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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이여 망설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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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JPG

강우일 주교.  사진 강재훈 기자



[토요판] 커버스토리

“정치·사회 참여는 역대 교황들 가르침”

강우일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에게 듣다

강우일 주교는 1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 전에 쓰인 성서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성직자의 본분이라고 밝혔다. 특히 강 주교는 지난 16일 선종 5주기를 맞은 고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리며 “김 추기경께서 살아 있었다면 거짓에 대한 질타를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1977년부터 1998년까지 21년 동안 김 추기경 곁을 지켰다.

제주/취재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68) 주교(제주교구장)가 사제의 정치·사회 참여에 대해 “(가톨릭)교회나 성직자는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강 주교의 이런 발언으로 천주교 시국미사와 관련한 사회참여 논란은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는 한국 천주교 최고의결기구다.

강우일 주교는 지난 19일 오전 제주시 관덕로에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청에서 <한겨레>와 만나 “성직자의 정치참여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이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마땅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강 주교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불거질 때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 이를 위해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활동도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 역대 교황의 일관된 가르침이었다”고 전했다.

강 주교가 지난해부터 시국미사를 주도하고 있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정의평화위원회 등에 힘을 실어주면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천주교 시국미사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에서는 지난 10일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17일에는 원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이 박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며 시국미사를 열었다. 24일에는 부산교구 사제단이 역시 시국미사를 통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할 예정이다.

강 주교는 2002년 10월 제주교구 교구장에 임명됐고, 2008년 10월부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가엾이 여기자

-1985년 주교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주교의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주교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건 교구 사제나 신자와 만나 복음을 선포하는 겁니다. 행정적인 일에 시간을 뺏길 때도 있지만, 각 본당 및 성당을 매주 방문해 미사를 드리고 교우들과 식사도 하면서 사목 현황을 살피는 사목방문에 시간을 많이 쓰려고 합니다. 한 교구의 사목 전반, 세속의 표현을 빌리면 입법·사법·행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주교가 갖기 때문에 책임은 무거운 반면, 정해진 임기가 없어서 부담스럽습니다. 빨리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웃음)”

-바쁜 일정 속에서도 각종 신문을 꼼꼼히 챙겨 보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왜 그리 관심이 많으십니까?

“주교나 사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복음, 곧 성서에 쓰인 하느님 말씀은 벌써 2000년 전에 하셨던 겁니다. 그 시대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그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연구하는 한편, 그 말씀을 지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 성직자의 본분입니다.”

-신문을 펼치면 대개 좋은 소식보다 우울한 일,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더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왜 이런 것입니까?

“그렇지요. 저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답답하지요. 가슴 아플 때도, 울분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예수님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 했던 그 시대를 떠올려보곤 합니다. 예수님이 살던 세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배운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서민들은 정말 암담했던 거죠. 바로 그때 예수님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편에 서서, 좌절하지 말고 하느님의 나라를 일으켜 세우자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저도 오늘의 세상만 보면 크게 희망이 보이지 않고 우리 사회가 자꾸만 뒷걸음치는 것 같아 걱정과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여전히 정의에 굶주린 사람이 많고, 불의에 맞서기 위해 자기 온몸을 불사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속에서 하느님은 여전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사랑과 열정,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억하라 연대하라>라는 제목의 책을 내셨지요. ‘연대’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의 죄인이나, 종교생활마저 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던 이들을 모아 제자단을 꾸리신 뒤, 어디론가 그들을 보낼 때 항상 두 사람씩 파견하셨습니다. 힘없는 이들이 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 연대하는 것밖에 없지요. 비록 힘이 미약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라도 정의에 목말라 연대하면, 악의 권력이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맞설 수 있다고 봅니다. 잘못된 권력과 제도, 구조에는 혼자 맞선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기둥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것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힘없는 사람들, 정의롭지 못한 권력으로부터 탄압받는 사람들은 지금 제대로 연대하고 있습니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누구나 힘있는 사람의 편에 서고 싶어하지요.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어디에 서야 편하게 살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잘 압니다. 정작 힘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힘을 모아야 하는지도 모를 때가 많지요. 복음에도 예수님은 항상 힘이 없어서 고통받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힘없는 우리에게도 서로가 서로를 가엾이 여기고, 상대방의 고통을 내 것처럼 받아들이는 마음이 작동할 수만 있다면 굉장한 힘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도 로마제국 치하에서 

버림받은 이들 편에 섰다 

역대 교황도 교회가 사회문제 

바로잡기 위해 정치참여를 

망설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김수환 추기경님 계셨다면 

인간을 존중하고 연민하며 

거짓을 질타하지 않을까 싶다 

김용판 재판처럼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일 너무 많다 

교회의 세속화 경계해야

강우일 주교는 1974년 12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1977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었던 김 추기경의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서울대교구 교육국장, 홍보국장 등을 지내며 그의 곁을 꼬박 21년간 지켰다.

-지난 16일은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5주기였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항상 그들 곁에서 함께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김 추기경님이 만약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면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을까요?

“김 추기경님이 강조하셨던 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똑같은 인간으로 대하고 그에 대한 연민과 경외심을 강조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거짓에 대한 질타를 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살아 계실 때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정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과정이야 어쨌든 성공하면 된다, 이기면 된다, 이런 사고가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때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뭐가 진실인지 좀체 규명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드러나야 할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넘어간 대표적 사례는 어떤 건가요?

“최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재판이 있었지요. 같은 경찰 내부에서조차 그분의 처신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는데,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판결문에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는 듯한 표현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모든 국가기관 가운데서도 가장 신뢰받아야 할 사법부마저 판결문을 통해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은 김용판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청장은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 내용을 축소·은폐해 발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기소된 인물이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도움을 주려고 허위 수사결과를, 대선을 사흘 앞둔 시점에 발표했다는 것이 그의 주된 혐의 내용이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수사 결과) 발표 시기와 내용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김 전 청장에 대해서는 ‘대선에 개입할 의사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강 주교님께서는 평소 가톨릭교회의 세속화를 경계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제구실을 해왔다고 보시는지, 또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선 후기 많은 사람의 순교를 바탕으로 뿌리를 내린 한국 가톨릭교회는 1990년대 이후 급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신자도 500만명을 넘겼고, 교구가 늘어났으며 성당도 수없이 들어섰습니다. 외형적으로 덩치가 커졌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무거워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오늘의 한국 사회 속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지금 이 시대에 주님의 제자로 살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물음에 대해 매일매일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게을리한다면, 교회는 스스로 세속화의 길을 걷거나 세속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했던 한때의 역사적 과오를 다시 되풀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천주교 사제의 사회참여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발단은 11월22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한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의 시국미사였습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홍원 국무총리 등은 박 신부를 겨냥한 비판 발언을 쏟아냈는데, 강 주교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박창신 신부님의 말씀이 대중강연에서 나왔다면 몰라도, 일단 종교행사인 미사 때 하신 말씀이라는 점에서 달리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이 자신들이 볼 때 다소 지나치더라도 좀 대범하게 받아들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박 신부님이 과거 어떤 삶을 살아온 분인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그렇게까지 곧바로 단호한 발언을 내놓지는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할 때 앞뒤 맥락과 전체 취지와 의도를 살펴야 합니다. 문제가 될 법한 어느 한 문장이나 단어만 꼭 집어서 그 문제를 극대화한다면 그건 옳은 태도라 할 수 없지요. 사회 지도층에 있는 분이라면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죄하기 전에 좀 여유를 갖고 그 배경과 맥락을 살핀 뒤 반응을 보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창신 신부가 시국미사를 통해 박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자 서울대교구장을 맡고 있던 염수정 추기경은 이틀 뒤 서울 명동성당 미사 강론에서 “사제들의 정치참여는 잘못된 일이고 정치구조나 사회생활조직에 개입함은 사제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시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사제들의 시국선언과 이에 따른 논란을 가리켜 “거짓 예언자의 욕심 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

노동권 옹호 앞장서라던 교황 레오 13세

-가톨릭교회 내부에도 사제의 사회참여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있지 않았습니까. 천주교계에 하나의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른 두 개의 관점이 존재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가톨릭교회가 늘 일사불란하게 한 가지 목소리만 냈던 건 아니었습니다. 최근에도 사제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가톨릭교회의 사회참여가 이미 19세기 말부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했고,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분화가 이뤄졌습니다. 소득격차 등 사회적·구조적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노동헌장’이라는 회칙을 반포하며 교회가 노동자의 기본권 옹호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뒤로도 역대 교황은 빠르게 변하는 세계의 정치·경제·사회적 환경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윤리적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는지, 이를 ‘가톨릭 사회교리’라는 이름으로 집대성해 내놓았습니다.”

-교회의 사회참여는 곧 가톨릭교회의 역사라는 말씀인데, 왜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이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겁니까?

“가톨릭 교리서에도 포함돼 있는 사회교리를 우리 성직자들이 충분히 널리 알리지 못한 탓입니다. 빨리빨리 세례를 주다 보니 옛 교리만 최소한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옛날 관행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은 사제들이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니까 당혹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차원에서는 3년 전부터 ‘사회교리 주간’을 설정해 교우들에게 사회교리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홍보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교회나 성직자는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불거질 때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 이를 위해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활동도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 역대 교황의 일관된 가르침이었습니다.”

-현직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도 그러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분도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복음의 기쁨>이라는 교서를 통해 성직자의 정치·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장했습니다. 성직자에게 해당되는 정치적 활동의 금지란 정당 가입이나 선거 출마, 임명직 공직 진출 등을 통해 직접 정치적 신분을 얻지 말라는 것이지요. 정치라는 건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제도를 만들고 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데, 이를 외면한 채 다른 세상 사람처럼 산다는 건 예수님이 걸어온 길이 아닙니다.”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강 주교님의 말씀은 더 빨라지고 단호해지셨습니다.

“(웃음) 사회교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열매이기도 했습니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4년에 걸쳐 세계 각 교회의 모든 주교가 모여 과거 교회의 모든 제도와 관행 등에 대해 근본적 성찰을 하며 내놓은 여러 교령과 헌장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현대화하는 데 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획기적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성직자의 정치참여도 모두 당시 회의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지 지금 어떤 주교나 신부 개인의 주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란 1962년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해 1965년 끝난 제21차 세계 공의회를 가리킨다.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조직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는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완전한 의식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가톨릭교회는 사회정의를 위한 참여, 가난한 이에 대한 관심, 정치·사회·경제적 피압박 계층의 자유 회복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는 4개의 헌장과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으로 남아 있다.

-강 주교님께서 제주4·3사건 진실 규명,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시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까?

“저도 제주로 내려오기 전에는 4·3사건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내려와서 60년 전 제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면서 이 사건을 이렇게 역사 속에 묻어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군이 제주도민을 무참히 학살한 과거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죄하는 노력도 없이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4·3사건 희생자의 죽음과 남겨진 분들의 고통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듯한 굉장한 울분을 느꼈습니다. 그대로 넘어가는 건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 생각한 것이지요. 제가 해봐야 얼마나 하겠습니까만, 저마저 모른 척 입 닫고 있으면 이건 영원히 파묻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북·빨갱이 공격 나도 두렵다 

그런 딱지 붙여 단죄하긴 쉬워도 

강기훈·유우성씨처럼 

당하는 이들의 삶 평생 망가져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한국과 한국 교회에 관심 많아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 위한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한다 

난 이미 종북으로 찍힌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권이 하는 일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때, 대개 종북세력이라거나 빨갱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강 주교께서는 그런 공격이 두렵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운 마음이야 다들 똑같지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을 때 강 주교님이 그의 무죄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에 이름을 올리셨다면서요.

“그의 정치적 주장 및 노선에 대해 제가 깊이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문제가 됐던 모임에서 실제 국가를 전복하려는 구체적 계획 등은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때 운동권에서 격렬하게 활동했던 그분들이 다소 과격하게 들리는 말을 서슴지 않은 부분만 문제 삼고 있는데, 사회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울분 속에서 일부 과격한 언사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배경에 대해 우리가 이해한다면, 그들을 그저 ‘종북’, ‘빨갱이’로 몰아세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종북몰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이들에게 딱지를 붙여 단죄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역적’이, 일제시대에는 ‘비국민’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적이든 비국민이든 용어는 다르지만 그 피해는 지금의 종북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딱지를 붙여 단죄하는 건 참 쉬울지 몰라도, 당하는 이들의 삶은 평생 망가지는 겁니다.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지금 또 증거 서류까지 위조해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간첩으로 몰린 유우성씨라는 분의 고초는 말도 못할 겁니다. 사람 인생을 그렇게 망가뜨리면…, 그렇게 단죄한 분들 나중에 하느님 대전에서 뭐라고 변명을 하실지 모르겠네요.”

-점점 강 주교님께 ‘종북 딱지’가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 수 없죠 뭐. 이미 종북으로 찍힌 것 같아요.”

-강 주교님이 이렇게 사회적 쟁점에 대해 말씀하시면,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비판론이 제기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상처를 받지는 않으십니까?

“있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분들을 포함한 우리는 모두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원래 정치적·사회적 문제는 부자지간, 형제지간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걸 갖고 서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서운하실 때 있지요?

“네, 서운하기야 합니다.(웃음) 왜 우리의 진심을 몰라줄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구실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가르침을 충분히 알리지 못한 성직자로서 먼저 자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국미사와 이에 따른 사회참여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천주교계에는 여러 경사가 있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는 두 분의 주교가 동시에 서품을 받았고, 서울대교구장을 맡고 있는 염수정 대주교님은 추기경 서임을 받으셨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시복(복자로 추대함) 발표도 있었는데요, 이런 겹경사가 잇따르는 배경은 뭔가요?

“서울(대교구)에서 주교 두 분 나신 거야 은퇴하신 분 때문에 공석이 생기니 빈 주교 자리를 채운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만, 시복 결정은 한국 교회의 위상을 세계 속에 더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시복 결정으로 124위나 되는 순교자를 우리가 공식적으로 복자라 칭하고 모시게 됐습니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분들처럼 순명을 던져 복음을 증언하고 행동하신 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교회를 만들어야 할 텐데,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그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마냥 경사라고 기뻐하기보다 우리에게 그분들의 성덕과 순교적 삶을 이어받으라는 새로운 책임이 주어진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천주교계 일각에서는 최근 경사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방한은 확정적인 겁니까?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한국 주교회의가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교황께서 충분히 경청하셨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이뤄진다면 그 의미는 어떤 것인가요?

“한국을 방문하신다면 아마 8월 가톨릭 아시아 청년대회가 있으니 거기에 참석하시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오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124위 시복 결정이 바티칸에서 최종적으로 이뤄졌는데, 대개 시복식을 교황께서 직접 집전하기보다 교황께서 보내는 특사가 집전하는데, 이번에 오신다면 시복식도 직접 주재하시리라 봅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과 한국 교회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한국에 오시면 남북 화해를 향한 메시지를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주/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인권운동가가 본 강우일 주교

인권운동을 하며 고 김수환 추기경을 여러 차례 만났다. 김 추기경은 도무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양심수 석방이든, 탈북자 구명이든 당신을 필요로 하면,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다. 지난 16일은 김 추기경의 선종 5주년이었다. 그분의 빈자리가 아쉽다.

종북몰이라는 이름의 이념공세와 인권 탄압이 심해지고,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무참히 짓밟힐 때, 강우일 주교는 우리 옆에 있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빈 자리였다.

김수환 추기경을 보좌했던 21년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묵묵히 김 추기경의 곁을 지켰던 강우일 주교는 2002년 제주교구장으로 임명받은 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었다. 제주는 국가범죄의 전형인 4·3사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군사기지를 짓겠다는 국가를 강 주교는 이해할수 없었다. 세상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다들 체념하며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누구보다 발 빠르고 단호하게, 그리고 꾸준히 대응했다. 현실 싸움에서의 형세는 많이 기울었을지 모르지만, 강우일 주교의 노력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근본적 성찰에 닿았다. 

김수환 추기경을 보좌했던 

21년 동안 묵묵히 곁을 지키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비판뒤 

자신의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시국미사를 주도하는 사제들의 

배후에는 강우일 주교가 있고 

강 주교 뒤엔 프란치스코 교황, 

또 그 뒤엔 예수가 있었다 

강우일 주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얼굴이다. 천주교회의 사회참여를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일종의 답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다. 강 주교의 발언은 곧 한국 천주교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된다.

강 주교는 천주교 성직자들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시국선언을 하는 걸 보고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 정부가 근본적으로 잘못을시인해야 풀린다고도 했다. 어찌 보면 천주교회 ‘참여파’의 든든한 배후일 수 있다. 예전에 박홍 신부가 했던 식으로 따지면 이렇다. 시국미사를 주도하는 천주교 사제들의 배후에는 강우일 주교가, 강 주교의 배후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 그 뒤엔 예수가 있다.

강우일 주교의 말과 행동은 강정마을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였던 4대강 사업에 대해선 ‘도둑질’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핵발전소 건설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왜 대도시의 잘사는 사람들을 위해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냐며, 핵발전소가 윤리적 결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을 공부하면서, 이 협정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구제역 사태 때는, 살처분되는 짐승들의 울부짖음을 떠올리며, 인간이 생존을 위해 고기를 먹는다지만, 먹는 것도 인간답게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 정권을 겨냥해 “수백만 백성이 배를 곯고 있는데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핵무기를 실험하며 허공에 돈을 뿌리는 어리석은 무리”라고 규탄한다. 이런 규탄은 “40배나 많은 재산을 벌어 하늘에 닿는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살 뺄 걱정들만 하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형제를 업신여기고 손 내미는 아우 앞에 매정하게 문고리를 닫아걸고 등을 돌리는” 우리 자신도 비켜가지 않는다.

지난 5일 서울대교구 주교 서품식 축하식에서 강우일 주교는 문득 “조폭과 신부의 공통점을 아느냐”고 신자들에게 물었다. 사실 이건 천주교회에서 오래된 유머다.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자기 지갑을 열어 돈을 내는 법이 없다 △서열이 확실하다 △남의 구역은 침범하지 않는다 △조직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등이다. 강 주교는 “여기까지는 아는 분이 꽤 있는데, 그러면 조폭과 주교의 공통점도 아느냐”고 물었다. “어디에 나타나든 주변 사람들이 슬슬 피하고 다가서지 않는다”는 게 답이란다. 

사람들은 한바탕 웃었지만, 정작 하고픈 말은 그다음이었다. “교회가 2000년을 살면서 유연성이 떨어지고, 고집이 세지고, 초대교회와 많이 달라졌다. 특히 로마제국과 공생관계를 맺으면서, 교회 안에 세속적 속성과 관행이 많이 덧칠되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주교, 사제 등의 위계질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강 주교는 이날 서품을 받은 유경촌, 정순택 주교에게 “교회와 세상이 막연히 품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의심”하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주교란 권위를 앞세우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정화하고 속죄하며, 실천하는 자리라는 설명이었다.
강우일 주교는 온화한 성품과 달리 결코 할 말을 피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강 주교는 단호하면서도 모나지 않고, 옳은 길을 가면서도 독선적이지 않다. 늘 눈을 들어 보려 하고, 귀를 기울여 들으려 한다. 잘 알지 못하는 건 아예 말하지 않는다.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다. 그러니 말에 힘이 있다. 이런 게 바로 카리스마다. 이런 분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특히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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