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뭐길래?
2014년 01월 31일 박평일BPARK7@CO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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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는 일요일 아침에 함께 산행을 하실 수 있습니까?"
일요 산행모임에서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는 X 의 목소리였다.
"주말에 단체 산행을 가지 않습니까? 나는 감기 때문에 일주일 째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연휴라고 대원들이 이박 삼일 예정으로 바다로 떠났습니다. 저는 박 선생님과 단 둘이서 산책을 하며 인생 상담을 나누고 싶어서 혼자 남았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박선생님 집 근처 Hemlock Outlook 으로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이미 혼자서 작심을 해 놓은 듯 했다.
그러잖아도 감기로 인해 일 주째 집안에 틀어박혀 온몸에 좀이 날 지경인 터라 구미가 당겼다. "산책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내겠습니다. 그런데 인생 상담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나는 내 앞길도 잘 못 챙기는 바보입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몇 몇 번밖에 못 뵈었지만 자꾸 친형님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럽니다.”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들어보기는 하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X 의 신상에 대해서는 나는 알고 있는 사실이 별로 없다.
이름, 얼굴, 그리고 나이가 50대 후반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몇 해 전부터 주말이면 가끔씩 교포 산악 모임에 참석해 오고 있다.
참석 인원은 20명 내외로 대부분 나보다 나이도 젊고 산행 경험이
많은 산악인들이다. 연령이나 신체적으로 그들과 페이스를 맞춘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 뜻을 말했다. "나는 등산을 운동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산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말하고 등산 때마다 대열의 맨 후미에 처져 혼자서 걷다가 코스 중도쯤에서 포기를 하고 다른 멤버들이 하산할 때 합류해서 점심식사를 함께하곤 한다. 그야말로 완전 날라리 등산객이다.
그런 탓으로 대원중에 이름은커녕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채 몇 명이 채 되질 않는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X 다. 그는 처음 나를 만나는 순간, "박 선생님 아니십니까?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시지만
저는 선생님을 36년 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하며 나를 반겼다.
혹시 나의 지난 비행들을 낱낱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어 당황스러웠다. 도둑은 제발부터 저리는 법이기에.
나는 도덕적인 면에서 털어서 겨우 먼지가 날 정도의 도덕군자가 아니다.
걸어만 가도 구린내를 먼발치에서도 맡을 수 있는 죄인이 바로 나다.
"내가 평생 행동이나 생각으로 지은 죄를 모두 계산해 보아도 현행법상 겨우 3-4 년 감옥 형량밖에 되지 않는다."큰소리를 치며 기독교 원죄 론을 비판했던 칸트와는 거리가 아주 먼 죄인이다. 나 같은 죄인들을 위해서 원죄 론이 필요할 것이다.
X는 등산 때마다 나에게 남다른 관심과 배려를 보였다.
선두에서 산을 오르다가도 후미에 처져 있는 나를 찾아와 챙기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X에게 관심을 갖게 된 연유는 그가 나에게 보여준 개인적인 관심과 배려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평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로 그 사람의 사람됨을 평가한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물 한 컵을 대접하는 것이 사랑이다."는 나의 스승 예수로부터 오래 전에 배운 지혜다. 내 눈에 비친 X는 교포사회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챙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유별난 사람이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등산 중에 후미에 처진 사람들을 찾아가 자기 일처럼 챙기고, 식사 중 가끔 음식량이 부족할 경우에는 자기는 거르고 남에게 양보를 하곤 했다.
그 뿐만 아니다. 맥주도 늘 자비로 사서 공급하고, 돌아오는 길에 화장실
사용을 위해 맥도날드 에 들릴 때면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대원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돈을 모르는 바보인지, 아니면 돈이 너무 많은 바보인지. 암튼 나는 인간적으로 그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토요일 저녁 늦은 10경에 X 로부터 다시 확인 전화가 왔다.
"박 선생님, 내일 아침 날씨가 아주 춥답니다. 튼튼하게 무장하고 아침을 드시지 마시고 오십시오. 산책 전에 먹을 뜨끈뜨끈한 수프를 제가 준비하겠습니다."역시 내가 사람을 잘 보았구나. 오븐에서 막 꺼낸 군고구마처럼 가슴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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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 약속 시간 10분 전 쯤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담을 하려고 하는 걸까."은근히 걱정이 됐다.
솔직히 나도 한두 차례 스트레스 문제로 정신과 의사들을 찾아가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일이라곤 고작 환자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구나 하는 인상이 남아있다. 내 돈을 내고 노래방을 찾아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치료는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듣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10분 후에X가 옆에 비슷한 나이 또래 한 여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함께 산행을 하시는 분인데 기억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녀가 웃는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본래 여자는 보는 순간 잊어버리는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부인이 아주 좋아 하시겠네요."하며 그녀는 웃었다.
"저기 지붕이 있는 페빌리언 으로 갑시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보따리 하나를 꺼내 페빌리언 테이블 위에 풀어 놓았다.
그리고 냄비에 라면 두 개를 넣고 익숙한 솜씨로 끓이기 시작했다.
그는 김밥이 가득 든 플라스틱 콘테이너와 김치병을 꺼내놓으며 라면이 준비되기 전에 허기를 채우라고 권했다. 비록 짧은 산책코스지만 준비는 여전히 철저했다.
나 같은 한국산 토박이들은 뭐니 뭐니 해도 겨울철에는 따끈따끈한 국물에 김치가 최고다. 라면 냄새에 군침을 삼키며 깁 밥 몇 덩이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나 혼자라도 라면 두 개 정도는 단숨에 꿀꺽인데."라면 봉지가 너끈히 5-6개는 되어 보이는 데 세 명이서 라면 두 개만 끓인다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부족할 게 빤한데,
"추우실텐데 많이 드세요"
커피용 종이컵에 라면을 끝까지 채워 훌훌 마셨다.
아! 이 맛! 음식의 진미는 맛이 아니라, 분위기고 풍경이다.
영하 추위 숲 속에서의 라면 맛은 과히 仙境이요 仙맛이로다.
X 는 라면에 손도 대지 않고 캔 맥주만 훌쩍 훌쩍 마시고 있었다.
“혹시 라면을 싫어하기라도 하십니까?"
"아닙니다. 애들을 혼자서 키우면서 라면을 하도 많이 먹었던 추억 때문에
라면만 보면 진 절미가 납니다."
나에게 인생 상담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어슴푸레 짐작이 갔다.
"분명 가정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구나!"
3
백설로 덮인 숲은 하얗게 침묵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깊은 침묵을 범접할 용기를 감히 내지 못한 채
우리 세 사람은 한참을 묵묵히 걷고 있었다. 갑자기 이름 모를 산새
한 마리가 '까까 까까'하며 무거운 침묵을 깼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Mr. X,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도 숨기지 말고 솔직히 털어놓으십시오.
둘째는 오늘 대화로 비롯된 결과에 대한 책임은 X 가 혼자서 지겠다는 약속을 해주십시오.“
"물론 그래야지요. 내 가정문제를 두고 남과 상의를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나의 진심을 믿어 주십시오."목소리가 무척 심각하게 들렸다.
나의 뼈저린 경험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은 두 가지 직종이 있다.
하나는 결혼 뚜쟁이 역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문제 상담역이다.
이 두 가지 역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상식적인 방정식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실컷 잘 해야 수고에 대한 대가가 고작 고맙다는 인사 몇 마디고, 대부분의 경우 돌아오는 것은 석 섬이 넘은 뺨따귀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회사에 다닐 때 경험한 일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엘리트 사원으로 은행에 다니는 고등학교 L 선배와
먼 친척뻘 명문 여대 출신 여동생 사이에 뚜쟁이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신랑감은 전직 국회의원 아버지를 두고 있는 명문(?)가 출신이었고, 신부감은 재벌은 아니었지만 준 재벌급 기업가 집안 출신으로 둘은 이상적인 콤비처럼 보였다. 양 쪽 집안 모두가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놔달라고 애걸복걸하며 나에게 매달렸다. 일 년 가까운 교제 끝에 드디어 그들은 결혼으로 골인했다.
그 보상으로 나는 무교동 유명 양복점에서 양복 한 벌을 선사 받았다.
불행히도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그들은 이혼을 하고 갈라서고 말았다. 그 이혼에 대한 책임과 비난이 양측으로부터 나에게 융단 폭격으로 쏟아져 내렸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중매를 섰느냐?”는 등.......,
다른 한 경우는 부부관계 상담역이 비극으로 끝난 예다.
35년 가까이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던 Y라는 친구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부부였다. Y는 평소에 워낙 입이 무거운 친구라서 부부관계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다만 떠도는 주위 소문을 통해서 부부금실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항상 위태위태하다는 소식은 자주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Y가 갑자기 사무실로 나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로 지난 35년 이상을 꾹꾹 참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도저히 참고 견딜 수가 없어서 이혼을 결심했다며 괴로운 심정을
밝혔다. 그리고 그 동안 마음속에 꽁꽁 감추고 있었던 온갖 부부간의 비밀들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한 시간 이상을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내가 보기에는 그 책임이 부인보다는 오히려 남편인 당신에게 더 많은 것 같다. 지금 당신 마음속은 온통 분노로 가득 차있어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우선 사람이든 사물이든 마음 속애 작은 사랑부터 키워보아라. 사랑은 무한한 팽창의 에너지다. 그 작은 사랑이 점점 커져서 언젠가 당신 부인을 이해하고 껴안을 날이 올 것이다."하고 조언해 주었다.
그의 결심은 확고부동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정 그렇다면 아름답게 이혼해라."하며 나의 손은 씻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Y로부터 나에게 일체의 연락이 없다. 부인과 화해를 하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지인들로부터 들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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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는 지난 35년간의 부부생활을 한 마디로 '지옥 같았다'고 입을 열었다.
구구절절 한 편의 비극적인 대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와 함께 눈물을 적시며 서글프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며 분노하기도 했다.
부부간의 갈등, 불신, 질투, 시기, 비난, 증오, 미움..........
도대체 부부가 뭐 길래 이렇게들 아파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사랑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체면 때문에? 아니면 돈 때문에? 머리가 마구 헷갈렸다.
X는 "저도 이제 나이가 60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남은여생 동안 단 며칠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하며 자신의 긴 대하드라마를 끝냈다.
"박 선생님은 동양철학의 궁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믿고 있습니다만..."하고 물었다.
"글쎄요. 궁합을 믿고 말고 할께 있습니까. 다소 참고는 할 수 있겠지요.
서양에서도 별자리로 궁합을 보더군요. 요즘 표현으로 화학반응이라고 합디다.
화학반응이라는 것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순간순간 변해가는 생명체 같은 것입니다. 인간들의 육체는 수백억 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 세포들 중 가장 오래 사는 세포의 수명이 겨우 7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궁합이나 화학 반응은 크게 믿을만한 것이 못되지요."
"부부관계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하고 물었다.
"처가 다른 친구 남편들과 나를 비교할 때가 정말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마다 심하게 다투며 싸우곤 했었습니다."
"나도 당신의 심정에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부부는 있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기가 쉽지 않더군요. 남의 손에 있는 떡이 항상 더 커 보이는 법입니다. 가끔 주위 지인들 중에 우리 부부관계를 부러워하고 칭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둘이서 몇 몇 달만 함께 살아보고 다시 말하라고 진담 섞인 농담을 건네곤 합니다. 별 수가 없습니다. 본래 여자들은 질투 덩어리로, 남자들은 시기 덩어리로 태어나는 동물입니다. 인내하면서 잦은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
"자신이 갈망하고 있는 남녀간 사랑이 얼마나 지속될 것 같습니까? "
"글쎄요...."
"그런 남녀 간 사랑의 수명은 3일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3 일 지나면 부부관계를 지탱시켜주는 것은 상호에 대한 믿음과 신뢰지요.
실제로 사랑이 없이도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도, 상호 신뢰가 무너지면 이혼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
'혹시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까?"
"가톨릭 신도입니다. 요즈음은 잠시 쉬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신약 성경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을 부부관계의 금과옥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는 아무런 거짓이나 숨김이 없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로 쉼을 얻을 수 있는 편한 관계, 그것이 이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닐까요? "
X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내 경험으로는 이혼하는 것보다 어떻게 이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왕지사 헤어질 거라면 아름답게 헤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인들의 이혼 과정은 90% 이상이 서로 물고 뜯는 돈 싸움판입니다.
마치 미국인들은 돈 때문에 결혼을 하고 돈 때문에 이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X 처럼 사랑을 찾아 이혼을 고려하시는 경우 더욱 아름다운 이혼이 중요합니다. 사랑 안에서 서로 헤어지고 사랑 안에서 새로 만나십시오. 그 악마 같은 돈으로 서로 피 말리는 전쟁을 치루지 말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스트레스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미국 남성들이 일생에 겪는 고통 중 가장 큰 것이 이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존경했던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 Paul Getty 는 8차례 이혼을 했습니다.
그는 이혼을 할 때마다 여자들이 요구하는 액수의 두 배 이상을 위자료로 주었다고 합니다."
"나는 연말에16년간 가족처럼 기르던 개를 통해서 아주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개가 갑작스레 쓰러져 사경을 헤맸습니다.
새벽에 차에 태우고 가축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고 왔으나,
별 가망이 없이 몇 주째 누워만 있었습니다. 천수를 다한 거지요.
집안 분위기가 완전 초상난 집이었습니다.
케롤이 눈물을 찔찔 짜며 며칠 째 앓아 누워버릴 정도였으니까.
혼자서 산책 중에 이런 깨달음이 전 광석처럼 뇌리를 스치더군요.
‘개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슬퍼하지 말라.
지난 16년간 함께 나누었던 기쁨에 감사하라.‘
“이혼도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지난 과거가 억울하지 않지요."
3시경에 산행을 끝내고 근처 미국식당에 들려 맥주를 마시며 오후 5시까지 뒤풀이를 했다. 긴 대화의 결론은 물론 없었다.
"정답은 없다. 앞으로도 정답이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정답이 없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정답이다."
박평일
저는 1949년 생으로, 서울에 있는 경복고을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 했습니다. 미국에는 1977년에 이민와서 여러가지 사업을 하다가 20년전 부터 위싱톤 지역에서 부동산감정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