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사회] 별에서 온 그대
*SBS <별에서 온 그대>의 한 장면
줄여서들 “별그대”라고 한다. 전지현과 김수현의 나이 차이도 화제고, 그 안에 담긴 판타지도 관심거리다. 당연히 흥미로운 지점은 외계에서 온 꽃미남이 400년이나 이 땅에 살았고, 첫사랑에 마음이 울렁거려 결국 지구를 못 떠나고 말았다는 설정이다.
400년이라. 간단히 계산해 봐도 조선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중세와 근현대사가 관통하는 시간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늙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이 설혹 그만한 생명을 누린다고 가정해 봐도, 생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 고통스러운 고비고비를 넘어오면서 늙지 않을 자신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지난 대선 이후 지금까지 겨우 1년인데, 100년의 세월을 거쳐 온 환각에 사로잡힌다. 친일세력의 귀환과 냉전의 나팔소리. 군사쿠데타에 대한 은근슬쩍 미화와 새마을 운동의 복귀. 그리고 권력기관의 무소불위한 위세.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가 지난 100년 동안 치열하게 극복해온 망령들의 되살아남이 아닌 것이 없다. 이건 “좀비의 막장”이다.
“별에서 온 그대”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르는 자들로 말미암아 새해가 되었어도 여전히 우울하다. 사이버사령관을 지낸 이가 대선 불법개입의 혐의가 너무도 분명해지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처가 없고, 국가기밀을 찌라시 수준으로 만들어 놓고 태연하게 딴말하고 있는 여당의 중진은 무혐의 처리 되었다.
국정원 개혁은 대충 물건너가고 있는 중이고, 대선 결과의 불법성 논란은 조만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대충 잊혀지는 찰나다. 철도뿐만 아니라 의료와 교육까지도 민영화 정책의 중심에 밀어붙여지고 있는데도, 이상한 별에서 온 “그대들”은 아랑곳없이 이게 뭐 잘못된 거냐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생에 대한 관심이나 국가적 프로젝트에 대한 고뇌는 실종된 채 이전투구의 연속과 정략적 인신공격, 정략적 이합집산의 꾀만 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별에서 왔는지 저자들이 별에서 왔는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한겨레>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채현국 선생 같은 분은 그 자체로 새로운 우주다. 그 어떤 장력에도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궤도를 성실하게 도는 거대한 별이다. 그 빛남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속에 반짝이는 성좌(星座)가 된다.
대통령이 된 여자, 박근혜를 보면 “별에서 온 그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녀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김수현 같은 꽃미남과는 아니다. 도리어 지난 400년 동안 이 땅에서 길고 오랜 기득권을 쥐고 살아온 세력들의 음침한 그림자를 그녀의 모습에서 보게 된다면 과한 것일까? 게다가 그녀는 이 땅에 사는 이들과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외계에 가서야 비로소 대화가 되는 모양이다. 댓글까지 열심히 읽는다는데 그러면 뭐하는가?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날을 세워 보복하는 모양새가 분명한데 말이다.
드라마 <상속자>의 부제가 ‘왕관을 쓰고 싶은가? 그 무게를 견뎌라’인가로 기억하는데, 그녀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보다는 상속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만 같다. 받은 유산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그 유산이 날이 갈수록 반감을 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기 때문일까?
천년의 반을 살아왔어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면서 사랑하는 이를 찾아나서는 별에서 온 그대까지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디에서 왔든, 일단 이곳에 왔으면 여기서 쓰는 말, 여기서 통하는 감정, 여기서 매력적인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 그게 되려면 400년 뒤나 되려나? 드라마는 길어야 20회면 종방인데. 아, 계속 보고 있기에는 너무 긴 드라마다. 결국 막장까지 가야 끝나는 건가?
한종호 꽃자리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