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추상적, 비현실적
<당당뉴스> 2014.4.16. 지성수 sydneytax1@hanmail.net
한국에 가있는 3 주 동안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신학교 동기생이 목회하는 교회를 갔다. 공교롭게도 부흥회를 하고 있어서 꼼작 없이 2 시간 동안 고문을 받았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목사가 40년 전에 하던 그대로 토씨 하나 안 틀리는 설교를 했다. 주제는 '교역자를 잘 받들어야 복을 받는다.'라는 것이었다. 마치 목청이 하나님 능력이라는듯 귀가 아프게 위압적으로 고성을 지르면서. 예배 시간 내내 설교 하는 목사를 생각하며 "주여 저 불쌍한 영혼을 굽어살피소서!"하고 기도를 하고신자들을 위해서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우소서"라고 기도를 했다.
새벽에는 아들 집 부근의 큰 교회에 새벽기도를 갔다. 대교회답게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신자들이 나와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잘 아는 담임 목사가 은혜롭게 귀한 말씀을 세련되게 전했다. 신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주는 좋은 말씀이었다. 그러나 사탕을 많이 먹으면 이가 썪는다. 최면용 설교는 영혼을 썩게 만드는 사탕이다.
우리 집 큰 애가 어려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였는데 지금처럼 아이들이 바쁜 때가 아니어서 방학이면 온 동네 아이들이 여름성경학교에 몰려들었다. 으례히 여름성경학교 때는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찬양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그 찬송을 한 주간 동안 수 십 번씩 반복해서 불렀다. 3 살 먹은 아이가 신기하게 들락날락 하면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해서 그 많은 곡을 모두 외웠었다. 참으로 어렸을 때의 기억력은 놀라운 것이다.
그 중에 "예수 사탄을 이겨라!"라고 하는 가사가 있었는데 아이는 그 대목에서는 꼭 "예수 사탕을 이겨라"라고 했었다. 사탄이 사탕으로 들린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이들에게는 사탕은 이빨을 썩게 만드는 사탄이기도 하니까 틀린 것도 아니기는 했다.
어느 교회에 청년부에 설교를 하러 갔다가 앉았다 일어섰다 팔을 들었다 하는 벌을 섰다. 그나마 성당에서처럼 무릎을 꿇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예배 전에 30분 동안 은혜, 평안, 축복, 영광, 능력, 거룩, 전능, 의지함, 주님만 바라봄 등등의 구체성이 전혀 없는 허공을 떠도는 관념적 추상적 단어들로 나열된 가사를 반복 또 반복하는 복음송가를 불렀다. 젊은이들이 마땅히 관심 가져야 할 만한 세상의 산적해 있는 문제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치 뽕에 취하듯 부르고 또 부르는 찬양들에서 나는 지루함을 느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마치 이슬을 먹고 사는 듯한 사람이나 뽕 맞은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축복, 은혜, 사랑 등등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것 같은 소리를 많이 한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의 생각을 말해 준다. 일본 말로는 ‘가다’ 조선말로는 ‘금형’이라는 것이 있다. 대량 생산되는 모든 공산품에는 금형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제품이든 먼저 금형을 떠서 사출을 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처럼 무엇을 보던지 자신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 즉 사고의 ‘틀’이 있다. 무식하면 무식한 데로 유식하면 유식한 데로 누구나 ‘틀’ 이 있는데 이 틀이 추상적, 관념적이 되어 버리면 현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추상적 관념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현실과 밀착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가 있다. 그런 예의 극단적인 경우가 영적인 허세에 빠져 있는 자기들끼리 세상을 구원할 방법을 가졌다고 믿고 즐거워하는 신흥종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9.11 사건이 난 화요일에 나는 뉴욕 근처의 고속도로에 있었다. 고속도로를 꽉 메우고 움직이지 않는 차 안에서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몰랐다. 라디오를 틀었으면 알 수 있었을 터인데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느라고 그럴 생각을 못했다. 집에 와서 TV로 WTC 폭파 장면을 보면서 나는 미국의 전성기가 끝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테네시 주 네쉬빌에 있는 한인교회에 설교를 하러 가서 기막힌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젊은 유학생들이 모인 교회였는데 지구가 뒤집어지는 사건이 발생한 그 주일에 지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외계인들처럼 복음 성가만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날 설교 시간에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아는가? 이제 당신들 중에 한국군이나 미군으로나 전쟁에 나가서 미국 때문에 죽을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겠느냐?’는 질문을 했었다.
년식이 년식인지라 목사 끝물이라서 가까운 친구 목사들 가운데 교인이 수 천명이 되는 대교회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해보면 전혀 딴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물론 교회 주변 환경에 둘러 쌓여 있어서 자기 교회 외에는 다른 일에 신경을 전혀 쓸 수가 없을 조건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 그것은 대부분의 이민 교회 목회자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목회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 젊은이들의 상황을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으려는 관심 보다는 청년들이 교회에 나오는 일 자체에만 관심이 있다. 구체성이 없고 추상적 관심만 있을 뿐이다. 기껏 한다는것이 돈을 주어서 해외로 단기선교 갔다오거나 봉사 활동에 참여 하게 하는 것 정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허상, 환상, 혹은 피상적인 지식만 가지고 어떻게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튜 폭스가 주장하는 창조영성은 이 세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와 시간과 몸과 물질과 사회를 포함한다. 영은 인간의 삶에 본질적인 성분이며 바로 삶 안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창조영성에서는 곧 경제학, 예술, 언어, 정치, 교육, 성이 모두 똑같이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 관한, 세상 사람들에 의한, 세상 사람들을 위한 영성이다. 사람 중심의 영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