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8월 방한 ‘윤지충과 동료 123위’ 시복식 열듯
2014.02.09 한겨레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교황청 ‘바티칸 뉴스’ 보도
신해박해~병인박해 순교자 복자 칭호
대전 아시아청년대회 참석 가능성
천주교주교회의 “큰 은총” 환영
윤지충 바오로(1759~1791)는 전라도 진산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고종사촌 정약용(1762~1836)을 통해 천주학에 눈떴고, 1787년 인척인 이승훈 베드로한테서 세례를 받았다. 집안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교식으로 어머니 장례를 치렀다가 1791년 12월8일 이종사촌 권상연과 함께 참수됐다. 친척들이 아흐레 만에 두 사람의 주검을 거뒀는데 썩지 않았고 피가 방금 흘린 것처럼 선명했단다. 교우들이 손수건 몇장에 두 사람의 피를 적셨는데, 죽어가던 사람들이 손수건을 만지고 나은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교황청 <바티칸 뉴스>는 8일(현지시각) “교황 프란치스코가 시성성 장관을 통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을 결정하도록 허락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이 8월 대전에서 열리는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때 방한해 시복식을 주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천주교에서 시복은 뛰어난 덕행이나 순교로 존경을 받는 인물한테 ‘복자’ 칭호를 내리는 것이다. 복자는 성인 아래 단계로, 시복 뒤 5년이 지나면 성인으로 올라가는 시성 청원 준비를 할 수 있다. 이번에 시복되는 124명은 신해박해(1791)부터 병인박해(1866)까지, 조선 후기에 순교한 초창기 신자들이다.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 53위, 기해박해(1839) 전후 순교자 37위, 병인박해 순교자 20위,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 14위 차례다. 정약용의 형이자 정약전의 동생인 정약종도 시복 대상자다. 그는 형한테서 교리를 배웠고,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2권을 집필했다. 평신도 단체 ‘명도회’ 초대 회장으로 1801년 순교했다.
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17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인으론 처음으로 중국에 가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 베드로가 귀국해 정약종 등에게 세례한 일을 기점으로 한다. 230년을 맞은 역사에서 지금까지 시복시성된 인물로는 한국 최초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1821~1846) 신부를 비롯한 성인 103위가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해 시성식을 집전했다. 그 뒤 한국 천주교는 2001년부터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를 꾸려 84년 시성 때 빠진 순교자들의 시복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왔다. 2009년엔 125위의 시복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했다. 조선의 2대 신부 최양업의 시복도 이때 별도로 청원했다. 다만 최 신부는 순교가 아니라 사목 도중 과로사했기 때문에 좀더 엄밀한 심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의장 강우일 주교)는 9일 발표문을 내어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러한 염원이 시성 30주년이 된 올해 124위 시복 열매로 맺어지게 됐다”며 “하느님께서 한국 교회에 커다란 은총을 주셨다”고 환영했다. 서울대교구도 “우리 신앙 선조들이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신 것처럼 이번 시복 결정을 통해 우리나라가 사랑과 나눔과 희생이 흘러넘치는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는 환영 메시지를 내놨다.
시복식은 보통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 교황을 대리해 주재한다. 그러나 교황청 해외선교 매체인 <아시아뉴스>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아시아청년대회 개막에 맞춰 8월13일 방한해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인 8월15일에 시복식을 주재한다고 보도했다. 애초 천주교주교회의는 교황청에 9~10월을 시복식 시기로 건의했으나, 교황이 방한한다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아시아뉴스>는 교황청 소식통의 말을 따 “8월18일에 전적으로 북한을 위한 미사가 계획돼 있다. 이 미사는 북한에 평화와 통일을 직접 촉구할 것”이라며 교황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집전한다고 전했다. 교황청은 지난달 22일 교황이 방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방한 일정이 최종 확정됐는지는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