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을에 사는 이유
그리스도의 족보(마태1,1~17)
*새해를 맞은 산위의 마을 식구들.
산위의 마을에 이런저런 신앙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우리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요? 그리고 나를 아는 친지 친구들은 도 어떻게 생각할까요? 누군가가 산위의 마을에 사는 나에 대해 말하기를 ‘무소유의 삶이라구? 말이야 훌륭하지만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았다면 그런 곳에 왜 가서 살겠어!“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12년 전 공동체 마을 준비모임에 함께 했던 가정 중에 정말 가난한 이가 있었습니다. 대학도 다녔고 잘 나가는 직장을 다닌 적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사라졌는데도 허드레 일이나 노동은 하지 못하고 넥타이 백수로 살았습니다. 저는 공동체에 들어갈 때까지 자신을 실험하는 생활을 해보도록 충고했습니다. 파출부 일도 해보고,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수도, 막노동도 하고,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누굴 도와주는 일 못했으니 가난한 사람도 도움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가 고마운 것은 나의 충고를 잘 따랐습니다. 얼마 후 넥타이를 풀고 막노동판에 나가고 길거리 박물장수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두 부부가 발을 벗고 일을 하니 돈이 생기고 모아지고 아이들 학원도 보내고 아파트까지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윤택해지니 결국 마을에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거기까지입니다. 가난한 이를 도울 수 있는 심성도 있었다면 마을에도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걸 보면 경제문제, 자녀교육의 욕심, 건강문제 등으로 공동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소유의 삶’에 대한 진실성을 의심받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구원이란 늘 그렇다는 것입니다. 잘나가는 사업이나 고액의 연봉, 경제적 부요함, 그리고 실패와 좌절, 고달프면서도 무의미한 일상, 결혼의 파경, 건강 이상...
*눈 위의 발자국. 출처 : koreatourism.tistory.com
눈길을 걸어가면 발자국이 생깁니다. 궤적(軌跡)이라 하지요. 발자국이 우왕좌왕(右往左往) 찍혀 있다면 그는 뭔가를 찾아 헤매였거나 목적지가 없었던 사람이었을 것이고 발자국이 비틀비틀 찍혀있다면 술에 취한 사람의 귀가 길이었음을 알 것입니다. 어찌 그 궤적들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느님 축복의 대명사로 살아온 야곱이 노년에 파라오 앞에 서게 되어 고백한 말이 있습니다. “돌아다보면 살아온 날이 모두 고난의 날들 뿐이었습니다.”
순간 한 순간은 모두가 고난이었고 좌절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삶의 궤적들이 오늘의 나를 낳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문둥이라고 해도 어머니는 거룩한 분이시듯이 험준했던 내 삶의 역사는 고맙고도 거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족보가 그러하듯이 나의 족보 또한 그러합니다.
삶이란 자기가 걸어온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을 열고 태어납니다. 인생이란 매 순간의 인연이고 대응의 선택이지요. 굽이굽이 엮어지는 그 인연들 중에 하나의 매듭만 없었어도 나는 오늘 산위의 마을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입니다. 문제라면 지금 내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과 환경에 놓여있는가? 영적 정신적 육신적으로 얼마나 건강한 삶에 서 있는가? 일 뿐입니다.
많은 신앙인들 가운데는 ‘만사 신경 쓸 일 없이 신앙생활만 열심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합니다. 그 실현의 길은 너무도 단순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인도하심대로 살면 해결된다.’는 것임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해답을 알면서도 답안지에 쓰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대로 답안지에 썼다는 것. 나는 그 분의 인도하심에 따랐다는 것. 멋도 따지지 않고 용감하고도 무모하게 응답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을에 사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모른다면 공동생활의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불행합니다.
어떤 역사와 궤적의 아픔을 안고 살아왔건 우리는 지금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성사의 삶을 살고 있음이 너무나도 확연합니다. 하느님의 인도로 살아가는 오늘의 내 삶에 대한 자부심은 내가 더 이상 비틀거리거나 우왕좌왕 헤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있습니다.
목적지가 분명한 새로운 삶은 신명과 역동에 가득 차기 때문에 걸어서 천국까지 가는 발자국이 곧을 것입니다. *
날씨가 너무 추워요! (2013.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