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엄격하고 약자엔 관대했던 간디
2014.2.11 조현의 통통통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인도 방문길에 델리의 마하트마 간디 화장터인 라지가트에 들렀다. 또 박 대통령이 만난 간디의 손녀딸 타라 간디 간디기념관장은 오는 6월 방한해달라는 한국 쪽 초청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어떤 간디를 만나고 싶은 것일까.
10여년 전 인도를 순례하는 동안 히말라야에서 델리, 뭄바이, 푸네 등까지 간디의 흔적들을 찾아 헤맨 적이 있다. 그러다 기념관이나 박물관들보다 간디를 생생히 만날 기회를 가졌다. 간디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인도 중부 세바그람 아슈람에서 5㎞ 정도 떨어진 파우나르의 강가엔 간디의 수제자 비노바 바베가 세운 아슈람(수도공동체)이 있다. 그곳엔 놀랍게도 세바그람 아슈람에서 간디와 함께 살았던 92살의 바우 판세 할아버지가 생존해 있었다. 그 나이에도 노동을 할 만큼 건강한 그는 간디를 생생히 기억했다. 간디는 부인과의 섹스나 음식을 철저하게 절제하는 금욕을 실천했기에 할아버지에게 ‘간디가 얼마나 엄한 사람이었는지’를 먼저 물었다.
“천만에요. 아주 부드러웠어요.”
바우 할아버지는 “인간에 대해 그렇게 인정이 흘러넘치고, 그만큼 인자한 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그가 직접 함께 살며 오래 지켜본 간디는 ‘지극히 인자한 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인자함이 범인의 것과 달랐다. 그것은 피아를 구분해 자기 쪽만을 편애하는 자기애적 인자함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에 대해 서릿발처럼 철저했던 반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와 다른 곳에 서 있는 이들, 특히 약자에게 인자하고 관대했다. 인도 독립을 앞두고 힌두교와 무슬림의 갈등이 극에 이를 때도, 하나의 인도를 원했던 그는 자신이 속한, 다수파인 힌두교인들보다는 오히려 소수파인 무슬림들을 배려했기에 힌두교인들의 분노를 샀다. 그가 가슴에 세 발의 총을 맞고 숨질 때 군중은 “무슬림 놈이 죽였다”고 외쳐 다시 적개심에 불을 지르려 혈안이 되었지만 간디를 죽인 것은 무슬림이 아니라 극우 힌두교도인 나투람 고드세였다.
인도는 다수 힌두와 소수 무슬림, 오랜 식민지배 경험으로 인한 친제국주의와 독립운동세력, 카스트계급 간 갈등으로 인해 누구든 불을 지르면 타오를 적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간디에게 바꿔야 할 것은 늘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당시 세바그람에 사는 639명 대부분이 ‘불가촉천민’(힌두교 카스트시스템에서도 제외된 천민)이었는데 그는 불가촉민을 ‘하리잔’(신의 자녀)으로 부르며 <하리잔>이란 신문을 발간하고, 마을 우물물도 사용하지 못했던 하리잔들에게 아슈람 우물물을 개방하고, 아슈람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하리잔 여자아이를 양녀로 들였다. 그는 당시엔 하리잔만이 했던 화장실 청소를 해 다른 카스트의 분노와 반발을 사기도 했다.
간디의 목표는 내 쪽만의 천국이 아니었기에 종교, 민족, 신념으로 야기될 독선을 초월하기 위한 욕망의 절제와 기도의 삶으로 이어졌다. 세바그람에 머물 때 새벽마다 본 간디식 기도가 인상적이었다. 기도는 ‘자기 정당화’가 아니라 ‘자기 부정’의 주문이 늘 대미를 장식했다. “네티 네티(이것은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