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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네 신부의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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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와 농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최민석 신부의 Spring Tree]   editor@catholicnews.co.kr


사제들 끼리 모이는 작은 모임이 하나 있습니다. ‘비안네 형제회’입니다. 아르스의 성자로 알려진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이름으로 하는 모임입니다. 원로신부로부터 사제생활 10년차까지 8명의 사제들의 모입니다. 함께 모여 사목의 나눔과 친교를 그 목적으로 합니다. 형제들 간의 만남이 빈번해지는 것을 보니 나눔으로 서로에게 생명을 주는 것 같습니다.


비안네 신부는 어려서부터 신부가 되기를 소원한 사람입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불란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을 할 적에 워낙 학습 성적이 나빠서 ‘열등생’이라는 낙인이 찍힌 바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첫 번째 시험을 치렀을 때에, 비안네는 질문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따라서 대답도 못합니다. 동무들은 곧 비웃습니다. 당시 신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라틴말로 주고받는 수업이었습니다. 불행히도 비안네는 라틴어를 따라 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라틴말 수업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교수들은 그를 ‘열등생’으로 낙인찍었습니다.


성자와농부.jpg   
ⓒ박홍기


며칠 지난 다음에 영적지도를 맡은 신부님으로부터 학교를 그만두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도저히 학교에서 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영적지도를 맡은 신부님의 말씀에 순명하고 학교를 떠납니다. 그는 아마 그 때 가장 깊은 슬픔의 수렁에 빠졌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다시는 사제가 될 수 없다고 믿었으니까요. 에퀼리에 돌아와서 그는 발레 신부님의 품안에서 울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스승이자 신부였던 발레는 불덩어리 가슴을 묻고 있는 이 청년을 포기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비안네를 사제직에 들어서게 됩니다.


스승 밑에서 보좌신부로 잠시 수업을 계속하다가 발레 신부의 임종을 본 다음, 비안네는 아르스라는 인구 삼백 미만의 작은 마을로 첫 소임을 맡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본당신부로 41년 5개월 살다가 종신(終身)을 하게 됩니다. 소임 첫날부터 비안네는 언짢은 일이 생깁니다. 성당이 너무 크고 우아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르스의 새 본당신부는 그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빨리 철저하게 현실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비안네는 거의 모든 가구를 없애기 시작합니다. 비단으로 싼 의자들, 팔걸이의자, 식탁, 두 개의 침실, 이불, 메트리스. 아르스성의 여주인한테서 빌린 것은 성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비안네 자신은 발레 신부가 유산으로 남겨준 나무 침대와 서적들과 몇 벌의 누더기 밖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소박한 침대, 두 개의 낡은 테이블, 옷장 두 개, 몇 개의 짚으로 엮은 의자, 그리고 몇 개의 작은 가정용품, 그것뿐이었습니다.


신임 본당신부를 맞이한 얼마 뒤에 아르스 마을의 20년 이장(里長) 안토니오 망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성당을 가졌지만 거룩한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의 강론은 잠자는 이들을 깨우는 웅장한 나팔소리 같았습니다. 학자풍 냄새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 유행하는 스타일을 무시함, 말을 되풀이하는 습관, 피곤을 모르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자세와 같은 그 모든 것이 영혼들 깊숙이 울려 퍼집니다. 악마까지도 그것을 잘 이해했습니다. 한번은 마귀에 들린 여자 한 사람이 외치면서 비안네 신부에게 대들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간단하게 강론하는가? 사람들이 너를 무식한 놈으로 생각할 텐데, 너는 왜 도시에서 하는 대로 화려한 스타일로 강론하지 않느냐? 아! 나는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살고 싶은 대로 또한 행동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그 고상한 강론들은 얼마나 좋아하는데”


비안네는 언제나 탐욕을 경계합니다. 순간의 쾌락에 영원한 생명을 팔아먹는 장자(長子)의 어리석음, 그것들이 소용돌이치는 거품기계처럼 일구어내는 전쟁, 살육, 증오의 먼지구름, 말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외치면서 뻔뻔스럽게도 비단 옷자락 길게 끌며 온갖 특권에 파묻혀 구역질나는 오물을 토해내는 성직자들의 탐욕에 대신 보속합니다.


우주를 지탱하는 것은 ‘균형’입니다. 이 지구만 해도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으로 이렇게 지탱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도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살만 디룩디룩 찌고 뼈 속은 텅 비었다면, 말은 번드레하면서 생활이 엉망인 사람이 그런 사람인데, 얼마 못 가서 썩을 것입니다.


비안네 성인이 가난하게 산 것은 가난한 사람과 같아져서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비안네가 언제나 육신의 탐욕을 경계하는 것은 탐욕과 위선과 풍요라는 허깨비에 기울어져 버린 당대의 세상의 불균형에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하느님이 내리신 무거운 저울추가 ‘가난’이었을 것입니다. 비안네는 혼자 그렇게 살았지만 ‘홀로의 몸’으로 산 게 아닙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사회적 운동이었고 세상을 지탱시켜주는 ‘균형의 저울추’였습니다.


가난이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네 이웃이, 그게 바로 네 몸이니 사랑한다, 아낀다, 돌본다, 뭐 어쩐다, 그런 생각조차 없이 그냥, 움직여지는 대로 움직이고, 멈추어지는 대로 멈추고 네 몸을 내 몸으로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 ‘비안네 신부의 가난’을 생각합니다. 나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맡기되 온전히 맡기고, 그 가운데 어느 부분이라도 도로 가져가지 말 일입니다. 도로 가져가서 움켜잡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는 본디 주님의 몸이고 내 이웃도 주님의 몸이니, 내가 온전하게 주님께 맡기기만 하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하나 되어 이웃을 그냥 사랑하게 된다고, 사랑 말고는 달리 무슨 할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어스름한 산책길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제 또래 농부를 만났습니다. 말없이 목례하고 지나치는데, 갑자기 성자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고단한 일터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 그가 성자입니다. 세상이 아직 이렇게 망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구석구석에 숨은 비안네 같은 성자들이 살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의인 열 사람이 살아 있어서, 그래서 세상이 남아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모두가 저를 살아 있게 하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최민석 신부 (첼레스티노)
광주대교구 현애원 담당사제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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