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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이어 온 퇴계 건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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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몸을 살린다…500년 이어온 퇴계 건강법


퇴계1.jpg

70살까지 장수하고 앉아서 숨을 거둔 유학자 퇴계 이황은 평생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노력했다.

그가 정리한 <활인심방>을 15대 직계 자손인 이동경씨가 보여주고 있다.
 

[건강과 삶] 퇴계 15대손 이동경의 활인심방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의 삶은 굴곡이 심했다. 태어난 지 일곱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어머니 박씨는 여덟 남매를 혼자서 농사와 양잠으로 키웠다. 형이 여섯, 누나가 하나인 막내 이황은 20살에 결혼했으나 부인과 사별했고, 30살에 재혼했다. 아들을 셋 낳았으나, 둘째 아들은 일찍 죽었다. 집안이 어려워 아들을 의령 처가에 일꾼으로 보내기도 했다. 재혼한 부인도 어릴 적에 집안이 사화를 겪으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정상이 아니었다. 퇴계 선생이 45살 때는 재혼한 부인과도 사별했다.
벼슬길도 수십차례 오르내리며 정신적인 부담이 컸다. 을사사화로 탄핵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퇴계 선생은 70살까지 장수했다. 당시 평균 수명이 30살 정도임을 고려하면 백수를 누린 것이다. 큰 질병 없이 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앉아서 죽음을 맞이한 퇴계의 건강은 저절로 온 것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노력을 했다.
 
23살의 청년 이황은 중국에서 온 <활인심>(活人心)이라는 책을 접한다. 20살 때부터 주역에 심취해 공부에 몰두하던 이황은 당시 건강이 매우 안 좋았다. <활인심>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열일곱째 아들인 주권이 의학과 선도(仙道)의 핵심 내용을 모아 상·하권으로 만든 양생서였다. 도가에 심취했던 주권은 실제 삶도 도인처럼 살았고, 일반인들에게 건강에 관한 지침서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황은 이 책을 번역하고 거기에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덧붙여 건강과 장수의 비법이 담긴 <활인심방>(活人心方)으로 재탄생시켰다. 자세한 방법을 설명하고, 동작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 남겼다. 그리고 평생 그 건강법을 실천했다.


이후 500년 동안 이 책은 집안 대대로 물려지며 후손들의 건강을 지켜왔다. 이동경(67)씨는 퇴계 선생의 15대 직계 후손이다. 대학에서 윤리학을 전공하고, 초등학교에서 도덕 과목을 가르친 이씨는 교감 7년, 장학사 4년, 교장 6년의 생활을 마치고 2010년부터 안동 도산서원의 선비문화수련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활인심방을 가르치고 있다.


이씨는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이정호·1898년생)가 아침저녁으로 방에서 하시던 몸짓을 어릴 때부터 보며 컸고, 자신도 10살 때부터 따라했다고 한다.


그 동작은 조용했고, 경건했다. 할아버지는 어두운 사랑방에서 웃통을 벗고 조금씩 움직이셨다. 먼저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눈을 감고, 허리를 똑바로 편 채, 혀를 말아 입천장에 살짝 대고,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천천히 내쉰다. 정좌(靜坐)를 통해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우주의 기를 끌어들이는 단계다.


퇴계페이지1.jpg 


명나라 ‘활인심’ 토대로
퇴계가 덧붙여 만든 건강지침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와
30가지 마음자세 섞은 중화탕,
참을 ‘인’자로 만든 환약 삼킨 뒤
도인법 펼치니 오장육부가 튼튼


동시에 중화탕(中和湯)을 제조해 삼켰다. 중화탕은 약재가 독특했다. 30가지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잘 섞어 가루로 만든 다음, 심화(心火·마음) 1근으로 은근한 불에 달인다. 물론 마음속으로 조제하는 것이다. 30가지 약재를 보면 사무사(思無邪·마음에 거짓을 없앨 것), 행호사(行好事·좋은 일을 행할 것), 막기심(莫欺心·마음에 속임이 없을 것), 수본분(守本分·자신의 직분에 맞게 할 것), 막질투(莫嫉妬·시기하고 샘내지 말 것), 제교사(除狡詐·간사하고 교활하지 말 것), 순천도(順天道·하늘의 이치에 따를 것), 지명한(知命限·타고난 수명의 한계를 알 것), 청심(淸心·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할 것) 등이다.


그리고 화기환(和氣丸)도 한 알 삼켰다. 화기환은 참을 인(忍) 자로 만든 환약으로 입을 다물고 침으로 녹여 천천히 씹어 삼켰다.
두 종류의 환약을 먹은 뒤에는 치심(治心) 단계다. 욕심을 없애고 마음을 고요히 하면 앞일도 내다볼 수 있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일을 살필 수 있다고 퇴계 선생은 이야기했다. 마음은 물과 같아서 흔들리지 않으면 자연히 맑아져 그 밑바닥까지 환히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천천히 건강체조(도인법)를 했다. 먼저 눈이다. 양 손바닥을 비벼 열을 낸 뒤에, 두 눈을 지그시 눌러 시신경의 피로를 풀어준다. 눈알을 좌우, 상하로 굴려 시력의 노화를 방지한다. 콧날을 살살 문지른 다음, 힘주어 주무르고, 코를 힘껏 잡아 비튼다. 이렇게 하면 콧속이 시원해지고, 가슴도 후련해짐을 느낄 수 있다. 코는 폐로 통하는 창문이다. 양손으로 귓불을 잡아당기고, 손가락을 귓속에 넣어 부드럽게 자극한다. 귀가 화끈거리면 허리도 따뜻함을 느낀다. 그러곤 책상다리로 앉아서 8가지 체조(좌식 팔단금)를 했다.


우선 이를 36번 부딪친 뒤, 귀 뒤쪽 튀어나온 뼈를 집게손가락을 가운뎃손가락에 겹쳤다가 미끄러뜨리며 24회 튕겨준다.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 안쪽에 있는 천주혈을 잡고, 고개는 왼쪽 방향으로 돌리고 오른팔과 어깨를 24회 흔든다. 혀를 골고루 휘저어 이의 구석구석을 닦아내듯 36번 돌리고, 생긴 침을 세 번에 나누어 삼킨다. 두 손을 돌려 허리 뒤의 신장 부위를 서른여섯 번 문질러준다. 손을 모아 앞가슴의 심장 주변을 마찰한다.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한 손을 주먹 쥐어 허리 뒤에 대고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36번 회전한다. 두 손을 주먹 쥐어 허리 뒤에 대고 어깨를 36번 회전시키고 단전으로부터 기가 척추를 거쳐 머리에 오르게 한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셔 잠시 멈춘 후 내보내고 두 다리를 쭉 뻗는다. 두 손을 깍지끼고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여 밀어올린다. 두 다리를 뻗치고 두 손으로 발바닥 중심부를 감싸듯이 잡고 숨을 들여마시면서 발을 잡아당기며 머리와 가슴을 앞으로 굽힌다. 스트레칭이다. 허리를 펴면서 숨을 내쉰다. 이 동작을 13번 한다. 다리를 굽혀 모으고 단정히 앉는다. 끝으로 입을 다문 채 혀를 저어 침을 만든 뒤 세 번에 나누어 천천히 삼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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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은 소리를 내어 오장육부를 건강케 하는 수련법과 지황, 녹각, 마 등으로 만드는 보양음식 8가지도 활인심방에 소개해 놓았다.
퇴계 선생의 건강에 대한 일화는 많다. 퇴계 선생이 57살 되던 1558년 동짓달 29일, 그는 청량산 사찰에서 명상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지 3일이 되어도 나오지 않자, 동자승들이 궁금해서 문풍지에 손가락을 뚫어 보려다가 ‘와장창’ 문이 망가지며 방안으로 넘어졌다. 그러나 퇴계 선생은 전혀 미동도 없이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계속했다고 한다. 퇴계 선생은 69살 생신을 한달 보름 넘기곤, 큰집 제사에 갔다 와 배탈이 나 한달 동안 누웠다. 그리고 숨을 거두기 직전 가족들을 불러 “나를 앉혀 달라”고 부탁한 뒤 편한 표정으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이씨는 건강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퇴계 선생은 성인(聖人)은 병들기 전에 다스리고 의원은 병이 난 후에 고치는 것이나, 병의 근원은 하나이니 모두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도(道)의 근본도 되고 화(禍)의 원인도 됩니다.”


안동/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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