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는 절망보다 강하다
법인 스님/ 대흥사 일지암
4월 17일과 19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에 다녀왔습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과 진도군 지역의 사찰들이 마련한 자원봉사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진도는 제가 몸담고 있는 대흥사 교구에 속해 있기 때문에 교구차원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보태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 현장에서는 진도 향적사 주지 법일 스님과 쌍계사 주지 진현 스님, 진도지역의 신도님들, 그리고 사회복지재단 직원들이 지혜와 힘을 합하여 실종자 가족들을 돕고 있습니다. 불교계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스님과 불자들의 성원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은 오로지 연민과 자애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이 관음보살과 보현보살이 되어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4월15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뒤 구조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2명이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이 푸르른 4월 하늘 아래 산과 들에 피어난 꽃과 신록도 슬픔의 빛깔로 다가옵니다. 아니!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이 온통 아픔입니다. 슬픔과 아픔 속에서 그저 속절없이 망연할 뿐입니다.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가슴 한켠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토록 자랑하는 과학과 기술이 다도해 작은 바다에서 생명 하나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느 목사님은 고난주간이 끝나고 부활절이 눈앞인데 무엇으로 부활을 노래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일뿐이라는 사실 또한 야속하기만 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말들이 가슴을 찌릅니다. 실종자와 사망자의 가족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우리의 눈을 찌릅니다.
"딱 한번만이라도 내 새끼 품어주고 보내줘야지. 엄마가 어떻게 그냥 보내요."
지금도 저 차가운 물속 어둠속에 갇혀 있는 자식을 어서 빨리 보게 해달라고 어머니는 절규하고 있습니다. '딱 한번만'이라는 말에 온몸에서 눈물이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습니다. 기다림 끝에 절망하는 어머니의 외침입니다. '딱 한번만'이라는 절규가 우리에게는 간절함을 넘어선 절망의 언어로 가슴을 찌릅니다. '내 새끼'라는 어미의 말이 또 가슴을 누릅니다. 모든 생명의 원초적 언어, 내 새끼, 어미에게 더 없는 기쁨으로 여겨온 그, 내 새끼……. 아이가 아프면 어미가 더 아팠고, 아이가 환하게 웃으면 세상이 환하게 느껴지던 그 더 없는 기쁨이었던 그, 내 새끼를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함을 예감하는 어미의 비통함이 우리의 가슴을 찌릅니다. 이제 어미는 애지중지했던 자식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하고 평생을 가슴에 묻을 것입니다. 이제 단 한번만 품어주고 '보내주어야'하는 그 수많은 어미의 얼굴을 보아야하는 우리의 눈이 한없이 아픕니다. '보내주어야'한다는 그 말을 하기 까지 어미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합니다.
슬픔이라는 말이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합니다. 아픔이라는 말이 우리를 더없이 아프게 합니다. 간절함이라는 말에 우리는 더없이 간절해집니다. 무력이라는 말이 우리를 더없이 무력하게 합니다. 팽목항에서 바다를 향해서 울부짖는 얼굴이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가족의 모습이 우리의 눈을 또 아프게 합니다.
또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살아 돌아 온 것이 마냥 죄인 것 같아 슬퍼하고 죄스러워하는 단원고 어린 학생들이 우리 어른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어린 학생들을 먼저 배려하고 세상을 떠난 선사 직원 박지영 씨를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우리 모두가 부끄럽습니다. 구호와 수습에 허둥대는 정부관계자들은 부끄러움에 더 큰 부끄러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20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공원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시민들.
안산/김봉규 선임기자
슬픔과 아픔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금, "보살의 병은 대비에서 생긴다"는 유마경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렇습니다.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중생은 지금 세월호 사고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이웃입니다. 그 이웃의 고통에 우리 모두의 가슴이 하나로 아파하고 있습니다. 하나 되는 아픔에서 저절로 사랑이 생깁니다. 사랑을 나누고자 하면 지혜와 방편이 함께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지역과 이념과 종교를 넘어서 모두가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명에 대한 연민과 자애는 우리 모두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합니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부디 생존자가 많이 나오기를! 부모와 가족들의 마음이 언젠가는 평정을 되찾기를! 세상을 떠난 이들은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그리고 사고 수습 때까지 함께 하는 지금의 마음을 놓지 않고 끝없이 관심 갖고 기원하고 배려하는 정성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느 지인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 몸의 중심이 어디냐고요. 그 분은 내 몸의 중심은 심장도 뇌도 아닌, 현재 아픈 그 곳이 중심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아픈 그 곳에 나의 모든 마음과 신경이 모아지고 있으니까요.
지금 우리 사회의 중심은 절망과 비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입니다. 우리 불자와 국민이 눈을 들어 바라보고, 귀를 열고 들어야 하고, 마음 모아주어야 하는 중심은 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과 그들의 부모와 가족들입니다. 다시 한번 그들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함께 하는 마음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이번 사고를 맞아 우리 사회가 크게 반성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심 가치에 대한 생각의 전환입니다. 세월호는 매우 부실한 배였다고 합니다. 점검과 수리 또한 허술했고 감독 또한 허점 투성이었습니다. 선장과 선원 또한 계약직으로서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일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돈을 아끼면서 돈을 벌고자 하는 돈 중심의 가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돈 중심의 가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돈을 중심 가치로 세우고 살다 보니 옳고 그름은 사라지고 이익과 손해의 논리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 사회가 생명을 제일의 중심 가치로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의 성찰과 반성,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부처님 제자들은 세상을 떠난 영가들을 위해 기원하는 일과 더불어 큰 충격을 받고 있는 학생들과 가족들을 위해 무슨 도움을 주어야 할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사고 수습 이후 이 분들을 위해 산사에서 쉼터를 제공해 주는 일도 하나의 방편이 될 것입니다. 이 분들의 마음의 안정과 치유를 위한 소규모의 템플스테이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함께 하는 마음과 지극한 정성이면 분명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남도의 땅은 밝고 투명합니다. 이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마냥 고통과 슬픔에만 젖어 있을 수 없습니다. 힘을 내어 밝은 내일을 염원합니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비는 절망보다 강하다.
희망은 패배보다 강하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