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몸 풀어주고 흐트러진 마음 다잡고
[건강과 삶] 정강주 한국요가문화협회 회장
눈부시게 하얀 요가복이 하루를 재촉하는 붉은 저녁놀과 부드럽게 화합한다.
‘수리아 나마스카라’. 태양에 대한 인사이다. 모든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해님에 대한 경배이기에 차분하면서 정성스럽다. 표정엔 평화가 깃들어 있다. 오랜 시간 요가 수행한 결과이다. 결가부좌로 천지의 기운에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더니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동작이다. 두 손을 깍지 끼고, 머리를 감싸 삼각형을 만들어 땅에 밀착시킨다.
허공에 올라간 두 다리는 하늘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땅에 밀착시키는 머리의 위치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다르다. 직립 생활에서 오는 오장육부의 이상을 정상화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이번엔 물구나무선 채로 가부좌를 튼다. 그리고 몸을 좌우로 비튼다. 기역자 형상을 한 육체는 땅과 하늘의 중간에서 깊은 사유를 한다.
정강주(66) 한국요가문화협회 회장이 중학생 시절, 요가에 대해 눈을 뜨게 한 바로 그 동작이다.
정 회장은 어려서 매우 몸이 약했다. 부모님이 마흔을 넘겨 낳은 탓인지 기관지가 약했고, 수시로 경기를 하며 사경을 헤맸다. 심한 천식으로 3개월 휴학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침을 놓아 아들을 살렸다. 건강해지고 싶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선 육상과 기계체조도 했다. 경주 분황사에 갔다가 모전석탑에서 정무 스님이 요가 수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 스님은 돌탑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숨을 고르시더니 허공에서 결가부좌를 트는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평지에 앉아서 하기 힘든 동작인데, 그것을 물구나무선 채로 하다니….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던 정강주는 스님이 하던 요가를 눈여겨보았다. 돌탑 위에서 거꾸로 가부좌를 하곤 오랜 시간 명상에 빠진 스님의 형상은 오랫동안 어린 정강주의 의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 뒤 정강주는 불교의 무상(無常) 법문에 빠져들었다. ‘모든 것은 거침없이 계곡을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은 어는 한순간도 쉬지 않는다. 끊임없이 흘러갈 뿐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다.’ 그래서 어린 정강주는 출가를 결심했다.
“모든 것이 항상 하는 것이 없고 삶도 또한 그렇다는 말씀에 슬픔이 가슴 깊숙이 밀려들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출가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기더군요.” 그러나 출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자신 하나만을 기대하며 사는 어머니를 놓고 차마 출가를 할 수 없었다.
요가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정강주 한국요가문화협회 회장이 서울 북한산 진관사 경내에서 요가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결가부좌 자세는 요가의 상징
누구나 어디서나 할 수 있어
어려서 약했던 몸 살리려 시작
교사 길 포기하고 ‘요기’의 길로
‘눈요가’ 등 개발해 대중화 힘써
“요가는 종교 아닌 건강과 안녕”
고교 시절 불교를 공부하던 정강주는 원광 스님에게 화두를 받았다. 받은 화두는 ‘이 뭣고’였다. 그는 이 화두를 풀기 위해 용맹정진했다. 그러던 어느날 호흡 중에 몸이 없어지고 허공이 무너지는 현상을 느꼈다. 완전한 몰아(沒我)로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인식이 되지 않는 상태. 한참 후에 눈을 뜨니 자신의 몸은 그대로였다. 몰아 체험은 강렬했고, 출가는 못했지만 불교를 공부하고 싶었다. 동국대 불교관련 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자식이 출가할 것을 염려한 어머니의 반대로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그는 일본 요가를 한국에 소개한 정태혁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로부터 본격적으로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 교수는 일본에서 유학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요기(요가 고수)인 오키 마사히로 등에게 요가를 배웠다. 정 교수에게 요가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정강주는 대학 졸업 뒤 교사 되는 것을 포기하고 머나먼 요가의 여정을 시작했다. 머리를 깎고 속세를 떠나는 대신 평생 요가 길라잡이로 살 것을 결심한 것이다.
지난 15일, 서울 북한산 자락 진관사 경내에서 요가의 정수를 보여주던 정 회장은 마지막으로 한쪽 다리를 목 뒤로 넘기고 합장하는 요가를 보여준다. 가슴 앞에 모은 두 손과 목 뒤로 넘어간 한쪽 다리, 앞으로 쭉 뻗은 또다른 다리는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시간을 정지시킨다.
시간뿐 아니라 주변의 정적도 그의 합장에 빨려들어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비구니 사찰인 진관사 주지 스님도 오래전 정 회장에게 요가를 배운 제자.
인도의 오랜 전통을 지닌 심신수련법인 요가는 불교의 전파와 함께 한반도에 전해졌지만 소수의 승려만이 명맥을 유지했다. “불교를 만든 부처도 요가를 하며 수행을 했습니다. 불교 이전에 요가가 있었다는 증거이지요.”
정 회장이 가장 중시하는 요가 동작은 결가부좌(結跏趺坐) 자세. “결가부좌는 요가의 상징입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을 때의 자세입니다. 가(跏)는 발바닥, 부(趺)는 발등입니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윤회를 잠시 정지시키기 위해 두 다리를 꼬아 버리는 것입니다. 내 움직임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정신 수양을 하는 것이죠.”
위와 아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결가부좌 자세는 오랫동안 명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안정된 ‘피라미드’ 자세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요가를 소수의 수행에서 대중화된 수행으로 이끌어내는 데 노력해 왔다. 이른바 요가의 대중화이다.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요가를 끊임없이 제공했다. 요가와 단식을 결부시킨 요가단식원을 열었고, 어린이, 임산부, 운전자 등 각 계층에 맞는 다양한 요가를 개발해 보급했다. 특히 집중력 강화를 위해 소개한 ‘눈요가’는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최근에는 태교 요가와 고령화 시대에 맞는 실버 요가도 보급중이다.
“요가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특히 굳은 몸을 풀어주고, 몸과 마음의 중심을 찾아줍니다. 요가의 뜻은 마음의 작용을 없애는 것이죠. 마음을 조절해서 마음의 움직임을 억제하여 인간 본래의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가는 종교가 아니고, 정신적인 도구상자이자 육체적인 건강과 안녕입니다.”
정 회장은 눈을 지그시 감는다. 추운 겨울 계곡 바람이 평생을 소박하게 요가를 지켜온 정 회장을 비켜간다. 온기가 뿜어져 나온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