을 낸 것은, 산 좋고 바람 맑은 이 좋은 도량을 나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도 염치가 없다는 생각,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나누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산문에 들어온 지 적지 않은 세월, 그동안 세상에 대한 빚 때문에 마음이 한없이 불편한 날들이 많았다. 내가 이렇게 수행하고 마음의 복을 누리고 사는 것은 오로지 세상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 덕분이다. 그동안 나는 그 은혜를 받기만 하고 솔바람 소리와 고담준론에 한가로이 젖어 나 혼자 그것을 누리고 살았다.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만 앞서고 급할 뿐, 이른바 조직도 돈도 없으니 세상의 벗들에게 줄 것이 내게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겐 줄 것이 너무도 많았다. 주고 나누는 것이 어디 돈과 재물뿐이겠는가. 내게는 근심 걱정을 일시에 놓게 하는 수려한 산이 있고, 그 속에 정갈하고 아늑한 방들이 있다. 이곳에는 세속의 술과 타성에 젖은 습관을 멀리 떨쳐버리게 할 수 있는 청정 환경이 있고, 도심의 유명세가 붙은 커피숍에 비할 수 없는 지상 최고의 산중 다실도 있으니, 그곳에서 정답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산행은 또 어떤가. 숲길을 걷다 보면 몸이 살아나고 정신이 깨어나는 명상이 절로 된다. 또 더불어 책을 읽고 성찰과 성숙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자산이 있으니 나눌 것이 얼마나 많은가. 정녕 그렇다. 한 생각 크게 내고 몸이 부지런하면 나눌 것이 한없이 많은 곳이 절이다. 무재칠시라는 말이 있다. 큰돈 안 들이고도 얼마든지 나누며 행복할 수 있는 보시법이다. 환하고 따뜻한 얼굴로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은 돈이 들지 않는다. 그저 부담 없이 편히 쉬어 가라는 말 한마디와 향기로운 차 한잔에 무슨 큰돈이 들랴. 그러나 그것을 나누는 기쁨과 감동은 비할 데 없이 크다.
얼마 전 많은 방편으로 세상과 함께하는 산중 스님 한 분이 수능을 마친 학생들을 위한 템플스테이를 열었다. 스님은 행사를 마치고 나서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주지는 참 복이 많다. 줄 것이 너무 많아서 주지인가 보다. 차 주지, 재워 주지, 밥 주지, 법문해 주지. 감 따 주지, 운전해 주지, 구경시켜 주지….” 여기에 많은 지인들이 이렇게 댓글을 보냈다. “스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주기만 하면 우리는 뭘 주지? 댓글 달아 주지. 감사해 주지, 행복해 주지, 존경해 주지.” 나도 더불어 유쾌한 소통을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진정으로 마음을 다할 때 문명의 도구를 타고 공감과 감동은 이렇게 따듯한 기운으로 감응하는가 보다. 그날 댓글의 절정은 이렇다. “아이들 사랑하는 주지 스님 맘 죽여 주지.”
그럼 나는, 주는 주지에서 안 주는 주지도 해야겠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 절대 동의 못해 주지, 게으른 습관 절대 용납 안 해 주지.
거듭 그렇다. 정성이 지극하면 채우고 채워도 비좁지 않고,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