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경산 종법사 인터뷰
익산 중앙총부에서 통일론을 역설하는 경산 장응철 종법사
전북 익산 중앙총부내에서 소태산 박중빈이 처음 제자들을 가르쳤던 유일학림
앞에서 교무 간사들과 담소중인 경산 장응철 종법사.
남·북, 한·일, 남·남.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풀리는 게 없다. 난마처럼 얽힌 갈등 현안을 풀 묘수는 없을까. 평생 마음 공부를 해온 ‘도인’들은 어떤 길을 제시해 줄까.
원불교 최대 명절인 대각개교절(원불교가 열린날·4월 28일)을 앞두고 지난 14일 전북 익산시 신룡동 원불교 중앙총부로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경산 장응철 종법사(74)를 찾았다. 경산 종법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기본적으로 교조 소태산 대종사가 한반도 미래를 어변성룡(魚變成龍ㆍ물고기가 변해 용이 됨)이라고 예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반겼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전제’를 제시했다. ‘갈등 해소법’이다. 이 방법은 대부분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한 원불교의 선배 도인들이 내놓은 방법들이다.
원불교는 한반도에서 탄생한 현대적 종교답게, 한반도와 통일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뿐 아니라 2대 정산 송규(1900~62)-3대 대산 김대거(1914~98)-4대 좌산 이광정(1936~)-5대 경산 종법사에 이르기까지 4명의 종사들도 이를 화두삼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산종사는 해방이 되자마자 <건국론>을 펴내 ‘좌도 우도 아닌 중도만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제시했다.
대산종사는 반공·승공·멸공이 대세던 30년 전 ‘통일의 방향성’을 용공(容共·북한을 활용), 화공(和共·북한과 화해), 구공(救共·북한을 구함)으로 제시했다. <통일론>이란 저서를 낸 4대 좌산종사는 지난 2006년 종법사직에 퇴임하면서부터 백두산을 비롯한 명산을 다니며 통일 기도를 올리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국내외 지도자들에게 한반도 통일론을 자문해왔다.
경산 종법사가 인터뷰에서 ‘원망을 감사로 돌리자’는 원불교인들의 표어답게, 서로 죽이거나 상처 입히지 않고, 갈등을 해소해 통일로 나아가는 방법을 내놓았다. 그는 “일찍 되든 좀 늦게 되든지 결국 통일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광복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았듯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만큼 ‘과정을 잘 해가야 한다’는 게 원불교식 처방이다. 그가 선
배 도인들과 자신의 경륜으로 제시한 ‘통일 방법론’을 5가지로 정리했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2대 정산 송규 종사
4대 대산 김대거 종사
4대 좌산 이광정 상사
1.갈등이 고조될 때는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쉬어라
=경산 종법사는 최근 남북간의 위기감과 관련해 “작전인지 모르지만 양쪽이 모두 너무 지나치게 불안을 고조시키는 것 같다“며 “부부싸움을 할 때도 한쪽이 대꾸를 안하고 좀 쉬면 나아지는 수가 있다“면서 냉각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또 “계속 저쪽이 거슬리는 약점을 얘기해 자극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도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악연을 선연으로 돌려라
=민족종교를 말살해온 일제가 소태산 대종사를 집중 감시하기 위해 보낸 이가 익산주재소 순사 황가봉이었다. 제자들의 경원에도 소태산만은 그를 다른 제자와 아무런 차별 없이 자애롭게 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애제자가 돼 ‘이천’이란 법명을 얻은 그는 두딸을 원불교에 출가시켰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대안학교가 된 전남 영광 영산성지고에서 지난 2009년까지 11년간 교장을 한 황명신 교무가 그의 딸이다. 원불교의 도인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 오는 이조차 이처럼 선연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마음 공부의 진정한 힘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3.현재의 상황은 과거에 내가 지은 원인 때문이니 앞으로는 같은 원인을 짓지 말라
=경산 종법사는 정산종사가 ‘모든 게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니라 사필귀정(事必歸定)”이라고 말한 뜻을 설명했다. 세상 일은 ‘바른(正) 대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정해진’(定) 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과거에 자신이 지은 대로 받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므로, 현재의 고통을 주는 상대 탓만 하지 말고, 이제는 제대로 뿌려 미래엔 원하는 결과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4.강자는 약자를 끌어주고 약자는 강자에 의지해 일어서라
=경산 종법사가 가장 강조하는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 중 하나가 ‘강자 약자 진화의 요법’이다. 세상은 늘 강자와 약자가 있는데 서로 원수 보듯하기보다는 강자는 약자를 북돋아주며 이끌어주고, 약자는 강자에게 대항만 하려들기보다는 힘과 희망을 키우며 인고의 노력을 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5.과거가 아닌 미래로 나아가라
=경산 종법사는 ‘과거를 묻지마세요’란 대중가요처럼 끝없이 상처를 헤집지 않고 새길을 찾기 위해 ‘공자의 회사후소(繪事後素)’를 강조했다. 새 그림을 그리려면 이전 것을 지워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데 계속 ‘핵 포기’만 이야기하면 만나지 말자는 말과 같으니, 먼저 스포츠 문화교류와 인도적 지원으로 신뢰감을 쌓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 말했다.
익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