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보는 힘
[종교의 창] 오강남 교수의 아하!
어느 사람이 깜깜한 밤길을 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 벼랑에 떨어지게 되었다. 도중에 용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았다. 가지를 잡고 몇 시간을 버티어 보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죽었구나 하며 손을 놓았다. 그런데 떨어지고 보니 땅에서부터 겨우 6인치 정도밖에 안 되는 곳에 매달려 있었다. 미국의 종교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기에 겪었던 생고생이었다. 땅이 바로 자기 발밑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공연히 나뭇가지를 붙들고 몇 시간 죽을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바다에 끝이 있었다고 믿었다. 물론 멀리 가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멀리까지 항해하지 못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때 생긴 두려움, 그것으로 인한 행동의 제약이다. 바다에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의 궁극 목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봄으로 얻을 수 있는 자유 아닌가? 예수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했다. 붓다도 생로병사의 실상을 그대로 인지하고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네가지 진리를 터득함으로써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그의 기본 가르침이라 하였다.
우리 주위를 보라. 종교 때문에 삶을 아름답고 보람되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면에서 종교 때문에 쓸데없이 주눅이 든 삶, 삐뚤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그런가?
종교에 두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열린 종교요, 다른 하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닫힌 종교다. 물론 여기서 열린 종교냐 닫힌 종교냐를 말할 때, 어느 한 종교는 통째로 열린 종교요, 다른 한 종교는 모두 닫힌 종교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종교 전통 안에도 열린 종교의 태도를 권장하는 심층적 흐름이 있고, 그와 동시에 닫힌 종교의 태도를 주장하는 표층적 옹고집이 있다.
두 종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열린 종교, 혹은 심층 종교란 우리 스스로 사물의 본성을 깨달아 나가라고 북돋아 주는 종교요, 닫힌 종교 혹은 표층 종교는 그 종교 전통에서 말하는 것의 표피적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는 종교다. 우리가 열린 종교를 받들면 점점 더 높은 차원에서, 혹은 더 깊은 차원에서 사물을 보게 되므로 계속하여 싱싱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닫힌 종교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창백하고 찌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진 신앙이 이른바 무지몽매나 전도망상으로 인한 맹신, 광신, 미신 같은 것이 아닌가, 그 때문에 쓸데없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오강남‘종교너머, 아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